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한국 문화 산업계 흑역사’라 일컬어지는 시기가 있었다. 20세기가 저물어간다는 시기와 함께 ‘밀레니엄 바이러스 Y2K’가 맞물려 유행했던 스타일, 바로 ‘세기말 콘셉트’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던 1990년대 후반이다.

라면 이름에도 '사이버'가 붙었던 그때 그 시절! [농심 김치 사이버 라면 / 온라인 커뮤니티]

97~99년경 인기를 끌었던 이 콘셉트는 상당히, 정말 상당히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마치 미래세계에서 온 듯(어느 미래?) 삐죽 빼죽 한껏 반항적인 헤어스타일, 번쩍이는 ‘레쟈’ 재질의 검정색과 은색 복장. 거기에 ‘사이버(Cyber)’란 단어를 갖다 붙이면 완성! 여러분도 세기말 워리어가 될 수 있다!

물론 길거리에서 그런 과감한 이들이 자주 보인 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TV속에서만 보였긴 하지만 이런 스타일은 정말 ‘지나칠 정도’로 크게 유행했었다.

조만간 20년 주기가 되돌아와, 세기말 콘셉트가 대 유행할지 모른다니. 무시무시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앞선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유행은 20년을 주기로 돌아온다던 얘길 전해드린 적이 있었다. 10년은 기존의 유행이 완전히 사라지기에 모자란 시간이고, 20년은 돼야 한 때 유행했던 무언가가 다시 등장했을 때 ‘신선하다!’는 소릴 듣는단 소리다. 그런데, 곧 있으면 이 세기말 콘셉트가 유행한 지 20년이 지난 때가 도래한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이니!

다행히 유행에 빠른 사람들이 그런 은박지 같은 옷을 입거나, ‘드래곤 볼’에 나올 법한 헤어스타일을 하는 모습이 보이진 않는 것 같다. 아마 90년대 후반의 그 스타일은 다시는 유행하지 않을 듯 싶다.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를 통해 90년대 후반 유행했던 그것들을 살펴보자. 지금은 돈을 쥐어줘도 못 할 것 같은 그런 패션 스타일들, 손발이 오그라드는 광고들과 영화들에 사용된 세기말 콘셉트를!

 

■ 프로게이머들의 복장

어째 갈수록 미모에 물이 오르는 것 같은 두 사람. [SBS 런닝맨 방송 장면]

최근 들어 게임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뇌섹남’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는 임요환, 홍진호 등 프로게이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그런 그들도 90년대 후반의 한때엔 ‘사이버 전사들’이었다.

당시 컴퓨터를 가지고 체스처럼 수 싸움을 벌이거나 전략을 세우며 맞붙는다는 개념이 되게 ‘미래적’이라 느껴졌었나 보다.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마악 ‘프로게이머’란 개념이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당시 프로게이머들은 모두 테크노 풍의 괴랄한 은박지 옷을 입고 경기를 펼쳤더랬다.

당시 프로게이머들의 경기장 모습…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복장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한판 승부를 펼치는 무대, 스튜디오도 세기말적 분위기 일색이었다.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봤을 법한 구조물과 의자, 게임 플레이 몰입을 방해하는 오색찬란한 조명에 드라이아이스로 안개 효과까지 나왔었다.

엥? 저거 완전 베지터 전투복 아니냐?! [온게임넷 방송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하지만 어쩌겠나, 가상의 병사들을 가지고 전쟁을 벌인다는 데. 당시 유행했던 그런 콘셉트가 정말 ‘딱!’ 맞아떨어졌음은 어쩔 도리 없었지 않았을까?

 

■ 세기말풍 아스트랄 광고 대잔치

90년대 서울의 모습. [인스티즈 캡쳐]

저물어가는 20세기,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 멸망설과 함께 Y2K 문제로 세계는, 그 중에서도 특히 외환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대한민국 분위기는 상당히 흉흉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대다수였지만, 또한 음모론을 늘어놓길 좋아하는 이들이나 철딱서니 없는 몇몇은 정말 지구가 멸망하리라고 굳게 믿었었다.

이젠 삐삐라고 하지 않는댄다! 그럼 뭐라고 해야하냐!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헌데 업계가 그런 기류를 발 빠르게 캐치하고 유사한 콘셉트로 단장한 제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아니다, 제품들은 평범한 축이었는데 광고가 세기말 콘셉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쏟아져 나온 제품 중에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의 ‘명짤’을 탄생시킨 광고들이 많았다.

이 세상 커피 아니면, 어느 세상 커피일까? [레쓰비 광고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그냥 커피가 아니라 XXX?” 훗, 그 정도 광고 카피는 우습다. 예전에는 ‘저세상 커피’도 있었다!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L캔 커피의 아스트랄한 광고 카피, “이 세상 커피가 아니다!”를 말한다. 저 ‘테크노 여전사’ 같은 메이크업을 한 여인은 우리의 ‘달심’, 한혜진 모델이라고 한다.

세기말, 빵의 전쟁이 벌어졌던 시기도 있었다. 국지니 빵, 포켓몬 빵 등등… [핑클빵 광고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그 뿐인가, “빵을 가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던 당찬 ‘빵’ 광고 문구도 있었다. 제주도 민박집 회장님이 속해있던 원조 요정 ‘핑클’을 광고모델로 내세운 ‘핑클빵’이다. 음. 빵을 가진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니, 어떤 세상일지 참 궁금하다.

