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KBS·MBC PD, 국회서 언론장악 피해사례 증언...“국정원 개입 확실해”

18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참석자가 언론 정상화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공감신문] 최근 국정원 문건이 공개됨에 따라, 지난 정부가 국정원을 필두로 주요 언론·방송사를 대상으로 ‘언론장악’을 시도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 정부는 반정부 인사를 블랙리스트로 지정해 방송 출연을 금지하고, 방송사 노동조합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구시대적인 언론탄압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 주최로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가 열렸다. 사진은 간담회 진행 모습이다. 왼쪽부터 민일홍 KBS 라디오 PD,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 임순혜 NCCK 언론위 부위원장

18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 참석한 전현직 KBS·MBC PD들의 증언에 의하면 언론장악의 온상은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이뤄졌다.

민일홍 KBS 라디오 PD는 “2008년 광우병 파동을 겪은 후 언론을 조종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MB정권이 언론을 장악을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민 PD는 “MB정권은 대통령 주례연설을 송출하게 하고, 낙하산 사장을 임명했다”며 “언론을 너무 쉬운 혀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KBS 노동조합원들은 정부의 요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민 PD는 시위에 참석한 이유로 2회 연속 저성과자로 뽑히고,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 있다고 증언했다.

민일홍 KBS 라디오 PD

이어 “정부의 개입은 점점 심해져 ‘블랙리스트 지정’, ‘특정 PD 배제’, ‘시사프로그램 폐지’, ‘정부정책 홍보 강조’ 등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블랙리스트의 경우 진보성향을 가진 이라면 직업과 상관없이 지정해 방송 출연 자체를 거부하게 지시했다. 반대로 친정부 성향 인사들을 빈자리에 앉히려는 시도를 해 ‘화이트리스트’ 존재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KBS 라디오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언론장악으로 인해 사적인 피해를 입었으나, 반대로 정부의 방향에 순응해 고속승진을 이룬 이들도 있다.

민 PD는 “대통령 주례연설에 관여된 일부 인사들은 KBS 역사상 유례없는 승승장구를 이뤄냈다”며 “이들 중 현직 국회의원도 있다”고 말했다.

MBC의 경우도 KBS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는 2009년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를 새롭게 재편한 후 본격적인 언론장악을 시작했다.

이근행 MBC 전 시사교양국 PD는 “방문진 개편 후 정부는 방문진 이사를 이용해 엄기영 MBC 사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며 “주주총회에서 엄기영 사장을 중도경질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밝혔다.

당시 MBC 노동조합 직원들은 정부의 압박에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방문진은 엄기영 사장의 인사권을 박탈하는 등 자진해 사임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친정부적 성향이 강한 김재철이 MBC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근행 전 PD는 “MBC는 낙하산 사장 임명 등 정부의 언론장악에 맞서 2010년 조직 역량의 90% 이상을 동원한 대규모 파업을 벌였지만, 이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2010년 6월 해고당했다”며 “당시 파업에 참가한 노조 간부 3명이 해고당했고 7명이 정직당했다”고 밝혔다.

이후 MBC 노동조합은 언론의 자유를 목표로 2012년 170일에 달하는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고 파업에 가담한 상당수 직원들이 해고당했다. 

이근행 MBC 전 시사교양국 PD

이 PD는 당시 상황에 대해 “통진당을 공격할 때 쓴 프레임을 우리에게 씌어 이용했다”며 “파업으로 대규모 직원을 해고한 건 유례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해고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징계자들은 원상회복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정권의 범죄, 국정원의 범죄의 범죄인 언론장악 범죄를 엄중히 단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MBC 노동조합은 오늘로 45째 언론탄압과 장악의 잔재를 뿌리뽑기 위해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당시 정부의 언론장악은 비단 두 방송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정원 문건이 속속히 드러나면서 빙산의 본체가 드러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공영방송 개혁 이슈를 두고 자유한국당이 정부에 ‘언론장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과거 집권 여당일 당시 일을 고려한다면 이같은 아이러니한 연출은 하루 빨리 그만둬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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