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대로 따라본 적은 없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니까

나의 형편없는 평판은

어딜 가나 들을 수 있지

하지만 주위를 둘러봤는데

나만 이런 게 아니더라

나 같은 애들은 많았어

우리는 젊어

그러니 손을 올려봐

 

[공감신문 교양공감] 몇몇 아재들은 위 문구가 뭔지 금방 알아챌 것이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전 세계에 불어 닥친 헤비메탈 광풍의 선두에 서 있던 밴드, Skid Row의 명곡 ‘Youth Gone Wild’ 가사 일부다. 뒤이어 나오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They Call us Problem Child

(사람들은 우릴 문제아라 부르지)

 

We Spend Our Lives On Trial

(늘 시련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We Walk an Endless Mile

(끝이 없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We are The Youth Gone Wild

(우리는 길들지 않는 젊음이야)

 

젊음은 뜨겁다. 거칠고, 생동감이 넘쳐난다. 세상은 그들을 시험하려 들며, 그리고 그들은 결코 길들지 않는다. 세바스찬 바흐가 포효했던 그 가사 내용 그대로.

어느 세대건 세상은 기성세대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들에 의해 움직인다.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세상은 ‘이미 이루어놓은 세대’라는 한자 직역대로인 ‘기성세대(旣成世代)’에 의해 움직인다. 그들은 지위, 가정 등 이미 이뤄놓은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세상이란 전쟁터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살아오면서 온갖 일들 목도하고난 뒤 그 끔찍함에 몸서리쳐본 적도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곤 한다. 지켜야할 것이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힘과 생동감, 저항정신이 넘친다. [Photo by Daria Tumanova on Unsplash]

반면에 아직 기성세대가 되지 않은, 때 묻지 않고 혈기가 들끓는 젊은이들이 있다. 새로운 세대, 신세대다. 신세대는 기성세대가 안정을 추구하고 지키려는 것에 대해 ‘몸 사린다’고 치부하곤 한다. 그들은 젊고 힘이 넘치니까, 그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들은 때려 부수거나, 뒤집어 엎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힘이 있는 경우도 많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세대인지는 중요치 않다. 한땐 우리 모두 젊고 새로웠으니까. 그리고 그 젊고 새로웠던 때의 여러분은 저항했다. 부조리에, 부당함에, 여러분을 위태롭게 하고 위협하는 모든 것들에 저항하고 분노했었다.

반항심 넘치던 젊은 날, 여러분의 롤모델은 누구였는가? [Photo by Andy Omvik on Unsplash]

젊은 저항가들에게는 그들을 상징하는 아이콘, 그들이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었다(아니, 지금도 있긴 있다.). 저항의 행렬에는 선두가 있는 법이니까.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는 현 세대 젊은이들이 우상시하는 반항아들이 아닌, 기성세대들의 피가 지금보다 조금 더 뜨거웠던 과거에 동경했을 ‘저항의 아이콘들’에 대해 알아보겠다.

 

■ 이름 자체가 곧 상징, 제임스 딘

대표적인 반항의 아이콘 중 하나, 배우 제임스 딘의 모습.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여러분은 ‘1950년대 헐리우드’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부분이 떠올릴 흑백영화 속 이미지는 품 넓은 정장에 중절모, 귀부인, 느끼해 보이는 콧수염 정도일 것이다. 물론 명불허전이라고, 당시의 슈퍼스타들도 모두 아름답고 멋졌지만 스타덤에 올라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중 반항의 아이콘으로는 단연 제임스 딘을 꼽을 수 있겠다.

그는 1955년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차남 ‘칼 트래스크’ 역, 같은 해 ‘이유 없는 반항’에서 당시 청소년들의 심리를 반영한 인물 ‘짐’ 역을 각각 맡으며 영화계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안정적인 연기력은 물론이고 여심과 남심까지 한 번에 사로잡는 마스크로 단숨에 스타의 반열에 등극했다.

그가 주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포스터. [Wikimedia 캡쳐]

또한 제임스 딘은 1950년대 당시 하층민을 상징하던 ‘청바지’를 입고 영화에 등장해 뭇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의 눈에도 시각적 충격을 전했었다. 현재 지위고하가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즐겨 입는 청바지를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제임스 딘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1954년 찍혔다는 문구만 아니었다면 시대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세련돼 보인다. [인스티즈 캡쳐]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타계한 이후 어느덧 반세기나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그리고 그를 모를 법한 젊은 세대들조차 ‘반항아’의 이미지를 떠올릴 땐 제임스 딘을 가장 먼저 꼽는다.(그에 앞선 반항아, 말론 브란도는 이제 ‘대부’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 까닭은, 일단 작중에 묘사된 캐릭터의 모습은 둘째 치더라도 당시 기준으로나 지금 기준으로나 잘생긴 외모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젊은이들의 패션 스타일을 앞서서 선보인데다 ‘카레이서’로 활약했었단 점 때문일 수 있겠다. 또한 고뇌에 차 보이는 눈빛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로부터 회자되고 있다.

 

■ 민(비트/정우성)

97년도 정우성의 모습. 지금과 별 차이는 없어보인다. [비트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흔히 ‘우수에 찬 반항아’라는 제임스 딘이 구축한 캐릭터를 언급할 때 그에 비견되는 인물로 거론되는 건 1997년 영화 ‘비트’의 ‘민’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이다. 실제로 당시 정우성을 ‘한국의 제임스 딘’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도 왕왕 들려오고 있다.

비트는 불량끼 넘치는 고등학생 민, 태수(유오성), 환규(임창정)의 위태로운 젊은 날을 그리고 있다. 사실 지금이야 막 나가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여러 영화로 등장하고 있지만, 당시 이 영화는 우울했던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일탈 욕구를 충족시켜줬었다.

