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네가 먹는 걸 가지고 너를 판단하면 네 기분은 어떨 것 같아?” /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게 어떤 사람을 아는 좋은 방법일 수 있으니까.” (<우리가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알랭드보통 著) 중에서)

[공감신문] 평소 건강관리에 관심이 큰 편은 아니다. 난 아직 젊은데 뭐?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지. 다만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게 아마 제일 좋을 거라는, 내 딴에는 가장 쉬운 방법을 고수하려고 노력 중(?)이다. 맞다, 결국 지 멋대로 살려고 한다는 얘기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건강에 대한 정보가 너무도 많지 않나. 언제는 구석기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인간 신체 본연의 시스템이라며 간헐적으로 고기를 많이 먹으랬다가, 또 사실 현대인들은 이미 다른 식품에서 충분한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다며 채식을 하랬다가, 또 무슨 탄수화물이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며 정제 식품을 끊으랬다가... 어휴! 시대, 아니 1년을 주기로 유행하는 식습관이 다르다.

사진=Pixabay

그래서 이런 말 저런 말 듣지 않고 내가 편한 방식을 고수하려던 중이었다. 단지 반도의 흔한 20대 처자들 중 한명이므로 당연히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정말 살빼기가 힘들다는 것, 무지 공감한다. 내가 택한 방식은... 아, 여기에 ‘규칙적 운동’이라고 쓰려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쓰지 못하겠다. 요즘은 없는 것 같다, 맙소사!

그러던 중 얼마 전 우연히 어느 식품 관련 다큐 영화를 보게 된 거다. 평소 위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나였으므로, ‘또 무슨 주장을 해서 뭘 못 먹게 하려고?’하며 재미 삼아 틀었다. 그나마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 2017)이라는 제목 속 ‘자본’이란 단어 때문에 뭔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음모론 같은 걸 얘기해줄 것만 같아서! 와, 근데 이건... 정말 음로론보다 더욱 무섭고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바로 육식, 그것도 가공육에 관한 것이었다. 소시지나 햄 같은 가공육이 몸에 그다지 이롭지 않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알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따르면 미 보건국은 이것을 담배와 같은 제 1의 발암물질로 분류했다는 거다! 아이들 급식에 소시지나 햄을 주는 게, 어쩌면 담배를 주는 것과 똑같다고 비유했다. 

나는 왜 저렇게까지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건지,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어떻게 우리 밥상까지 오게 되는 지 과정을 보았을 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모든 가공육이 다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할 순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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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영화에선 가공육뿐만 아니라 달걀도 먹지 말라고 한다. 그 뿐인가? 내가 가장 슬펐던 부분은 바로 생선에 관한 거였다. 나는 소고기, 돼지고기, 그 어떤 대지 위의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한다. 해산물로 된 음식은 다 좋아한다. 근데 여기선 그것도 먹지 말란다. 도대체 뭘 먹으라는 것인가. 이쯤 되면 이 영화는 겨우 체중 감량 이야길 하는 게 아닌 걸 아시겠지? 훨씬 무서운 인간의 모든 질병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 영화 전체를 보고난 후, 난 마음먹었었다. 모든 걸 포기할 순 없다. 그러나 내가 평소에 그다지 즐기지 않는 소고기나 가공육은 끊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내 몸에 매일 독을 줄 순 없잖아.

그렇게 마음도 먹고, 건강한 음식도 먹고 얼마 뒤! 난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세상 긍정적이고 스트레스 없이 살던 나였는데,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가도 나만 먹을 게 없었다. 특히나 한국인의 흔한 밥상에서 고기는 뺄 래야 뺄 수 없는 거였다. 채식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거다! 

