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거짓말은 나쁘다. 그건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거짓말을 하면 혼난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고, 설령 거짓말을 하게 되면 괜스레 뜨끔해하거나 죄를 지은 것처럼 죄책감을 느꼈다.

어릴 땐 부모님이 우리 거짓말에 속아 '주는' 거라고 미처 생각지 못하고 뻔뻔했었다.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성장해가면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숙제를 왜 해오지 않았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이런 저런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도 위안을 주기 위해, 허풍을 떨기 위해 등 여러 이유로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느낀다. “아, 거짓말을 한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구나!”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이제는 거짓말을 다루는 기술이 능숙해진다. 그리 존경하지도 않는 교수님께 성적을 위해 감언이설을 하거나, 이성친구와 놀러가기 위해 부모님께 MT를 간다고 핑계를거나. 아, 대학시절이란 어찌나 거짓으로 가득찼었는지!

직장인이 된 지금은 무엇이 거짓말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달까?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그 능숙한 거짓말 ‘스킬’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극에 달한다. 진실과 거짓말을 일정 비율로 섞기도 하고, 거짓말과 또 다른 무언가를 조합하기도 한다. “오늘 올릴 보고서는 아직인가?”라는 상사의 물음에 보고서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아, 오늘 보고서는 확인할 부분이 좀 많아서 시간이 좀 길어졌습니다. 곧 올리겠습니다”라 대답할 줄 알게 됐단 말이다.

거짓말이 일상이 된 어른들의 정모 장면?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거짓말은 나쁜 거다. 단,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한 목적의 거짓말만. 나머지는? 음. 쉽게 말하긴 어렵다. 아마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거짓말을 늘 입에 달고 살 터이니 말이다.

섣불리 ‘세상 모든 거짓말은 나쁜 거다!’라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거짓말은 그 목적이 어떠냐에 따라 옳은 일에 쓰이기도 하고, 딱딱하고 메마른 우리 삶에 활력소가 돼 주기도 하니까. 또한 바른 말 고운 말만 하는, 옳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은 여러모로 타인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여기니까.

사기꾼들은 '어쩔 수 없어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거다!

우리가 평소 하는 거짓말의 대부분이 ‘어쩔 수 없어서’라고 호도하진 않겠다. 또한, 제 이익을 위해 남을 속여 피해를 입히고, 이득을 취하는 식의 ‘사기꾼’들이 하는 거짓말은 또 다른 얘기고,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란 점도 분명히 해두겠다.

하지만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하는 영화 속 인물들의 거짓말은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이들의 거짓말은 남을 즐겁게 하거나,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주고… 어쨌거나 지켜보고 있으면 즐거워진다(물론 영화 속 남의 얘기니까 그럴지 모르지만).

온갖 영화 속에는 거짓말을 하는 장면들이 많이 담겨있다.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는 그 중에서도 작중 인물들의 거짓말이 유난히 돋보이는 영화들을 살펴봤다.

 

※ 다음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됐을 수 있다.

- 거짓말의 발명

- 인생은 아름다워

- 빅 피쉬

- 라이어 라이어

 

■ 거짓말의 발명 (2009)

누군가의 거짓말에 상처받고, 속상했던 경험이 있으신지? 혹자는 거짓말이란 못된 그 녀석이 지긋지긋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짓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외칠지 모른다. 이 영화, ‘거짓말의 발명’ 속 세상이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세상이다. 거짓말, 아니, 그 비슷한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거든.

거짓말이 없는 세상에서는, 초면의 소개팅 상대에게 듣는 팩폭 쯤은 감수해야 한다! [거짓말의 발명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는 많은 이들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 ‘만약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세상이 있다면?’을 실현시켰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은 다소 삭막해 보이고, 그 세상의 구성원들은 타인의 따가운 말에 그리 상처받지 않는 무신경함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로원 이름은 ‘오갈 데 없는 늙은이들을 위한 슬픈 곳’이고, 그곳 직원들은 방문객에게 “부모 버리러 오셨나요?”라 묻는다.