음… 그래서 어부바는 왜 하셨죠? [애니콜 광고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다음은 이 광고를 보자. 터미네이터2나 팬텀2040, 아니면 메가맨 시리즈의 인트로 문구처럼 20XX년 어디선가 튀어나왔을 것 같은 복장의 남자(장혁)가 한껏 매서운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고, 그의 등 뒤에는 미모의 여인(박지윤)이 ‘어부바’를 한 채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당췌 무슨 의미를 전달하려는지 모르겠다고? 그땐 의미 전달보다 시각적 충격이 더 우선시됐었는가보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아이를 원한다던 그분들. 저들 중 문희준씨만 득녀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스테이션 광고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이것 말고도 90년대 후반에 나온 지면 광고 등은 요즘 시선으로는 감히 이해할 수도 없고 범접할 수도 없는, 지켜보고있자면 조금 손과 발이 조금 괴로워지기까지 하는 광고들이 많았다.

 

■ 테크노 음악의 광풍

세기말이니까, 이왕 숫자로 할 거면 '666'이 어때?! [666 앨범 재킷]

90년대 후반 대한민국 대중음악계 최대 화두는 단연 ‘테크노’가 아니었을까?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는 음악을 다루는 시간이 아니기에 깊이 파고 들진 않겠지만, 테크노는 이 ‘세기말’ 콘셉트의 흑역사 시절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악 분야이기에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겠다.

게게게게겟업~ 하던 그 광고음악도 떠오른다. [삼성 마이젯 광고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90년대 후반을 보낸 분들은 기억하시는지? 당시 클럽 문화의 열풍과 함께 테크노 음악이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배우 전지현을 필두로 많은 연예인들이 TV에 나와 666의 ‘Amokk’란 곡에 맞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춤을 췄었다. ‘도리도리 춤’의 시작이다.

그렇게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책임지라고 하면 무섭잖아요 누나. [이정현 '와' 무대 장면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가수 이정현도 99년 ‘와’로 혜성같이 등장해 새끼손가락 마이크와 부채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실제로 그 파급효과는 상당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이 지난 아직까지도 기자의 눈에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사실 당시 그녀가 보여준 무대는 ‘이전까지 없었던 무언가’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 보기에는 조금 무섭기도 했었다...

 

■ 평화의 시대? 혼돈의 시대!

다른 가수나 팬들이 흰 풍선을 멋대로 썼다간 큰 호통을 듣기도 했었더랬다.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소싯적에 흰 풍선 좀 흔들어보셨던 누님들은 아마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를 보면서 조마조마했을지 모르겠다. “이러다 우리 오빠들 흑역사까지 들추는 거 아니야?”하고. 죄송하지만 좀 들춰야겠다. 대한민국 1세대 아이돌, 아이돌 그룹의 조상님 H.O.T의 흑역사를!

90년대 중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H.O.T를 앞세운 영화가 2000년, 세기말 분위기도 한층 잠잠해진 시기에 야심차게 개봉됐다. 무려 ‘입체다!!’

에쵸티! 강타! 입체다! [평화의 시대 스틸 이미지 / 네이버 영화]

디지털 3D, 에쵸티, 강타, 입체를 내세운 영화 ‘평화의 시대’ 줄거리는 이렇다. 서기 2200년 은하 백년 전쟁 뒤 평화의 시대, 지구 대표 축구팀으로 뽑힌 ‘에쵸티’ 멤버들과 제우스 별 대표 ‘제우스 팀’의 축구 대결다. 그러나 그 와중에 강타의 애인 ‘다나’가 납치됐단 비보가 전해지고 마는데…

영화 자체의 제작비나 흥행성적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그 영화의 파급효과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우선 피해(?) 당사자인 H.O.T 멤버들에게 그 영화는 어마무시한 상처를 남긴 듯 싶다. 당시 멤버들은 영화 촬영을 끝내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거나, “이제 음악에만 전념하겠다”는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피구왕 통키 실사영화 장면]… 뻥이다. [평화의 시대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직접 본 한 팬의 증언에 의하면, 오빠들이 나오는 영화라 일단 보긴 봐야할 것아 객석에는 앉았지만 곧 후회했다고 한다. 그녀는 “솔직히 부끄러웠다”고 덧붙였다. 손과 발을 다리미로 펴고싶었단 후문도 존재한다.

지금은 파일은 물론이고 DVD나 비디오로 출시되지도 않았기에 이 영화를 구할 길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H.O.T가 참여한 OST 앨범 중 OP.T란 곡은 묻히기 너무 아까운 명곡이라 알려져있다.

 

■ 흑역사도 소중한 우리의 추억이다

상단의 소제목을 보고 “누굴 놀리나” 싶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실컷 놀려놓고, 이제 와서 부랴부랴 뒷수습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99년도에 데뷔한 클릭비도 뾰족머리는 피해갈 수 없었다. [클릭비 /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하지만 시간은 부지런히도 흘러간다. 우리가 미래적이라고 여기고, 최첨단이라 여겼던 그때 당시의 문화들 모두 어느덧 촌스럽고, 괜히 부끄러워지는 것 같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세련됐다고 느끼는 것들, 이를테면 최신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이나 라이프 스타일, 스마트폰 등도 한 10년, 20년만 지나면 미래의 우리에게 ‘흑역사’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기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90년대 후반, 대한민국 문화산업계에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모두 소중한 우리의 추억 속 한 페이지라고. 언젠가 ‘세기말 콘셉트’가 다시 유행을 하게 된다면(정말로?) 그때는 이런 흑역사들이 아주 좋은 참고자료가 될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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