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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김창호 칼럼] 시장(市場)에서 생각하는 인간의 길

[공감신문] 한가한 시간에는 지금도 시장을 자주 둘러본다. 무엇인가를 사는 쇼핑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냥 시장을 오가는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을 굳이 취미라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시장은 우리들에게 각별한 추억을 일깨운다. 시장 풍경은 언제나 활발했고 물건들은 싸고 넘쳤다. 활발한 인적·물적 유통이 이루어지는 곳이 시장이다. 명절에 부모님이 새 옷을 사주는 곳도 시장이었다.

예전의 우리 시장은 사람이 오가고 소식이 전해지고 열려있는 소통과 공감의 장소였다. 소문이 떠다니고 여론이 있고 구경거리가 있고 새로운 뉴스가 전해졌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고단한 서민들의 삶이 어우러지는 세계였다. 하루 종일 모두를 팔아야 얼마 되지 않은 채소나 과일, 나물 등을 작은 좌판에 올려놓은 가난한 할머니의 모습은 어린 마음을 슬프게 하기도 했고, 돈을 벌어야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고민하게 하기도 했다. 장터에서만큼 살아있다는 느낌이 생생한 곳이 어디에 또 있을 것인가.

시장은 사람이 오가고 소식이 전해지고 열려있는 소통과 공감의 장소였다.

거유(巨儒) 율곡 이이(1536~1584)로부터 ‘진기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이라는 인물평을 받았다는 당대의 이인(異人) 토정 이지함(1517~1578) 선생은 “시장은 사람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만나는 곳으로 시장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했다. 

시장에는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먹거리가 있고 때로는 한두 푼의 돈을 놓고 에누리를 다투는 이재(理財)의 묘리와 풍성한 인심도 볼 수 있다. 시장에서는 놀이판도 벌어졌고, 원숭이를 내세우고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나, ‘어린애들은 집에 가라’는 뱀 장사도 시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시장 주변의 공터에는 때로 서커스단도 들어왔다. 모두가 힘들었던 어린 시절, 복잡한 시장 근처에 사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시장바닥에는 보잘 것 없는 건달들도 많지만, 호연지기를 가진 영웅호걸도 숨어있는 법이다. 《삼국지》를 찬연히 빛낸 유비, 관우, 장비는 시장 바닥에서 서로 만나 평생의 지기(知己)가 되는 소중한 인연을 만든다. 동문을 만드는 학교에서 만난 것이 아니다. 특정학교의 동문이라는 이유로 ‘형님, 동생’ 하며 패거리를 짓고 도원결의를 남발하는 부박한 풍조는 늘 만연했다. 인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처세술이 유행하는 세상은 상당히 졸렬하다.

시장이나 강호에서 미인과 군자, 뜻과 기(氣)가 통하는 벗을 우연히 만나는 것도 큰 복이다. 높다는 조정(朝廷)이나 출사를 준비하는 성균관에만 인재가 있다는 것은 하릴없는 고집이거나 절반의 진실밖에 없을 것이다. 맹자는 《맹자》 <고자 하>에서 지적한다. “순은 농사를 짓다가 떨쳐 일어났고, 부열은 성벽 쌓는 일을 하다 기용됐고, 교력은 어물과 소금을 팔다가 기용되었고, 관이오(관중)은 옥리에게 잡혀 있다가 기용되었고, 손숙오는 바닷가에서 살다가 기용되었고, 백리혜는 시장에서 살다가 기용되었다.”

재야(在野)라 할 수 있는 강호와 시장에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내공이 깊은 고수들도 있는 법이다. 입신양명하거나 넓은 세상에 나가 주유천하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작은 시장에라도 자주 가서 구경을 하거나 산책을 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로도 이해가 된다. 이덕무(1741~1793) 선생은 《영처문고》에서 전한다. “산림 속에서 숨어 살면서 세상의 명리(名利)에 마음을 두는 것은 큰 부끄러움이다. 복잡한 시정(市井)에 섞여 살면서 세상의 명리에 마음을 두는 것은 작은 부끄러움이다.