친구들은 나에게 ‘유난을 떤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도 이런 것쯤은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올해 초에 저염식을 했었을 때도 나중엔 이해해 주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그들이 아닌 나였다. 왜? 나도 저게 먹고 싶었다, 나도 같이 즐기고 싶었다, 결정적으로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사주겠다는 친절하고 잘생긴 오빠에게 ‘아 저 그거 못 먹는데’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음식은 삶의 대단한 부분을 담당한다.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말을 종종 내뱉는다. 삶에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그 중 삶을 영위하는 가장 대표적 행위가 바로 ‘먹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키운다고 말할 때도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라고 한다. 먹는 것이 단연 먼저 나온다.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에도 물론 맛있는 식사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쉽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방법이 바로 먹을 거다. 남녀는 서로 행복하거나 자극적인 경험을 함께 공유하며 빠르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친밀해진다. 여기에 가장 쉬운 게 바로 맛있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미각은 물론이요, 시각, 후각, 때로는 촉각과 청각까지 기분 좋게 자극시킨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음식 자체가 아닌, 식사라는 행위가 그러하다.

이렇듯 삶의 전반을 지배 아닌 지배하는 음식은, 당연히 문화권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 예전에 잠시 모로코 출신 유학생 친구와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돼지고기를 요리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조리 도구를 따로 사용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었다.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안 먹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디테일하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난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긴, 하물며 한국에서도 순대를 찍어먹는 소스가 동네마다 다른데 다른 나라의 식문화는 또 얼마나 다양하겠나!

그 나라의 음식 문화를 접하는 것은 그 나라를 알아가는 첫 번째 시도다. 외식 문화가 발달한 나라들, 이를 테면 아침부터 길거리에서 국수나 볶음밥 같은 것들을 파는 태국 같은 나라들은 다 그렇게 굳어진 배경이 있는 것이다. 나라뿐만이 아니다.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은 그 사람의 취향을 알아가고자 하는 시도다. 좋아하는 음식만 알더라도 어느 정도 성향을 파악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누릴 기회를 가진다면 더욱 행복해지겠지!

“누가 네가 먹는 걸 가지고 너를 판단하면 네 기분은 어떨 것 같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게 어떤 사람을 아는 좋은 방법일 수 있으니까.”
(<우리가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알랭드보통 著) 중에서)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고 히포크라테스는 말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좋은 식사는 많은 교감을 불러일으키고 안정감은 물론, 넘치는 행복감을 줄 것이다. 입 안에 퍼지는 풍부한 맛과 향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거다. 촉촉하게 음식에 베인 소스 처럼 더나할 위없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것이다.

다만 현대인들의 식습관은 단지 이렇듯 여러 가지 식재료를 가진다는 특징만 있는 게 아니다. 스트레스도 있다! 현대인 삶의 ‘특징’도 아닌, 왜 ‘식습관’의 특징이냐고?

우리가 먹는 육류들은 생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가축일 확률이 크다. 스트레스가 큰 인간이, 스트레스를 풀려고, 스트레스가 잔재하는 육류를 먹는 스트레스 쓰리 콤보 탑 쌓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 쓸수록 스트레스 받는다! 어쨌든 그렇다고 안 먹을 게 아니라면 좋은 사람과 먹어야 한다는 거다. 즉, 좋은 식사를 하자구.

현대인들은 함께 밥 먹기 싫은 사람과 식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밥을 먹어야할 때도 생긴다. 혹은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일부로 혼밥을 하기도 한다. 미국의 배우 조프리네이어는 ‘좋은 식사는 좋은 대화로 끝난다’고 말했다. 그렇다, 좋은 것을 먹는 다는 것은 그 안에 행복감이 있어야 한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이걸 조금 더 현대적으로 바꿔보겠다. ‘좋은 식사로 안 풀리는 스트레스는 뭘 해도 못 안 풀린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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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식사를 즐기기 위하여 우린 평소에 음식의 본질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식재료들이 어떻게 왔는지, 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잔인한 배경을 살피라는 게 아니다. 이것을 재배하고 수확하기 위하여 어떤 노동이 있었는 지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면 귀하지 않은 음식이 없더라. 게다가 대부분의 우리 밥상은 ‘세계적’이다. 

고등어는 노르웨이 산, 주스 과즙은 이란 산, 옥수수는 미국 산, 코코넛 오일은 필리핀 산... 여기저기에서 흘린 그들의 땀과 자연의 기적이 매일 일어나고 있었다. 그럼 우린 너무 많은 것을 밥상 위에 올리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조금 덜 먹되, 좋은 식사를 할 예정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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