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일곱 번 쓰러져도 일어나라~” 어렸을 적 재밌게 시청한 만화 ‘개구리왕눈이’의 여는 곡 가사다. 어떤 역경을 겪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재기하라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개구리 왕눈이’ 여는 곡에는 ‘일곱 번 쓰러져도 일어나라’는 가사가 있다. [개구리 왕눈이 여는 곡 장면, 웹사이트 캡처]

완벽하진 않지만, 기자도 이제는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주변을 돌아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이들 중 일부는 존경심이 들 정도로 정신력이 강한 이들이 존재하더라.

또 그들 중에서는 ‘어떻게 저런 환경을 이겨냈을까’, ‘저 몸으로 어떻게 꿈을 이뤘을까’, ‘아마 나라면 불가능했을 거야’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할 만큼 본인의 약점을 완벽히 극복해낸 사람들이 존재한다. 

불리한 여건과 신체적 결함 등을 이겨내고 성공한 이들은 ‘슈퍼맨’이란 말인가. [Pixabay]

분명 기자와 같은 일반인이라면 열악한 환경이나 남들과는 다른 신체적 결함을 겪고 나서 좌절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다. 그들의 성공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경외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본인 인생에 불리한 약점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드문 사례이기에 사람들에게 더욱 인정받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포스트에서 소개할 인물들은 존경받아도 충분한 그런 이들이다. [Max Pixel]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는 환경과 약점을 이겨내고 존경을 받아도 충분한 인물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그들이 굴곡 깊은 인생 속으로 떠나보자.

 

■ ‘스티비 원더’(Steivie Wonder), ‘가난하고 눈먼 흑인에서 전설로’

우리는 대부분 행동을 시각에 의존해서 행한다. 시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Max Pixel]

만약 누군가 시력을 빼앗는 대신 다른 재능을 준다고 가정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기자라면 아마 단숨에 ‘NO’라고 외치지 않을까 싶다. 

현재는 덜 하지만, 미국 내 인종차별이 암암리에 성행하던 1950년에 미숙아로 태어나 시력을 상실한 한 흑인이 있었다. 그는 성장해서 현재는 살아있는 흑인 음악계의 전설로 남았으니, 그가 바로 ‘스티비 원더’되시겠다. 

스티비 원더는 시력을 잃은 채 태어났으나 뛰어난 청각과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Wikimedia]

우리는 주변의 사물을 인지할 때 대부분 시각을 이용하는데, 스티비 원더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서 시각을 빼앗은 뒤 누구보다 뛰어난 청각과 음악적 재능을 부여한 듯하다.

뛰어난 음악성과 재능을 인정받아 12살에 데뷔한 그는, 그가 데뷔한 1963년에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명곡을 남기고 가수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시력을 잃은 흑인으로 태어나, ‘주전자 손잡이나 만들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굴하지 않았다. 장애를 덮을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스스로 배양해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1950년 태어난 스티비 원더의 현재 모습. 전설은 아직 죽지 않았다. [Wikimedia]

그의 음악성과 장애를 극복한 사례는 음악계 역사에 잊히지 않을 한 획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다소 뜬금없지만, 잠시만 본 포스트 읽는 것을 멈추고 손가락 네 개만 이용해서 타자를 쳐보자. 속도가 굉장히 떨어지고 오타도 상당히 많이 난다. 그냥 한 단어로 ‘불편’ 그 자체다.

앞으로 손가락 네 개만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면, 음 벌써부터 힘든 삶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리라 생각된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이희아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손가락 네 개만으로 피아니스트가 된 인재가 있다. 바로 ‘이희아’양이다. 1985년 출생한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한 손에 손가락이 두 개씩밖에 없었다. 심지어 다리도 짧은 상태로 태어났다.

그런 악조건이라면 보통은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희아양은 좌절하지 않고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장애를 극복한 그녀는 각종 공연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이희아 양이 참가한 음악회 포스터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사지 멀쩡한 일반인들도 피아노를 잘 치기가 쉽지 않은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피아노 연주에 쏟았을지 그녀의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국내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인이 된 그녀에게 존경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 ‘마크 러팔로’(Mark Ruffalo), ‘역경을 끈기로 이겨낸 사내’
‘한 우물만 파라’, ‘10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상세한 의미는 접어두고 어떤 일을 할 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라는 말이다.

참 좋은 말이긴 한데, 행동으로 옮기기 참 쉽지 않다. 무언가 일을 진행할 때 어려운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 ‘그만 포기하고 다른 거 알아봐’라는 사탄의 속삭임이 들려오기 때문.