산림 속에 숨어 사는 데 마음을 두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복잡한 시정에 섞여 살면서 숨어 사는 데 마음을 두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다...나는 복잡한 시정에 섞여 살면서 숨어 사는 데 마음을 두는 자이니, 그렇다면 이 작은 즐거움을 가장 높은 것으로 말한 나의 이 말은 혹 물정 모르는 소리일지 모른다.” 

성대중의 청성잡기/ 사진= 올재클래식스

공자는 “예를 잃으면 이를 초야에서 찾는다(禮失而求諸野).”고 했다. 조선 영·정조 시절의 문장가 성대중(1732~1809) 선생의 명저 《청성잡기》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붕당과 조정은 참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근본이지만, 강호와 초야라고 해서 어찌 세상의 교화(敎化-인륜을 밝히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를 담당하지 못하겠는가. 초야에 인물이 있는 것 역시 조정의 복이다.” 정조(1752~1800) 시절 문체반정의 희생자가 되어 등용되지 못했던 문인 이옥(1760~1812) 선생도 “야인이 없으면 군자를 양성할 수 없다(無野人莫以養君子).”고 강조했다.  

왕강거(생몰 연대 미상)는 <反招隱詩(반초은시)>에서 “작은 은자는 산속에 숨고, 큰 은자는 저자에 숨는다(小隱隱陵 大隱隱朝市).”고 한다. 시정(市井)에서 배우는 도(道)가 청산에서 깨우치는 길보다 오히려 대도(大道)일 수도 있다는 취지다. 유학의 가르침은 도가 실현될 만하면 조정과 세상에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청산(靑山)으로 물러나 도를 간직한다고 한다. 득의와 실의를 반복했던 선비의 자기정화(自己淨化), 또는 하나의 기획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은거가 세도를 새우는데 보탬이 된다는 주장이다.

지리산/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그래서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명산(名山) 지리산에는 3천여 명, 계룡산에는 2천여 명의 자천(自薦) 또는 타천(他薦)의 자연인, 종교인, 도인, 선비, 처사, 보살들이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용맹정진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도를 찾고 있는지, 도가 사람을 찾고 있는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하여튼 별빛이 달빛을 가릴 수 없다. 그리고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논할 수 없다고 한다.

지리산이나 계룡산에 거처를 마련한 사람들 중에는 갑자기 머리털을 깍지 않고, 수염을 기르고, 개량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그것이 득도(得道)의 높은 경지를 나타내는 어떤 징조라면 쌍수를 들어 환호할 일이다. 그러나 장조(1650~?) 선생은 이런 풍조와는 상당히 다른 취지의 말씀을 오래 전에 남기고 있다. 《유몽영》에서 “가슴 속에 언덕과 골짜기를 간직하고 있다면, 도시도 산림과 다를 바 없고, 흥취를 안개와 노을 속에 부치니 티끌세상도 신선이 산다는 곳과 같음이 있다”고 한다.
                                           
대형 마트나 화려한 쇼핑센터에 밀려 우리 시장은 위축되고 자꾸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현대화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전통시장의 매출이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는 소식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활기찬 상인(商人)으로 살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박지원 열하일기/ 사진=보리출판사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열하일기》에서 통찰한다. “시장에서는 화목을 볼 수 있고, 우물에서는 질서를 볼 수 있다. 서로의 물건을 가지고 비교해보고 두 사람의 뜻이 서로 맞으면 교환을 하는 것이 시장에서 물건을 교환하는 도리이고, 뒤에 온 사람이 먼저 온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물동이를 줄지어 놓고 차례를 기다리다가 자기의 뜻을 채우면 돌아가는 것이 우물에서 물을 뜨는 도리다. 대저 역사의 본체는 꾸미지 않고 정직한 것을 본바탕으로 하고, 사람의 시호는 그 인간의 잘잘못을 평가해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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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lstlf 2017-10-14 03:08:19

    선과 악이나 정의와 불의라는 단어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하느님은 세상을 선과 악이나 정의와 불의로 구분하지 않으므로 하느님은 선한 자나 정의로운 자의 편이 아니다. 오랜 역사동안 종교인들과 진보세력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규정한 ‘선’과 ‘정의’를 실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유명한 과학자들도 이 책에 반론을 못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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