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시드니에선 이상하게 꿀꿀했다. 울룰루에서 킹스캐니언에 이르기까지 탁 트인 아웃백에서 다시 대도시로 돌아와서일까. 괜스레 숨이 턱 막혔다. 시드니는 뉴질랜드 가는 길에 잠시 멈춰야 하는 경유지였다.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은 여섯 시간이었고, 나와 S는 따로 시드니를 돌아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혼자서 높다란 빌딩 숲을 정처 없이 걸었다. 자동차들이 빽빽한 도로, 전화기를 붙들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멋들어진 고층 건물들. 며칠간 아웃백에서 보았던 장면들과 극명히 대비되는 이미지들의 나열이었다.

고작 며칠이었지만 나는 아직 아웃백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바삐 흘러가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눈을 어디에 돌려야 할지 몰랐다. 분명 시드니만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보려는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백하건대 나는 시드니에 도착하기 전부터 ‘재미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누군가는 몇 시간 동안의 머무름으로 어떻게 판단할 수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행의 감흥은 여행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나’에게서 나온다. ‘시드니는 ㅇㅇ이다.’라는 문장에서 ㅇㅇ에 무엇을 채울지는 나만이 알 수 있다. 과연 시간의 문제일까?

나는 시드니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던 거다. 이미 도시엔 신물이 난 상태였고, 얼른 뉴질랜드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시드니를 즐길 수 있겠는가.
 
내가 호주의 첫 여행지로 시드니를 선택했다면? 시드니에 보고 싶은 친구가 산다면? 꼭 가보고 싶었던 랜드마크가 있었더라면? 분명 또 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건 여행지의 탓도 아니고 여행자의 탓도 아니다. 그저 엇갈렸을 뿐이다.

하릴없이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중국 음식점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역시나 평범한 볶음밥이었다. 값을 치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딜 갈까, 무얼 할까, 아무것도 하지 말까, 아무 데도 가지도 말까. 걷다 보니 커다란 공원이 나왔는데 잠시 쉴 겸 벤치에 앉았다. 역시나 평범한 공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으려니 어느 순간 ‘지루하다’고 느꼈다. 여행이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서 여유를 만끽하거나 사색하기는 힘들다. 어정쩡한 상태였다.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했지만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갔다. 두 시간쯤 남았을 때, 문득 시드니에 왔으니 오페라 하우스는 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달링 하버를 따라 쭉 걷다 보니 어느새 오페라 하우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난간 너머로 오페라 하우스가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시드니에 오면 꼭 한 번씩 들르는 오페라 하우스. 어렸을 때부터 사진으로 지겹도록 봐오던 오페라 하우스.

아, 저기구나. 이게 내 감상의 전부이다. 왜일까? 어떤 사람들은 오페라 하우스가 그렇게 멋지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할까.

마음이 닫혀있다면 아무것도 담아올 수 없고 덜어낼 수도 없다. 꽉 막힌 채 방황할 수밖에. 지루함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건 내가 보내는 신호이다. 억지로 뭘 느끼려 하지 말라고. 지루하더라도 지루함을 온전히 느껴보라고. 시드니는 앞으로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 몇 년 뒤 다시 찾는다면 다른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땐 마음이 시드니를 향해 열려 있기를,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시드니의 매력을 알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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