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우리는 보통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주인공이 엄청난 악인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들은 보통 우리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니까.

영화로 예를 들자면, 관객들은 두어 시간 남짓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이 겪은 것들을 생생하게 지켜봤으니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게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는 우리에게 안도감과 만족감을 준다. [Pixabay 이미지]

그리고 그런 감상은 세계 어디서든 마찬가지인가보다.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의 첫 문장과 같은 의미로 쓰는 “Happily Ever After”, “めでたし めでたし(메데타시 메데타시)”등의 표현이 있다는 걸 보면 쉽사리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선한 주인공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은 이야기가 조금 뻔한 감도 없잖아 있다. 이야기가 그리 입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거다. 그래서, 주인공을 가시밭에서 굴리고, 또 끝끝내 ‘고통에서 벗어나진 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맺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배드 엔딩’, ‘새드 엔딩’이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달콤하게 환상적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다크 초콜릿처럼 씁씁한 뒷맛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Pixabay 이미지]

그런가하면 딱히 ‘해피’한 것 같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새드’하거나 ‘배드’한 것도 아닌 엔딩이 있다. 미묘하고 찜찜하게,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배드’하기도, ‘이만하면 해피’라 할 만한 엔딩들 말이다.

요즘은 완벽하게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선’으로 대표되는 주인공이 그렇게까지 행복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망하는’ 것도 아닌 채 영화가 끝나버리는 거다. 그런 엔딩으로 끝난 영화들 중 기자에게 긴 여운을 남긴 작품 몇 가지 꼽아봤다.

※ 다음 영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라라랜드

-다크 나이트

-나를 책임져, 알피

-신비한 동물 사전

 

■ 라라랜드 (2016)

라라랜드는 겉으로 보기엔 몽환적이고 동화 같은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독하고 잔인할 만큼 현실적인 부분들이 돋보이는 영화다. 이 영화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로맨틱한 만남과 이별의 과정만이 아닌 ‘그 보다 더’를 담고 있다. 물론 여느 로맨스 영화 속의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연애는 달달하다. ‘뮤지컬 영화’라는 특성 때문에 그 달달함이 더욱 배가된다.

포스터만 보면 달콤하기 그지없을 것 같은 라라랜드도 사실 결말은 꽤나 씁씁하다. [라라랜드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하지만 일련의 사건 이후 직면하는 현실들, 이를테면 연인과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 어느 한 쪽이 평생의 소망(꿈)을 포기하는 식의 일들이 일어난다. 물론 세바스찬은 미아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의 꿈(재즈바를 차리는 것)을 포기했을 테지만 미아는 그것이 그리 달갑지 않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결말 부분에서는 결국 갈라선 두 사람이 5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셉스’ 재즈바에서 눈이 마주친 둘은, 둘의 사이가 ‘만약에 이랬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상당히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그리고 우리가 기대했던 둘의 모습으로. 하지만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그들은 간단한 목례를 하고, 그것이 영화의 끝이다.

끝내 이어지진 못했지만 각자 꿈을 이룬 둘. 세바스찬과 미아. [라라랜드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은 이어지지 못했다. 두 시간 가량 우리는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게 되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상당히 잔인하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게 느껴진다. 꿈, 사랑. 둘 모두를 거머쥐기란 쉬운 일도 아니고, 그런 경우도 흔치 않으니까. 그런 ‘꿈같은 일’은 ‘꿈의 나라에 사는(Living in a La La Land)’ 사람들에게나 가능할지 모른다.

너무 달콤했지만 결국 상상이었기에 눈물짓게 만드는 엔딩 장면. [라라랜드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두 주인공이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새드 엔딩’이나 ‘배드 엔딩’이라 단정할 수만은 없을 듯 하다. 어떤 곡절을 거쳤건 간에 두 사람은 서로가 각자의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 축복하고 응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슴 아프다. 꿈을 위해서는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에. (물론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다크 나이트 (2008)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세 편이 모두 명작으로 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두 번째 편인 ‘다크 나이트’가 아닐까 싶다. 고인이 된 배우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도 그렇고, 특히 강렬한 임팩트를 지닌 엔딩장면도 영화를 명작 반열에 올려놓는 데 한몫 했다.

