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길 따라, 포항에서 양양까지

 

“아~ 이 기분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하지?”

“은빛물결과 파도소리와 바닷바람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가을 하늘빛이 곱다. 가을바람이 볼을 스칠 때면 뭔지도 모르게 설렌다. 떠나고 싶다.

 

[공감신문] 지난 10월 13일 금요일 유난히도 하늘이 높고 맑다. 어디든지 떠나고 싶다. 산도 좋고 바다도 좋다. “우리 떠날까?” “어디?” “그냥 자동차가 굴러 가는 데로...” “그래! 좋아... 근데 언제?” “낼 새벽...” “당장? 계획도 없이?” “그냥 가는 거야, 자동차 기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이렇게 우리는 다음날인 토요일 새벽 5시에 길을 나섰다.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고속도로는 맑은 하늘과 더불어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고속도로에서 맞이하는 아침 햇살은 눈부셨다. 은빛 햇살이 갈 길을 재촉한다. 경북 성주에는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다. 잠시 들려 우리는 인사를 올리고 포항으로 달렸다. 거기서부터 강원도 북단 양양까지 해안도로를 달릴 참이다.

우리의 여행코스는 포항에서 동해바다를 끼고 해안도로 달리는 것이다. 경북 영덕을 지나 강원도 양양까지 가슴 벅찬 바다를 보며 쉬고 먹고 보고 또 눈에도 담고 그리고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밀려오는 파도에 어린아이처럼 뛰기도 했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머리는 엉클어져도 마냥 신이 났다. 7번 국도와 20번 해안도로를 운전을 해 보면 기분은 어떤 것으로도 형용 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 마음은 그랬다.

우리가 바라보는 저쪽 동해 바다의 끝자락에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과 고요한 바다와 맞닿아 있다. 그곳에는 배 한척이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수평선 넘어 넘실대는 파도에 아마 그런 성 싶다. 가슴이 탁 트인다. 시럼이 날아간다. 번뇌가 사라진다. 모든 잡념들이 쓸려가는 파도를 타고 멀리 멀리 가는 성싶다.

글쓴이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했다. 산은 말없이 고요하고 인자하다고 말한다. 글쓴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인자한 사람은 거친 바다보다는 산을 찾는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바다보다는 산을 찾은 것 같다. 하지만 마음속에 거칠고 무섭다고 느낀 바다가 이렇게 웅장하고 포근하고 마음의 안식이 될 줄은 몰랐다. 깊고 푸른 바다에서 가을햇빛을 받은 은빛 파도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은빛물결과 파도소리와 바닷바람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듣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정신 줄을 챙기고 다시 해안도로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저 멀리 바람을 타고 온 바다냄새는 가슴속 구석구석 박히고 또 박히는 기분이다. 특히나 맑은 가을 바다의 비경은 날씨와 기후와 사람이 어우러져 더욱 빛나는 느낌이다. “아~ 이 기분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하지?”

이날따라 가을바다를 구경나온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들었어도, 젊었어도 여행지의 바다 앞에는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밝았다. 이마의 주름살을 잊은 지는 오래다. 음료수 한 캔을 들고 자갈밭에 앉아 시름하든 차에 누가 옆에서 말을 건다. 글쓴이 보다 연배가 높은 어르신 부부가가 가을 여행을 왔단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인자해 보였다.

“이보시게! 사진한번 찍어 주시겠소? (미안은 듯 미소를 지으며 바닷바람에 머리가 엉클어진 채 다가온다.)”

사진을 찍어주니 고맙다고 하면서 가져온 맛나 는 음식을 같이 먹자고 권한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기 바빠 여태껏 바다구경 한번 못시켜준 아내가 미안해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말없이 미소만 짓는 부인의 얼굴에는 그늘이 보였다.

“(근심어린 마음으로..) 어디 불편하세요?” 여전히 말이 없이 미소만 머금는다.

“(보다 못한 어르신이 입을 연다.) 좀 아프다오. 아직 더 살아야 하는데 먼저 가야 한다는구먼... 그렇게 바다구경 하고 싶다고 해도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못 왔거든, 지금은 가슴을 치고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어.(눈물이 보인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같은 자리에 있든 사람들 모두 부인의 손을 잡고 위로 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 나니?”라는 노래가 있나보다. 참! 우리 조상님들의 그른 가르침은 하나도 없는 성싶다.

사정이 참 안됐기는 하지만 우리는 헤어져야 만 했다. 그 노부부의 건강과 부인의 병이 바다파도에 쓸러 가기만을 기도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미 햇살은 기운을 잃고 그 자리는 어둠에게 물러 줄 기세다. 서둘러 숙소가 있는 양양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검은색 바다에 파도소리만 들리는 바닷가는 썰렁하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단지 바다 저쪽에서 배한척이 불을 밝힌 채 반짝이는 것 외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파도소리 뿐이다.

양양의 바닷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른 새벽에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며 해변을 걸었다. 지나온 이야기를 하면서 같은 방향을 보며 걷는 것 또한 너무 오랜만이다.

우리는 다시 미시령을 넘어 백담사로 향했다. 이제 산이다. 백담사의 가을은 아직 이다. 단풍은 아직 이곳까지 오지 않았다. 백담사 계곡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취해서 잠시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바윗돌을 베개 삼아 잠시 눈을 부친다. 마음이 평온하다. 피부에 닿는 모든 것들이 감미롭다. 주위는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해도 머리에 쌓인 잡념을 날려 보내는 데는 충분하다.

산은 산이다. 역시 산은 말없이 인자하다. 골짜기를 타고 나무사이를 거치면서 다가온 바람은 소리가 없다. 그냥 부드럽고 감미롭게 스쳐간다. 바닷바람과 산바람은 다르다. 그들만이 가진 성격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들의 가을여행은 끝났다. 우리의 이번 가을여행길은 참 운이 좋았다.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광고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것이 있듯이 가끔은 떠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는 것” 과 “필요한 것”은 분명히 구분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원하는 것보다 필요한 것은 반드시 하면서 살아가야 할 성 싶다.

물론 골프도 좋고 해외여행도 좋다. 같은 방향을 보고 인생길을 가(동반자)는 사람이 꼭 필요 한 것이 무엇인지를 서로 생각 하면서 살아가자는 이야기다. 둘이 같이 할 수 있는 것 말이다. 글쓴이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더불어 만약 누군가와 동해바다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다면 북에서 남으로 보다 남에서 북으로가 더 좋다고 권하고 싶다. 그것은 동승자를 위한 배려와 예의다. 왜냐고 묻지 말고 한번 가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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