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지난 겨울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줬던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이하 도깨비)’는 다시 계절이 돌아오고 있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 깊이 여운을 남기고 떠났다.

지난 겨울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해줬던 드라마, 도깨비에는 몇 편의 시가 등장했었다. [tvN 도깨비 드라마 장면]

작품은 흐릿한 겨울 해가 눈부시게 내려앉은 풍경, 그리고 서글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려하게 그려냈는데, 드라마를 본 이들 중에는 한 편의 시, 소설을 읽은 것 같았다는 감상을 남기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더라.

이 드라마를 한 권의 문학작품 읽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건 많은 요소들이 있겠다만, 그 중에서 군데군데, 적재적소에 인용된 책의 구절들도 분명 한몫 했을 것이다.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이 드라마에 등장하자 여러 시청자들에게 회자됐다. [tvN 도깨비 드라마 장면]

위에 소개한 설레고 가슴 아릿한 시, ‘사랑의 물리학’은 도깨비에서 인용되면서 재조명돼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 덕일까, 이 시가 수록됐으며 드라마에서도 소개된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는 몇 주간 연속으로 베스트셀러가 됐었단다.

TV 프로그램, 드라마에서 인용돼 재조명받는 책 속의 문구들을 읽어보는 시간이다.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는, 상기한 도깨비의 사례처럼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에서 인용돼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은 시(詩들)을 읽어보는 시간이다. 깊어가는 가을, 어쩌면 이 시들이 여러분의 메마른 감수성을 촉촉이 적셔줄지 모른다.

 

■ KBS2 학교2013

여러분이 가장 최근에 ‘시’를 낱낱이 살펴본 적이 언제인가? 특별히 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아니라면, 학창시절 문학(혹은 국어)시간이 가장 최근이겠다. 사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시를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시어를 입 안에 넣고 꼭꼭 씹어 음미하기엔 세상이 워낙 바쁘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시'라는 녀석을 찬찬히 살펴본 가장 최근의 기억은 언제였나? [Max Pixel 이미지 / CC0 Public Domain]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마 지금의 나이보다는 ‘조금’ 덜 바빴을, 조금 덜 삭막했을 학창시절 우리는, 국어(혹은 문학) 수업시간에 시를 배웠다. 사실 그 나이 때는 시가 좋은지, 어떤지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교과서에 실린 몇 줄 글자보다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다른 관심사들도 넘쳐났으니까. 진로, 성적, 아니면 이성친구나 동성친구 등 말이다.

떠들썩한 교실 분위기. 이제 아마 다시는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KBS2 학교2013 드라마 장면]

KBS2 ‘학교 2013’은, 말 그대로 2013년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오랜 기간 이어져온 시리즈(물론 이야기는 저마다 다르지만)인 만큼 달라진 학교의 풍경들에 대해 잘 묘사해낸 웰메이드 청춘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아무래도 배경이 고등학교인 만큼, 일반적인 어른들의 이야기보다는 시의 등장 빈도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 고등학교에는 시를 배우는 수업시간이 있으니까.

작품에서 등장한 시 중 우리에게 유명한 것으로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그 중 우선은 고남순(이종석 분)이 교실 벽을 보고 나직이 읊조린 시, ‘풀꽃’을 들려드릴까 한다.

남순이 암기한 이 시, 풀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한 친구, 학습장애가 있는 한영우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문제를 일으킬 경우 전학을 가기로 각서를 썼는데, 영우가 남순을 돕기 위해 사고를 치고 결국은 그것이 빌미가 돼 전학을 가야하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물론 학부모가 전학 권고를 거절하면 되는 일이었으나, 기간제 교사였던 정인재(장나라 분)가 나서서 그것을 종용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학습장애가 있는 한영우(왼쪽)는 고남순(오른쪽)을 도우려다 강제전학 위기에 처하게 된다. [KBS2 학교2013 드라마 장면]

그러나 인재는 자신의 제자가 읊조린 시를 듣고 용기를 내 학교 권력에 정면으로 맞부딪힌다. 영우의 어머니에게, 영우를 전학보내기 싫으면 권고를 거절하면 된다고 알린 것이다. 친구를 아끼는 어리고 예쁜 마음 씀씀이에 의해, 영우는 결국 학교에 남을 수 있었다. 짤막한 시로 인재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시가 인용되면서 감동을 자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 최근 화제가 된 예시로는 JTBC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중 한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98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학교엘 가게 된 배우 홍은희씨.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장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는 연예인들이 한 학교의 학생이 되고, 그들 틈에 스며 그리운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내용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6편부터 시작된 경기도 하남시 신장고등학교 에피소드에는 배우 홍은희가 출연하는데, 수업 시간에 어느 시를 읽다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를 울린 시는 다름 아닌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다.

