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이 가을에는 당신을 찾아 
잠시 머물다 오겠습니다 

내일모레 그리고 그 언제인가는
당신에게 가는 길을 열겠노라 말하면서도
당신 허락 없이 닫고 또 닫았던
나를 용서해주시지요

늘, 당신에게로 가는 삶은 퇴행성 병처럼
뒷걸음 쳐지기만 했습니다

이 가을에는
마음 편히 당신 그늘 아래서
누웠다가 기대었다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리허설 없는 삶처럼 당신과의 사랑도
여전히 리허설 없는 생방송입니다
내 인생의 삶이 관객이 필요치 않듯이
당신과의 사랑도 관객이 필요치 않겠지요

안에서 밖으로 또 그 안에서 밖으로 
그림자도 스며들지 못하게 꼭 잠근 채
당신 곁에서 편히 그리고 
오래오래 쉬다가 오겠습니다 
내 그리운 당신께 곧 가겠습니다 

- 김정한, 가을에 띄우는 편지 

사진=Pixabay

[공감신문] 참 지루한 여름이 끝나고 다시 10월입니다. 나를 좀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 길 위에 섰습니다. 미시령, 진부령, 한계령을 넘어가며 느릿느릿 움직이다 보니 해 질 녘에 경포대에 도착했습니다. 10월이면 늘 찾아오는 마음의 병 때문에 치유 여행을 서둘렀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흔들리는 내 마음을 포근하게 껴안아 주었습니다. 언제나 바다는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이 가을, 동해 바다를 찾으니까 가을을 노래한 시가 떠오릅니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로 시작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 생각나고, 가을이 조금 더 깊어가면 김현승 시인이 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의 기도'도 생각이 납니다. 또 오늘처럼 뼛속까지 그리움이 사무칠 때에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랫말이 들어있는 '잊힌 계절'이 생각납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생각은 7번 국도가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내가 강원도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7번 국도를 만나기 위해서니까요. 7번 국도의 배경은 샐 수 없을 만큼 영화와 드라마 속의 배경이 되기도 했지만. 7번 국도를 일명 '헌화로'라고도 합니다. 신라시대의 노래인 '헌화가'에서 딴 이름인데 가사 중에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자줏빛 바위 가에 /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또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경포대에는 5개의 달이 뜬다고. 하늘에 뜨는 달, 호수에 뜨는 달, 바다에 뜨는 달, 그리고 술잔에 뜨는 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작가로 사는 나에게는 오로지 초희라는 이름으로 시 쓰고 그림을 그렸던 천재 작가 허난설헌이 떠오릅니다. 한 떨기 꽃 같은 시를 남기고 스물일곱 살로 숨을 거둔 허난설헌이 떠오릅니다.

특히 내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국화와 들꽃, 그리고 길게 늘어선 붉은 소나무입니다. 그 고즈넉한 풍경에 함께 빠져들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푸른 솔잎은 뉘엿뉘엿 떨어지는 햇빛 틈에서 주황빛으로 물들어갑니다. 

건너편 산 등성이의 울긋불긋한 단풍나무 앞에는 모든 것들과 이별을 하려는 11월, 12월의 앙상한 나무도 서있습니다. 이제 곧 봄, 여름, 가을 동안에 무수히 쏟아냈던 밀어들과 눈물로 이별을 해야 합니다. 물론 충분히 애도식을 치루어야 합니다. 

시월은 화려했던 모든 것들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야 하기에 더 고독하고 슬프고 외로운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려했던 나와, 지나간 아름다운 것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니까요. 눈앞에 앙상하게 서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아낌없이 생각하고 아낌없이 경험하고 아낌없이 그리워해야 합니다. 곧 내 앞에 다가온 것들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니까요.