위태롭고 불안한 청춘의 자화상…이라기엔 너무 잘생겼다. [비트 영화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또한 97년 당시의 불량스러운 학생들에게는 말보로 레드 담배와 지포라이터의 ‘폼’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이밖에 주먹의 ‘그립력’을 위해 라이터를 잡고 싸운다는 설정도 한동안 많은 이들에게 ‘싸움의 기술’ 쯤으로 통했다. 이렇듯 영화 ‘비트’와 주인공 ‘민’은 반항심 가득한 젊은 청춘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었다.

여전히 회자되는 명장면. 따라하진 말자. 위험하다. [비트 영화 장면 / 왓챠]

작중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은 민(정우성)이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는 장면인데, 20년이 지난 요즘도 종종 그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연출, 또는 패러디 등이 나온다. 이밖에 “나에겐 꿈이 없었어”, “17대 1”등 명대사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 체 게바라

이상주의자로 살다간 혁명가, 체 게바라. [Wikimedia 캡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꿈(이상)보다는 현실을 따르고 순응하게 마련이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많을 경우 그것에 감사하면 감사했지, 그걸 걷어차고 이상을 쫓는 사례는 드물다. 만약 여러분이 금수저로 태어났다면, 자신의 이상과 다르다며 그걸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가능은 하겠지만 솔직히 쉽진 않을 거다.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훗날 ‘체 게바라’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청년은 아버지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의 의사가 되길 거부하고 친구와 함께 낡은 오토바이에 몸을 싣는다. 전 남미대륙을 횡단하겠다면서. 이 과정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그려진다. 이후 그는 남미 빈민층의 참혹함을 목격한 계기로 모두를 위한 세상, 이상향을 찾아 혁명의 행렬에 합류한다.

이념을 떠나 인품은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있어 많은 이들이 그를 동경하고 존경한다.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혹자는 그가 공산주의자인데다, 실제보다 과도하게 우상화된 인물이라 냉소할지 모른다. 그것도 틀린 말이라 부정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지나친 이상론자’라는 꼬리표는 어쩌면, 결코 이길 리가 없음에도 온 몸으로 부딪혀 터지고, 깨지길 갈망하는 젊은 반항아들에게 달려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싶다.

결론만 두고 보면, 그는 실패한 혁명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에게 주어질 안정적인 생활(의사)도, 쿠바 혁명의 성공 이후 얻을 수 있는 지위와 영광도 거부하고 오지로 향해 민족해방 투쟁을 벌이다 사살당했다는 그의 일대기는 이념이나 그 무언가를 떠나 감탄과 존중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또, 그런 면모들은 젊은 저항가들에게 불멸의 아이콘이 되기에 모자람 없어 보인다.

 

■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1주년 모습. 참 앳된 세 명. [서태지 아카이브 캡쳐]

한국 최초의 랩 음악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진담이건 농담이건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 시대에 그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가수가 국내에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들 “아니”라고 답할 것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0년대 초반, 센세이셔널하게 데뷔했다. 당시 가요계는 발라드 음악이 지배적이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이후 댄스와 랩 음악이 종전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주목을 받게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워낙 유명하니,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는 그들을 어째서 저항의 아이콘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그들, 특히 중심에 있었던 인물 서태지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tvN 명단공개 2015 방송 장면]

일단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성세대가 주 소비층이던 대중음악계를 10대 소비자들에게 빼앗아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흔히 H.O.T나 젝스키스 등을 아이돌 그룹의 원류라 일컫는데, 실은 서태지와 아이들도 아이돌 그룹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니 그 효시라고 볼 수도 있겠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랑과 이별,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내용 일색이던 대중음악계에 ‘교육제도 비판’, ‘가출’ 등의 사회문제를 끌어오면서 다양성을 더했다. 이밖에도 지속적으로 변화를 모색하던 그들의 음악성 등,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을 면면히 살펴보면 볼수록 기존 체제를 깨부수는 저항과 혁신 일색이다.

 

■ 끊임없이 저항하고 온 몸으로 부딪혀라

세상은 그야말로 약육강식 자연의 잔혹한 모습을 닮아있다.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세상에 부당하고 부조리한 일들은 넘쳐난다. 기성세대는 경험에 의해 그걸 알고 있다. 그런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뜯어고칠 수 없다는 것을. 무서울 정도로 세상에 깔린 부조리들을 마주하고 나면 갈아엎을 엄두는커녕, 어느 순간 겁을 먹게 된다.

반면에 신세대들은 그들이 동의하건, 동의하지 못하건 기성세대에 비해 경험이 적은 편이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겁먹고 뒷걸음질 치는 것을 꺼리고, 그것을 ‘비겁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소소한 부조리함에서부터 체제까지 뒤엎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까지 저항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다.

물론 마음에 안 든다고 뭐든 다 때려부수는 건 반사회적 행동임을 모를 이는 없겠다.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젊으면 무조건 다 저항해야 하나?”라 생각하실 수도 있다. 맞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여기서(혹은 이거에) 저항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염두하는 편이라면, 젊은이들은 그런 걸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저항정신, 반항심 등의 단어는 기성세대보다는 신세대에게 어울린다.

신세대, 기성세대 중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순 없다. 때로는 무작정 반기를 들기 보단 현실을 직시하고 노련하게 대처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참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도 일어서야 하는 때가 있다. [Mashable 캡쳐]

하지만 반대로, 우릴 가둬두고 핍박하려는 체제를 무너뜨려야만 할 필요도 있다. 또한 지켜보고만 있어선 안 되는 부당함에는 온 몸으로 부딪혀 맞서야할 때도 있다. 젊은이들 뿐 아니라, 기성세대든 누구든 간에 말이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