자, 아무도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여러분들도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면 상상이 그리 재밌진 않을 것이다. 이 헛된 망상의 핵심은 “아무도 거짓말을 못 하는데 나만 할 수 있다” 아니겠나? 이 영화는 제목이 ‘거짓말의 발명’이듯, 진실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주인공만이 유일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고 난 뒤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세계 최초로, 그것도 혼자서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승승장구하는 건 당연지사. [거짓말의 발명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아무도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세상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할 것 같다. 특히 ‘쿠크 멘탈’인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누군가 진솔된 말로 여러분의 치부나 상처를 건드린다면 기분이 어떻겠나? ‘팩트 폭행’이란 말도 있지 않나. 진실이라도 때로는 아픈 법이다. 또, 이런 세계에는 영화랄 것도 없다! 거짓말이란 개념이 아예 없으니, 시각적인 눈속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거다.

"당장 나랑 자지 않으면 지구에 종말이 올 거예요!" [거짓말의 발명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심성 착한 주인공 ‘마크’는 죽음이 두렵다는 연로하신 어머니에게 ‘천국’의 개념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상상해내 거짓말로 위로하고, 사랑하는 아내의 요리가 아무리 구역질나도 맛있다고 거짓말을 해 준다. 거짓말이란 그런 것 같다. 적당한 수준이라면 삶을 보다 달콤하고 풍성해지도록 꾸며주는, 소스나 잼 같은 것.

 

■ 인생은 아름다워 (1997)

온갖 고난과 사고를 겪으며 풍진 인생을 살았던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그림에는 ‘Viva La Vida’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럽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여, 만세!(Viva!)’라는 의미겠다. 그녀처럼 힘든 삶을 이겨낸 이들이 말하는 인생예찬에는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귀도의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같은 맥락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에 수감된 누군가가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느낄까? 전체적인 줄거리만 놓고 보면 다소 반어적이라고 느껴질 법 한 제목의 이 영화도 그렇다. 하지만 주인공 귀도가 그린 삶의 궤적을 좇아가다보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화 제목처럼 말할 수 있게 된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주인공 귀도의 생애 전반기, 그러니까 ‘도라’를 만나고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는 부분, 그리고 그녀에게 구애한 끝에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갖게 되는 과정까지는 상당히 아름답게 그려진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결국 세 가족은 유태인 수용소로 잡혀가게 되고 만다.

아들 조슈아가 유태인 수용소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랐던 귀도의 눈물겨운 노력.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그러나 귀도는 아직 어린 아들 조슈아가 끔찍하고 절망적인 수용소의 상황을 몰랐으면 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사실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은 게임이라고. 1000점을 달성하면 탱크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그 덕에 조슈아는 수용소 생활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을 바로 그 장면.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어쩌면 이 거짓말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비록 거짓말일진 몰라도 아들의 동심을 지켜주려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이니까. 그런 노력 덕분에 조슈아는 비참한 수용소 생활을 즐거운 게임처럼 여길 수 있었고, 종국에는 아버지의 말처럼 탱크를 선물받게 된다. 탱크를 보고 신나하는 조슈아의 표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자아낸다.

 

■ 빅 피쉬 (2004)

초등학교 2학년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당신의 ‘왕년’, 젊었던 시절에 대해 허풍을 늘어놓길 좋아하셨다. 할아버지는 꼬마였던 기자에게 하느님, 부처님과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였다는 이야기, 포탄이 떨어지던 6.25 전쟁 당시 적군들을 다그치며 북한으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주셨다. 기억하자면 그밖에도 끝없이 쏟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버지 에드워드의 허풍에 질려 어머니하고만 왕래하는 주인공 윌. [빅 피쉬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아마 팀 버튼 감독의 가족 중에도 그런 이가 한명 있지 않았나 싶다. 영화 빅 피쉬를 보면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더라. 윌 블룸은 어린 시절 자신을 즐겁게 해줬던 아버지의 허풍 섞인 모험담이 영 지긋지긋하다. 그는 어느새 반려를 만났건만, 아버지의 허풍은 윌이 코흘리개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하질 않는다. 윌은 도무지 진지할 줄을 모른다며 아버지를 떠나 왕래를 끊었다. 그러다가 그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다시 아버지 곁을 찾는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에드워드의 곁에는 아내 산드라만이 힘이 돼 준다. [빅 피쉬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암으로 위독하다던 윌의 아버지 에드워드는 윌의 짝이자 며느리가 될 조세핀에게도 변함없는 허풍을 늘어놓는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었지만, 그가 들려준 기상천외한 모험담이 100% 거짓말인 것은 아님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아버지의 생을 되짚어나가기 시작한다.