사진=Pixabay

옥색에 가까운 시월의 물빛은 찰랑거리며 햇살에 반짝거리고, 시월의 파도는 첫눈처럼 하얗게 밀려왔다 쓸려갑니다. 방금 멀리서 낙화한 주홍빛으로 곱게 물든 단풍잎을 보니 애틋함이 밀려듭니다. 스물에서 서른 즈음에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불같은 애정, 그것을 선물했던 분, 아침 햇살처럼 환했던 그분이 떠오릅니다.

미소 지으며 나직하게 내 아름을 부르던 분,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를 먹으며 함께 미래를 설계했던 분이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하기도 했지만 나를 더 많이 기쁘게 했던 분입니다. 유독 그분이 그리운 이유는 시월에 이별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해도 두 달 조금 남았습니다. 수십 번의 가을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가을앓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숱한 만남과 이별 속에서 그리움은 여전히 처형되지 않고 10월의 마지막 밤, 11월의 마지막 밤, 12월의 마지막 밤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눈감는 그 날이 와야 이 치명적인 그리움이 멈추게 될 것 같습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곁에 머무는 뜻 모를 그리움을 안고 경포대 바닷가를 헤집고 다닙니다. 차가워진 물보라에 뺨을 적시며 바닷길을 걸었습니다. '쏴아' 하는 파도 소리가 먼 데서부터 너울거립니다. 하얀 물보라가 붉은 소나무 사이를 걸어 다닙니다. 시간에 쫓긴 듯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성큼성큼 지나갑니다. 침묵으로 말 상대를 해주는 바다,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는 소나무숲길, 이따금 정신 차리라고 뺨을 찰싹 때리는 바닷바람.

그런 식으로 바다는 나에게 ‘잘 살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가끔씩 눈부신 가을볕으로 전신을 어루만지며 의연하게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따뜻한 응원을 해줍니다. 두려움과 도전사이에서 휘청거리는 나를 붉은 햇빛으로 감싸 안으며 뭉클한 위로를 합니다.
        
경포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데 비가 내립니다. 아마도 가을비인 것 같습니다. 서늘한 비 줄기가 가을을 데려다주고서 총총걸음으로 떠나가는 이 고즈넉한 밤. 당신과 마주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고독이 소리 없이 녹아내릴 것 같습니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혼자일 때 존재의 쓸쓸함은 처절합니다.

시월의 밤이 유독 쓸쓸하기에 이렇게 편지를 쓰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언어의 파편들을 주워 모아 의미 있는 글을 쓰기 위한 몸부림, 무엇인가 뭉클함을 주는 글을 쓰고 싶지만 키보드만 보면 아득해지고 먹먹합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은지도 모르고 살아온 듯합니다. 지나온 시간, 목적 있는 삶을 살아온 것인지 밤이 새도록 고민해보아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어둠이 떠오르는 햇살 한 줌에 소진해 버리듯 밤새 그렇게 토해낸 진실한 언어, 치열하게 살아내는 생의 몸부림을 글 몇 줄로 변명하기는 참으로 힘이 든다는 것을 글을 쓸수록 느낍니다. 가면과 헛된 욕망을 삭제 버튼 하나로 없앨 수 있다면 한 겹 한 겹 진실로 쌓아가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고의 경험으로 쌓아 올린 성실의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멀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성실하게 꾸준히 써나 갈 것입니다. 비릿한 바다향을 맡으며 삶에 지친 육신을 달래고, 헝클어진 과거를 바다에 훌훌 털어 내기 위해 맛보지 않은 술도 한잔 하렵니다.

사진=Pixabay

하늘의 별을 보며 당신을 생각하는 사이에 어둠이 동해바다에 풍덩 빠졌습니다. 한낮에 밀어를 나누던 괭이갈매기도 쉴 곳을 찾아 날아갑니다. 바다 건너 따스한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진 집에서는 사람 냄새가 납니다. 따뜻하게, 환하게, 편하게 이곳까지 느껴집니다. 이제 나도 쉴 곳을 찾아 잠을 청하렵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오늘은 더 편하게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소식 전할 때까지 그리운 당신도 편안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