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지 못하는 청춘들에 대하여

[공감신문] 우리는 왜 항상 실수를 거듭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망각이라는 오묘한 선물을 받았기 때문 일수도 있고, 혹은 이성이 마비되는 순간들을 곧 잘 마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런 순간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20대 후반이 되니 보통 연애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성을 대하는 방식 중 비중이 큰 두 타입이 있다. 첫 번째 부류들은 칭찬이 많은 타입 들이다. 그들은 어느 이성에게나 호의적이다. 누구에게나 기분이 좋을 것 같은 말을 한다. 대표적으로 "왜 남자친구(여자친구) 없어요? 인기 많을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듣고 안 좋아할 사람은 없다. 과연 그가 정말 그렇게 느껴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 컷

저 질문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정말 애인이 있는 지 없는 지 궁금해서 묻는 것이거나 혹은 그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알기 위해 묻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설명하려는 타입의 사람들은 그게 정말 궁금해서 저리 묻는 게 아니다. 그저 인사치레에 불과하다.

또한 그들은 이성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원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저 친한 친구인듯 여자인듯 그 선을 적당히 지킨다. 그게 어려울 것 같다고? 그들에겐 보기보다 쉬운 일이다. 오히려 거기에서 완전히 이성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더욱 어려울지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리 정말 좋아해도 진심인 티가 잘 안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이성에게 달콤한 말을 하는데, 나에게 하는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밤늦게 오는 연락이, 여럿에게 시간이 나서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내 생각이 나서 하는 건지- 받는 사람 입장에선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들은 그렇게 느껴지게 한다. 그 뿐인가. 오히려 그들은 정말 진심어린 말을 하는 데에는 서툰 편이다. 진짜 겁쟁이는 사실 이런 타입들이다. 오히려 처음부터 요즘 말로 '철벽친다'는 사람들보다도 마음이 여리다. 대쉬할 마음은 굴뚝같은데 상처받을까봐, 혹은 확신이 없어서 못하다보니 이성을 친절하게만 대하는 게 그저 습관이 된 거다.

이들보다 덜 겁쟁이인 사람들이 있는데, 겉보기엔 더욱 겁이 많아 보일 수 있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두 번째 부류인, 이른바 철벽 치는 타입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드러나는 순간을 몹시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여자들의 경우, 어떤 강아지나 아기를 보고 귀여워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오히려 견디지 못하기도 한다. '난 털털한 여자야'라고 본인 스스로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콧소리가 흘러나오며 아이고 귀여워 강아지! 하는 본인 모습을 마주하면 소스라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만 그게 튀어나와도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사실은 내면에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자신의 여성성을 과하게 어필하는(애교나 섹시한 의상) 여성을 보면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거다. 자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러하다. 그러기에 자신의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꼭꼭 숨긴다. 어필할 대상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거나, 또는 어필되는 게 쑥스러워서.

사진=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 컷

우리는 모두 실수하거나 실패할 수 있다. 성공이 보장된 것들을 행하는 건 도전이라 할 수 없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건 그저 행동에 불과하지 않나. 우린 누구나 거절 당 할 수 있는데 그게 마치 대단히 잘못되거나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건 당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런 것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매력적인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주관적인 취향도 무시할 순 없는 일이고, 또 누군가의 맘 속에 당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겁먹고 있는 건 거절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 때문인데, 여기에 이런 감정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사진=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 컷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무지 뻔하지만 정말 어려운 얘기다. 우린 결코 어린 시절처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랑을 주고받던 부모님과 달리,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왔으니까.

아마도 이런 겁쟁이들이 마음껏 사랑하도록, 자유의 세상 밖으로 꺼내줄 수 있는 이들은 사랑에 겁내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진심을 다해 사랑을 전달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진실로서 고민했기에 거부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만큼 고민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줄 안다.

이들은 상대방의 참된 마음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은 은유를 증폭 시키며, 끝없는 것들을 상상하고 기대하게 만든다. 사랑과 은유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밀란 쿤데라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숱하게 말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되고, 로맨티스트가 된다.

혹시 내가 연애하지 않는 대표적 부류 중 두 가지 타입에 속하는가? 당신은 어서 밖으로 나아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사랑이 넘치는 누군가 나서서 당신을 자유의 세상으로 이끌어 내줄 테니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단, 세상을 보는 눈은 만 가지 형태로 바뀔 수 있고 그러기에 우리는 만 가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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