배트맨은 자신의 자리를 하비 덴트가 대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크 나이트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브루스 웨인, 배트맨은 고담시에 새롭게 떠오르는 영웅인 신임 검사 ‘하비 덴트’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상징이 되리라 믿는다. 실제로 그는 열정적으로 고담시의 범죄자들과 맞서 싸웠으며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어내게 된다. 덴트는 배트맨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매일 사람을 죽이겠다는 조커의 협박에 자신이 배트맨임을 자처하기까지 한다.

덴트는 끝내 고담시의 '백기사(White Knight)'가 될 수 없었다. [다크 나이트 영화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광기어린 조커의 ‘설계’에 휘말려 하비와 레이첼 도스가 사고를 당하고, 이 과정에서 레이철은 폭사하게 된다. 연인을 잃은 하비는 절망하고, 여기에 조커가 개입하면서 새로운 빌런으로 눈을 뜨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투 페이스(Two Face)’라는 빌런으로.

덴트는 고든의 아들을 인질로 잡고 배트맨과 대치하게 된다. 덴트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왜 나만 모든 걸 잃어야 하냐”고 억울해하지만, 배트맨은 매우 씁쓸하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자신 역시도 레이첼을 잃고 괴로워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대신해 고담시에 새로운 희망이 돼 줄 수 있는 사람(하비 덴트)을 잃었지만 정체를 밝힐 순 없는 상황 때문이다.

배트맨은 결국 인질로 잡혀있던 고든의 아들을 구해내지만 하비는 구해낼 수 없었다. 추락사한 덴트의 시신을 뒤로하고 그는 ‘도망’이라는 행동을 취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그 스스로가 덴트를 죽인 범죄자로 몰릴 수 밖에 없었지만, 덴트라는 인물의 타락을 모두가 알게 되면 고담 시민 모두가 희망을 잃으리란 우려 때문이었다.

고담시를 위해 하비가 저지른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도주하는 배트맨. [다크 나이트 영화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결국 그는 배트맨을(스스로를) 범죄자로 여기게끔 모든 것을 뒤집어쓴 채 고담시에서 사라진다. 고담 시민들의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서. 결국 배트맨에게만큼은 해피엔딩이라 볼 순 없는, ‘숭고한 배드 엔딩’을 스스로 선택한다.

 

■ 나를 책임져, 알피 (2004)

이 남자, 알피 엘킨스의 결말은 어찌 보면 쌤통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바람둥이 알피가 결국은 외톨이가 된다”는 줄거리를 보고 진정한 의미의 권선징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바람둥이인 알피를 미워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도 다소 씁쓸하다.

저런 미인도 알피의 눈에는 'A-'란다. 참내. [나를 책임져, 알피 영화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알피는 줄리, 도리와 가벼운 만남을 이어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둘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알피의 변명(?)에 의하면 줄리도, 도리도 저마다 장점이 있다. 당연히 단점도 있다. 줄리는 알피에게 포근함을 주는 여자친구 같은 존재고, 도리는 알피 눈에 “A 마이너스”의 미모를 갖고 있다.

물론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람둥이’니까. 그는 의도치 않게 단짝친구 말론의 연인인 ‘로넷’과도 잠자리를 하며, 이후 니키와 리즈라는 연인들까지 만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이름이 드러난 여성들만 이 정돈데, 작중 묘사에는 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단짝 친구의 연인과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는 막장 플레이보이 알피. [나를 책임져, 알피 영화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찬찬이 되짚어보면, 영화 속 알피는 그가 만나는 모든 연인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줬다. 그저 진지한 관계로 엮이는 걸 싫어했을 뿐이다. 그래서 알피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자신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연인들을 떠나가거나, 떠나보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피는 말한다. 나는 새처럼 자유롭고, 누구도 내게 의지하지 않으며 나 또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까. 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없다고 덧붙인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거라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남았는지를 엔딩 장면에서야 되돌아보는 알피. [나를 책임져, 알피 영화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영화의 결말은, 알피가 앞으론 좀 정신을 차리고,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지만은 않는다. 고집인지, 아니면 자존심인지,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인지 그는 끝끝내 관객들에게 “모르겠네요”라 말한다. 알피는 알피대로, 자유로운 새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지 모른다. 그것이 행복할지, 엔딩 장면처럼 쓸쓸할지는 알 수 없겠지만.

