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알 사람은 알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젊은날, 호주를 여행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의 영화 곳곳에는 호주가 숨어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케언즈 근교의 파로넬라파크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이곳 카타추타에서 영감을 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은 유독 자연과 인간의 공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호주의 자연을 이곳저곳 다녀보니 그의 세계관을 여실히 공감하게 되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거대 산업 문명이 붕괴하고 천년의 세월이 지난 후를 배경으로 한다. 녹과 금속조각으로 황폐해진 대지. 유독한 독기를 내뿜는 균류의 숲인 부해는 인간들의 삶을 파괴한다. 세상은 곰팡이들과 ‘오무’와 같이 거대한 곤충류들이 장악하고 있다. 극소수의 인간 무리들은 뿔뿔히 흩어져 살게 되고, 군사국 토르메키아는 자연을 지배하려 든다. 반면 바람계곡의 사람들은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간다.

아직 부해의 공격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인 바람계곡. 카타추타 바람의 계곡은 영화속 바람계곡의 모태가 되었다. 카타추타는 서른 여섯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시간 코스와 두 시간 코스, 그리고 4km 트레킹 코스가 있다. 우리는 시간상 두 시간 코스를 택했다. 투박한 푯말을 따라 바람의 계곡을 향해 걷다 보면 거센 바람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거센 바람이 거슬리지 않는다. 거센 바람을 마주하다 보면 가끔 양극의 감정을 느낀다. 바람이 나의 길을 막는 것처럼 느낄 때도, 나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오늘 내가 느낀 바람은 분명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자연의 공포와 편안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점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할 때엔 기저에 공포가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을 지배 하려고 할 때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오르고 올라 드디어 정상에 선 순간 절로 탄성이 터진다. 금방이라도 나우시카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 것만 같다. 내가 지금 닿을 수 없는 저 언덕 너머에 나우시카가 사는 마을이 있다. 숲을 가꾸고 자연과의 공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상 언덕너머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오히려 언덕 너머의 광경이 더욱 신비롭게만 느껴진다. 닿을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곳. 내가 보고있는 이 장면을 놓치고 싶지않아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명이라곤 자랄 것 같지 않은 투박한 암석들과 그 틈에서 자라는 식물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떠한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 계속해서 인간의 문명이 발전하여 언젠가 울룰루-카타추타 국립공원 마저 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 공장을 세우고 아파트를 세우고 도시 국가를 세울 수도 있겠다.

그러한 시대가 왔을 때 우리는 악명 높은 토르메키아처럼 살아갈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바람계곡 사람들처럼 살아갈지 선택해야할 것이다. 파괴적인 지배만이 답이 아님을, 이 땅위에 있는 것들을 제거한 뒤 새로운 건설만이 답이 아님을, 한번 쯤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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