윌은 아버지 에드워드의 장례식에서야 깨닫는다. 아버지가 실제 자신의 삶을 토대로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어내 자신의 유년기를 즐거운 모험담으로 가득 채워줬었단 사실을. 심지어 사실과 완전 딴판인 것도 아니었다. 물론 에드워드의 허풍보다는 조금 현실적인 모습들을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이해한 윌은 결국 그에게 아버지가 바라던 대로의 멋진 장례식이 벌어진다고 거짓말을 해준다. [빅 피쉬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기자는 아직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나 손주가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외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허풍을 늘어놓으셨는지 짐작이나마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동화 속 내용처럼 들려주려는 까닭은, 세상 가장 소중한 그 작은 아이가 좀 더 꿈꾸고, 좀 더 상상하면서 즐겁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초라한 진실보다는 화려한 거짓이 낫다. 그것이 사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 [번외] 라이어 라이어 (1997)

짐 캐리는 ‘거짓말’이란 소재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좀 다른 맥락이지만 ‘예스맨’ 영화에서는 거절과 부정을 일삼다가 일련의 사건 이후 본인이 원하건, 원치 않건 “Yes!”라 대답하게 되니 그것도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겠다. 또한 ‘트루먼쇼’는 또 어떤가. 그건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전부 다 거짓말 아니었나?

법정에서 거짓말 쯤 서슴치 않는 악질 변호사 플레처. [라이어 라이어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라이어 라이어’는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한 가장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플레처’는 소송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질’ 변호사다. 그런 불도저 같은 면모와 변호사라는 직업이 맞물려,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

이 모든 무서운 일의 발단, 맥스. 야 임마! 너도 어른 돼 봐라! [라이어 라이어 스틸컷 / 네이버 영화]

하지만 직업병인건지, 가족들에게까지 거짓말을 일삼아 여러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에게 ‘가족 약속 펑크’란 그리 가책을 느낄만한 일도 아니다. 아빠가 너무 좋은 아들 맥스는 생일 파티에 아빠가 꼭 와 줄 거라 믿지만 어김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맥스는 소원을 빈다. 딱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아빠가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사실 가슴 따뜻한 가족 영화라고도, 짐 캐리의 ‘하드 캐리’가 돋보이는 코미디 영화라고도 볼 수 있지만 가장의 입장에서는 무섭기까지 한 내용이다. 만약 우리가 그의 상황이라면? 만약 여러분이라면 “부장님, 저는 회사 사정보다 제 사정이 더 중요하니 그 업무는 거절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나? “어휴, 그런 건 개그가 아니라 고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나?

사실상 짐 캐리의 원맨쇼에 가까운 코미디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라이어 라이어 스틸컷 / IMDb 영화]

어린 시절 추억에 젖어 다시 본 이 영화 속 설정은, 어른이 돼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 우리에겐 상당히 무시무시하다. 생각해보자. 만약 여러분이 사무실에서 거짓말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면? 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마치 우리 부장님 얼굴처럼!(농담)(딸랑딸랑)

 

■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거짓말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말에 거부감을 갖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은 오늘 몇 번이나 거짓말을 했는지 셀 수 없지만, 정작 타인이 자신을 속이려 드는 행위 자체는 껄끄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군갈 웃게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거짓말. 물론 적당한 선에서만.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그것이 거짓인줄을 알면서도 미소 짓게 만드는 달콤한 거짓말, 혹은 믿고 싶고 속고 싶은 거짓말들도 있다.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부터 시작해서, “우리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거짓말들은 때로 우리 삶을 보다 달달하게 만들고, 다양한 색으로 물들인다.

‘거짓말의 발명’ 속 마크의 착한 거짓말이라면, ‘빅 피쉬’ 속 에드워드 블룸의 허풍 섞인 귀여운 거짓말이라면 믿고 싶어진다. 또한 귀도가 조슈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하는 거짓말에는 다정함과 따뜻함이 묻어있다.

기자도 만약 자녀가 생긴다면 허풍 섞인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다. 아빠 어렸을 적에는…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앞서도 언급했듯 거짓말은 나쁜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한 에드워드 블룸, 마크, 귀도의 그것과 같은 거짓말이라면 적당한 수준에서 속아 넘어가 보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일지 모른다. 뭐 어떤가? 누군가를 상처주지 않는 것이라면 괜찮다. 오늘은 그런 착하고 다정한, 귀여운 거짓말 한 번 해보시길 바란다. 교양공감 독자 여러분, 오늘도 멋지고 아름다우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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