 

■ 신비한 동물사전 (2016)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은 ‘해리포터 성인판’이라 불릴 만 하다. 이 영화는 기존 시리즈에서 ‘호그와트 청춘들의 성장드라마’는 배제하고, 좀 더 본격적으로 마법사들의 세계관을 그려냈다. 본작 시리즈와의 미묘한 공통점, 그리고 차별화 포인트로 일부 팬들에게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냈다.

외모도 우리와 친숙한 제이콥 코왈스키. '노마지'다. [신비한 동물사전 영화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영화에는 당연히 마법사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머글(여기서는 노마지)’, 비 마법사인 일반인 제이콥 코왈스키도 주인공 일행의 모험에 동참한다. 그가 환상적인 마법사 세계에 들어서는 관객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아바타의 역할을 한다.

제이콥은 흔한 여느 모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뉴트 스캐맨더를 따라다니며 기상천외한 모험을 하게 된다. 물론 그만큼 고생도 하지만, 뉴트와 포펜티나와 친구가 된다. 특히 퀴니와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나같으면 기억 잃는 게 정말 아까웠을 듯. [신비한 동물사전 영화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마법사들의 사회가 뉴욕 시민들에게 노출된 상황이며, 제이콥이 소동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줬건 간에 그도 결국은 ‘노마지’였기 때문에 기억을 지워야만 했다. 깊은 감정을 갖게 된 퀴니는 제이콥에게 “멀리 달아나서 둘이 살자”고 제안하나, 제이콥은 “나 같은 남자는 많으니 잊으라”면서 기억을 지우는 빗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기자는 다소 애매한 결말을 그냥 둘이 이어진단 암시로 해석하련다… [신비한 동물사전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의 결말에서 기억을 지운 제이콥 앞에 퀴니가 나타난다. 하지만 제이콥이 그녀를 알아봤다거나, 둘 사이가 진전되리라는 암시가 등장하진 않는다. 제이콥 개인적으로는 그가 새로 차린 빵집이 잘 되니 다행이지만, 사랑하게 된 퀴니와의 관계를 놓고 보면 그리 해피엔딩이라 볼 순 없다. 그렇게 재미난 모험을 해놓고 모두 잊었다는 것도 아쉽고!

 

■ 우리의 이야기와 닮은 엔딩들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한 것처럼, 뭔가 명쾌한 결말이 나오지 않으면 께름칙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슴 따뜻한 이야기, 또는 대리만족을 위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처럼 우리 삶도 단순명료하게 끝난다면 얼마나 쉬울까. [Flickr 이미지]

대체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우리는 안도한다. 그들이 겪은 온갖 고초들과, 그들이 이겨낸 역경, 시련들에 대해 보상을 받아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하지만 반대로, 이번에 소개한 영화들처럼 ‘해피’, ‘배드’, 혹은 ‘새드’ 엔딩이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속의 이야기가, 상황들이 그저 스크린 속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의 우리 이야기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그런 쌉싸레한 맛이 인생에 풍미를 더해주는 건 사실이다. [Pixabay 이미지]

현실 속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하고 이야기가 맺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연인이 결혼에 골인하는 로맨스 영화 같은 엔딩의 뒤에는 분명, 결혼 생활에서 빚어지는 크고 작은 굴곡들이 있을 것이다. 복수를 완성하는 액션 영화 같은 엔딩 뒤에는 복수 이후에 몰려오는 허무감, 또는 ‘은팔찌’처럼 냉혹한 현실이 뒤따를 것이다. 그저 스크린 밖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높고 낮은 파고(波高)처럼 굽이치는 것이 인생의 참맛일 지 모른다. [Unsplash 이미지]

온갖 크고 작은 굴곡들이 있고,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끝끝내 풀지 못한 채 종국을 맞이하는 경우가 우리네 인생사 지천에 널리고 깔려있다. 그것이 때로는 미묘하고 씁씁한 뒷맛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우리는 어쩌면 그런 현실감 때문에, 미묘하고 명확하지만은 않은 그런 영화의 엔딩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까지 달콤하지도, 또 그렇게까지 씁쓸하지도 않은 우리 인생과 닮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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