‘마크 러팔로’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헐크 역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하지만 포기하라는 악마의 유혹을 이겨낸 배우가 있다. 바로 영화 ‘어벤저스의  헐크’(Hulk), ‘나우유씨미’(Now You See Me), ‘비긴 어게인’(Begin Again)으로 유명한 ‘마크 러팔로’다.

지금이야 스타 반열에 올라 헐리우드 영화에 자주 출연하지만, 그가 여기까지 오는 데까지 많은 시련이 그를 덮쳤다.

그의 푸근한 인상 때문인지, 비교적 평범한 외형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오디션에서만 800번 이상을 낙방했다고 알려졌다. 본인이 취준생이고 800번 이상 취업에 실패했다고 생각해보자. 세상이 회색빛으로 보이지 않을까.

여기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면 다행이지만, 시련도 그만큼 끈질긴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싸인’의 출연이 확정된 지 약 한 달 만에 뇌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은 ‘마크 러팔로’. 모든 걸 이겨내고 당당한 영화배우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마크 러팔로’ SNS 페이스북]

장장 10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종양 제거는 성공했으나, 그는 후유증으로 ‘안면마비’와 ‘왼쪽 귀의 청각’을 잃는다. 감정 표현을 자유자재로 펼쳐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 치명적인 일이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800번이 넘는 오디션 낙방도 이겨낸 오뚜기 같은 사내다. 청각은 회복 불가능하나, 약 6개월에 걸친 재활치료로 안면마비를 치료했다. 그리고 현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배우 ‘마크 러팔로’로 굳건히 서있다.

 

■ ‘스캣맨 존’(Scatman John),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사내’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독특한 랩을 구사하는 가수가 있었으니 바로 ‘스캣맨 존’이다.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가수였지만, 그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말을 더듬는 버릇’이다.

‘스캣맨 존’의 생전 모습. 중절모와 정장 그리고 콧수염이 그의 정체성의 일부였다. 사진은 스캣맨 존 사후 히트곡을 모은 앨범 ‘The Best of Scatman John’ 자켓 [Wikimedia]

스캣맨은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 인터뷰를 할 때도 수차례 말을 더듬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52세라는 늦은 나이에 제대로 데뷔했는데, 말더듬는 버릇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상급 가수로 데뷔한 후에는 말더듬는 버릇에서 비롯된 독특한 ‘랩’ 방식이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 인정받아, 인기몰이에 힘을 실어줬다. 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노래 ‘Scatman’을 들어보면 확실히 보통의 랩과는 다른 점이 보인다.

‘스캣맨 존’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노래 ‘Scatman’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채널 ‘Scatman John Official YouTube Channel’]

물론, 스캣맨은 다른 장르의 노래도 불렀으나, 그의 정체성은 특이한 랩이라 해도 무방하다. 가사를 더듬으며 노래를 하지는 않지만, 살짝 정신없으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듯 오묘하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어울리면 귀가 호강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그는 오랜 무명생활 끝에 52세라는 늦은 나이에 가수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 데뷔 후 5년만인 1999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단시간에 큰 인기를 얻은 가수인지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선지 사후에도 그를 기념하는 앨범이 등장하기도 했다.

 

■ “살아남는 자가 강한거야”
경중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다 약점을 안고 살아간다. 뭐 작게는 본인의 신체부위가 마음에 안 든다거나, 크게는 본문의 설명처럼 선천적 장애를 겪는다거나 파란만장한 인생살이를 겪었다거나 등 모두 해당되겠다.

개구리 왕눈이 여는 곡 가사처럼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 마냥 다시 일어서는 의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Pixabay]

그런 점을 말미암아 생각했을 때,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 처하든 좌절하지 않고, 오뚝기 마냥 계속 일어날 수 있는 ‘의지’가 아닐까. “살아남는 자가 강한거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좋은 의미로 썼을 때 말이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기자 멘탈도 여러분과 별 다르지 않다. 사진에 놓인 계란 정도랄까. [Pixabay]

이렇게 말을 전하지만, 기자도 사실 속된 말로 ‘멘탈’이 튼튼한 편은 아니다. 여러분과 다를 것 없는 일반인에 불과하다. 

다만 혹시나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보다 더한 일도 이겨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위안이 되길 바랄 뿐이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법. 각종 약점들이 우리 인생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자. [Pixabay]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듯, 지금 당장 타인에 비해 불리한 여건에 놓였다고 해도, 반드시 그와 반대되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이를 실제로 이룬 위대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게 바로 방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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