[공감신문] 30대까지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 친구들은 무언가 생소한 걸 접하면, ‘와, 나이 서른에-’라는 말을 가져다 붙인다. 아직 서른 아닌데 왜 벌써부터 그러냐니까 스물아홉이나 서른이나 그게 그거지, 라고들 한다. 그래, 뭐 주사도 미리 맞는 게 낫지.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다. 이전에 언니 오빠들 말 맞다나 나이 먹을수록 정말 재밌다. 내가 인생을 사는 템포와 모습이 점점 맘에 드는 기분이다. 단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20대에 해내고 싶었는데 그게 좀 아쉬워서 채 100일도 안 되는 시간들을 붙잡고 있었을 뿐. 어휴, 그래도 꾸준히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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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들은 서른이 되기 전에 드레스를 입고 싶다며 얼른 시집을 가버렸다. 아직도 이성을 볼 때 외모를 첫 번째 우선순위로 꼽는 나에겐, 너무도 머나 먼 얘기. 그들이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친구였던 그녀에게 ‘시댁’이 생기는 그 순간부터 나에겐 엄청난 ‘어른’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아무리 친절하고 자세하게 그들의 결혼생활에 대해 설명한다고 한들, 난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는 얘길 들었었다. 연애 경험은 물론이요, 비교적 사회 경험도 많지 않을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긴데... ‘결혼하는 인생’을 살 거라면 저 말이 일리가 있긴 한 것 같다.

20대엔 연애도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반하고, 그리워하고, 사랑에 빠지는 말랑말랑한 마음은 스물아홉인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시작이 예전 같지 않다. 믿지 못해서 그런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대단히 어려운 얘기였다. 아무리 멋지다고 해서 모두와 사귈 순 없다. 과연 이 만남이 서로에게 좋을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지, 스스로 추측하고, 따지고, 겁을 먹는다. 연애도 이런 식인데 결혼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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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잘 맞으면서도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잘 맞는 건, 내가 가정적인 스타일이라서다.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요하던 시대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겨졌었다. 물론 여자들은 가사 노동의 무게만큼, 가계 경제를 꾸리는 일에선 책임이 덜 했었다. 하지만 난 계속 일을 할 것이다. 다행히 난 거의 집에 머물며 글을 쓸 수 있다. 집안 일, 특히나 요리는 나에게 엄청난 즐거움이다.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음식을 먹어준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긴 하다.

반면 결혼이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대표적 이유는, 즉흥이 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에 나가면 적어도 정해진 근무 시간 동안은 ‘업무’에 열중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수업시간 동안에는 교실에 앉아있어야 한다. 그런데 결혼은 직장이나 학교가 아닌 ‘생활’의 전부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닿아있으며, 보이지 않지만 나와 상대방 옆에 연결된 가족 사회까지 전부 닿아있다. 정해진 시간 이후엔 ‘나’를 찾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부담스럽다.

이성 문제 같은 걸로 상대방 마음을 아프게 하겠다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즉흥적 행동이란, 이를테면 갑자기 어딘가로 훅 떠날 수 있다는 것,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충동적으로 살 수 있는 것, 밤늦게 친구가 연락와도 만날 수 있는 것, 뭐 이런 거다.

사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러한 자유가 별 게 아닌 것 같으면서도 엄청 대단한 것들이더라. 10대, 20대 초반, 그리고 거의 서른 즈음인 내가, 갈수록 인생이 더욱 즐겁다고 느끼는 이유? 생각해보면 다 저런 충동적인 자유를 맘껏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크게 한 몫 하지 않나.

드디어 스무 살, 꿈꾸던 독립을 한 나는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쳐 왔던가. 그런데 결혼을 하면 저런 자유들일랑 다 고이 접어 다시 넣어 두어야한다.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놀 수 있을 때 많이 놀아.’

아니다. 나의 즉흥적 욕구는 단지 그렇게 유흥을 즐기고 싶어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저께 홀로 제주도에 온 나는 숙소에서 새벽에 혼자 글을 쓰고 있다. 날이 밝으면 혼자 산책 겸 나가서는 어멍밥을 먹고 들어올 것이다. 어제는 저녁에 동네를 걸으며 지역 유래가 적힌 표지판들을 찾아보며 다녔다. 이런 고즈넉한 하루하루가 즐겁고 소중하다. 다음 주에 서울에 일이 없으면 마냥 머무르고 싶다. 언제 또 다시 올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마 내가 결혼을 했더라면 단 ‘하루’의 여유라도 누군가의 이해가 수반되어야겠지. 그 자체가 미안하고 부담스러울 것 같다.

애초에 이런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정말 이런 것을 몰랐더라면 결혼해서도 적응해서 잘 살아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난 ‘통제’에서 너무도 벗어난 인간이 아닌가.

고즈넉한 제주를 걷는 것 그 자체가 평화롭다.

사랑에 빠지는 일만큼 멋진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을 유지하는 일은 사랑 만으로만 되지 않더라. 그건 수 십 년 다르게 살아온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때론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왜? 사랑하니까. 이런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난 아무래도 결혼 못할 것 같아.”

왜? 라는 친구 질문에 위와 같은 이야기들로 대답을 채웠다. 그러자 친구는 굉장히 놀랍다는 듯이 날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 그런 얘기 처음 들어봐.”

그럴 리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특히 여성) 점점 늘어가는 추세라는 건, 몇 년 전부터 있었던 얘기다. 그러자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중요한 건 이유지. 보통은 육아 문제나 경제적 측면 때문에 결혼을 꺼리지. 너 같은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지는 않아.”

그러니 조금 납득이 갔다. 대부분은 남들처럼 가정을 꾸려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하니까.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다만 안정적으로 보이니까. 그래, 나처럼 사는 건 정말 쉬운 일이지, 불안하고 자유로운 이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알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을 것이다.

“나 원래 철도 없고, 걱정도 없잖아. 근데 진지하게 난 결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친구는 정말 나답다고 했다. 이다지도 즉흥적인 나이기에, 어느 순간 갑자기 누군가에게 퐁당 빠져서는 몇 달 만에 날을 잡을지 모르는 일이다. 내 시간을 온전히 다 주고 싶다며 안달이 날지도!

내가 하고 싶은 얘긴 단지 결혼이 아니다. 연애, 친구관계, 직장 생활은 물론이요 모든 행동 패턴에 있어서 과연 나다운 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행복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병이 나는 시대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의 병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전 세대들보다 더욱 행복에 대해 사뭇 진지하여야 한다. 왜? 이 병들은 거의 남들과 비교하면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듣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그럴수록 더욱 살펴야할 것은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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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신체는 전투태세에 돌입한냥 변화한다고 한다. 동공의 움직임과 체온, 혈압과 호흡, 피부의 수축 등 모든 게 변화한다. 당신의 마음은 건강한 지 묻고 싶다. 하루 24시간 중 얼마간의 시간을 저렇게 전투태세 속에 방치해두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짜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해져야만 하는 게 아니다. 현대 소비사회는 우릴 그렇게 속여 왔다. 중요한 건 ‘덜’어야 할 것들을 찾는 거다. 그게 심지어 ‘일’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마음에서 하는 말이 맞다면, 그게 회피가 아닌 정말로 그렇게 느낀다면 당신은 ‘게으름’을 지지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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