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간절하도록.
꼭 그런 날이 오도록 약속한다.
충실하게 노력하며 기다린다.
한결같이.

나에게 가득가득 좋은 일이 있기를. 
봄날의 쏟아지는 아침 햇살처럼.
까만 가을 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한여름날의 시원한 폭포수처럼,
나를 향해 풍요롭게 쏟아지기를,

나에게 절박하도록.
꼭 그런 날이 오도록 다짐한다.
충실하게 노력하며 기다린다.
한결같이.

- 김정한, 한결같이    

사진=Pixabay

[공감신문] 나이가 들수록 몸이 늙어가듯 생각도 느리게 움직이고 늙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마흔 전까지만 해도 몸도 마음도 손발이 척척 맞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실수도 많지 않았다. 반평생 넘게 살고 보니 습관처럼 매일 하던 일도 더디게 진행된다.

또 생각과 행동이 어긋날 때가 많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에는 평소에 실수를 하지 않던 것도 헝클어질 때가 있다. 커피 잔을 쏟기도 하고 작은 턱에도 부딪치거나 넘어진다. 마음은 바빠 몸을 빨리 움직이지만 예전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

글 쓰는 것도 집안일하는 것도. 마음은 이십 대를 갈망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특히 생의 목적어를 향해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는 특히 그렇다. 집안 정리를 말끔하게 하고 나와야 느긋하게 사람을 만나고 또 세상을 구경하며 즐길 수가 있다.

약속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버스정류장 쪽으로 가기 위해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무엇이 그리 바쁜 건지, 지나가는 차가 없자, 중년의 아주머니 두 사람이 빨간 불임에도 건너가고 있었다.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가는 행위에 부정적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살면서 무엇에도 대충이거나 눈치를 보며 무단 횡단할 것 같아 규칙을 잘 지킨다. 차가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시골길에서도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우두커니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런 나를 두고 지인들은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 일이지만 내가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하지 못한 이유도 융통성이 없고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것이 주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떤 성격을 타고났던지 간에 거기에 맞는 일은 분명히 있다. 원칙을 고수하고 융통성이 없는 성격은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기는 힘들어도 혼자서 하는 일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일까. 많은 것을 내려놓고 두 번째 직업으로 선택한 작가의 길은 나에게 안성맞춤이다. 물론 안정적이지 못하기에 결핍 속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만 장점도 있다. 하루에 10시간 작업에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나에게 최고의 편안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25년을 작가로 살다 보니 생각과 행동도 느려졌다.     

사진=Pixabay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내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희망의 만남을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도심 속으로의 외출 때문인지 소풍 가는 기분이 들만큼 설렌다. 미소를 머금고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고 나서 뒤쪽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 밖의 풍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며 편안히 웃으면서 걸어가는 사람, 땅에 떨어진 파일 뭉치를 주우며 급하게 버스에 오르는 사람,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 노인, 저마다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삶의 조각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모든 살아 움직이는 풍경 속에 나 역시 조금 후에 만날 편집장과의 대화를 내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협상을 위해 내가 꼭 해야 할 말들을 선택해서 맞추고 있다. A안, B안, C안으로 문제를 만들었다. 그 해답은 오가는 대화 속에서 찾아야 하니까.

글을 쓰고 좋은 출판사를 만나 독자들이 선택하는 책으로 나오려면 좋은 글만큼 정직한 출판사를 만나 협상과 진정성이 담긴 편집력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다가 작가에게는 자신의 글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의지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작품)을 만들어낼 테니까.

도종환 시인의 시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그렇다. 담쟁이는 겨울에는 절망이라 부를 만큼 죽은 듯 있다가도 봄이 오면 보란 듯이 푸른 잎을 주렁주렁 단다. 

여름에는 굵은 가지를 위를 향해 쭉쭉 뻗어 나간다. 가을이면 주홍 색깔로 전신을 곱게 물들이다가 겨울이 오면 다 내어주듯 털어내고 앙상한 가지로 남는다. 

사진=Pixabay

담쟁이를 생각하면 생의 사계를 보는 느낌이다. 담쟁이처럼 끈질기게 내 것을 찾아 당당하게 누리며 살겠노라 다짐하면서도 막상 돌아보면 결과에 대한 충분한 만족과 보상이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늘 작업을 하면서도 흔들리게 되고 주저앉기도 한다.

그럼에도 벽을 타고 넘는 담쟁이를 보면 용기를 얻는다. 담쟁이처럼 나는 여전히 내 생을 붉게 물들이는 씨앗(희망과 불굴의 의지)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니까 그나마 위로가 된다. 담쟁이는 나에게는 희망이다. 담쟁이를 생각하는 순간 힘이 나고 기분이 좋다.

담쟁이를 생각하며 생각의 주머니를 펼쳐놓은 사이 버스는 목적지인 인사동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내가 처음 마주한 월간지 편집장이 낯설지가 않을 만큼 편안했다. 물론 내가 의도한 대로 문제의 해답을 이끌어내었기에. 만족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인세나 원고료를 떠나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의 사명이고 자존심이다. 

생의 모든 것이 오늘처럼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만에 웃으며 만남을 마무리했다. 내일 다시 안갯속의 '내 것'을 찾아 헤매더라도 오늘은 희망의 날이어서 행복하다. 그래, 선명한 '내 것'의 희망을 가져야지. 그래야 실현 가능한 희망(목적어)이 보일 테니까. 그것이 정확할수록 실패보다 성취감을 더 많이 맛보게 될 테니까.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하든 내 눈높이에 맞는 생각과 행동이 나를 춤추게 한다. 내 몸이 신나게 춤을 춰야 영혼도 신이 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얘기처럼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투쟁하고 인내하는 노인은 생의 목적어를 향해 달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다만 그 노인이 나라는 생각을 해야 '내 것'을 찾아낼 수가 있고 그렇게 되기까지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며 기다림이라는 인내의 시간도 필요하다.

사진=Pixabay

바다 한가운데서 외로움과 절대 고독에 맞서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노인처럼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노인의 말을 명심하면 된다. 생각이 약하면 의지도 약하게 되고 의지가 약하면 도전을 하지 않게 되고 도전하지 않으면 현재보다 좋아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겠지만. 대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내 것'을 찾기 위한 과정은 험난하다. 반드시 불굴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또 무엇을 하든 목적어가 정확해야 한다. 또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낚아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희망 못지않게 도전을 미루지 않는 꿋꿋한 의지도 필요하다. 다만 희망이 내 눈높이에 있어야 실천도 수월하다. '내 것'을 향해 점을 찍듯 정확하게 다가가야 담쟁이처럼 넘지 못할 벽도 넘어 생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물들이게 된다. 거침없이 벽을 타고 올라 푸른 잎을 붉게 물들이는 담쟁이가 된다. 붉게 타오르며 세상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가장 중요한 나에게도 뿌듯해진다. 

더하여 행복의 정원으로 들어가 푹 취하는 멋진 순간과도 마주한다. 최고의 그 날을 위하여 찬란한 오늘을 만들자.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한 대로 살며 이 순간에 푹 취하자! 반짝반짝 빛나는 오늘을 만들며! 충실하게!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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