그녀가 운 까닭은 아마 그녀가 어머니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시가 재미있게 들릴지 모르지만, 꽃게가 한때의 어스름을 천천히 받아들이면서 뱃속의 알들에게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 말하는 장면을 자신에 빗대어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 어머니의 사랑. [Photo by Jenna Norman on Unsplash]

시는 온갖 것들을 노래한다. 그 중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노래하는 것들이 많다. 모성애는 흔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시는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아직 어렸던 학창시절에는 아마 이 시가 그리 와 닿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가 되면, 또는 어머니의 사랑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나이가 찾아오면 아마 많은 이들이 그녀처럼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이렇듯 시는 시간에 따라 또다른 감동을 전해주기도 한다.

 

■ SBS 시크릿 가든

지난 2010년 방영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은 그야말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죽했으면 어느 전직 대통령도 열광했었다고 할 만큼 말이다.

괜히 입술에 거품 묻혀본 사람도 분명 많았을 거다. 키스해줄 사람이 있건 없건 간에. [SBS 시크릿 가든 드라마 장면]

드라마는 일련의 사건으로 몸이 뒤바뀐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둘의 몸이(혼이) 바뀌게 된 원인은 바로 여자 주인공의 돌아가신 아버지(정인기 분)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방관으로, 13년 전 어느 날 임무 중 한 남자를 구하다 순직한다.

흔히들, 소방관을 요즘 유행하는 ‘슈퍼 히어로’에 빗대곤 한다. 위험에 처한 이들을 위해 화마(火魔) 속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가는 그들의 영웅적인 면모 때문이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그들은 두려울 게 없는 슈퍼 히어로처럼 보인다. 그들이라고 해서 두렵고, 무섭지 않은 건 절대 아닐텐데 말이다.

돌아가신 길라임(하지원)의 아빠, 소방관 길익선을 연기한 배우는 정인기 씨다. [SBS 시크릿 가든 장면]

작중 소방관, 그러니까 여자 주인공 ‘길라임’의 아버지 ‘길익선’이 남자 주인공 ‘김주원’을 구하는 장면에서 이 시는 담담한, 그러나 결연한 목소리의 나래이션으로 흘러나온다. 길익선은 김주원을 구하다 힘이 다해버리고 만다.

이 시는 그간 ‘작자 미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몇 해 전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한 소방관이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A. W. Linn이라는 소방관(작가)은 한 화재 현장에서 어린이를 구출하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이 시를 썼다고 알려졌다.

흔히 위험천만한 일을 ‘불구덩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고, 즉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표현한다. 우리 주변의 소방관들은 항상 우리를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목숨을 걸고 말이다. 그런 그들의 희생정신을 ‘영웅적’이라 하지 않으면, 세상 무엇을 영웅적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시에는 그들의 결연한 각오와 죽음에 직면하는 초연한 자세가 담겨 많은 이들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 시와 함께 하는 촉촉한 일상

학창시절 우리가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온갖 시들을 읽고,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암기했던 경험들이 하등 쓸모없는 일들이었다고 느끼실지 모르겠다. 학교란 원래 사회에 나가기 전 사회인으로서 알아둬야 할 지식과 교양을 익히기 위한 공간인데, 정작 학교에서 배운 시의 의미, 해석 등은 사회에서 쓰임새가 없으니까.

학창시절 느꼈던 여러 감각 대부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 [Wikimedia 캡쳐]

그건 어느 정도는 맞는 생각이기도, 또 어느 면에서는 영 틀린 생각이기도 하다. 우리가 학창시절 시를 ‘배웠던’ 방식은 잘못됐을지 모르나, 시를 알아가던 그 과정들만큼은 우리 삶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는 삭막하고 퍽퍽하다 못해 모랫가루가 날리는 우리 삶을 보다 촉촉하게 적셔주고, 때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도 만들어주니까.

처음부터 시를 쓰기 부담된다면, 필사를 해보는 건 어떨까? 분명 즐거운 경험일거다. [Photo by Florian Klauer on Unsplash]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대중문화 속에서 시가 등장하고, 소비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앞선 사례들 외에도 각종 드라마 등에는 시의 한 구절, 또는 전체를 인용해 문학적 감수성을 덧입히는 시도가 종종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시도는 성공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먹혀 들어간다.

괜스레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계절, 가을이다. 이 계절에 연필을 들고, 연습장에 사각사각 시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왜 그런 민망한 짓을 해야 하느냐고? 일단 한번 들어보시길.

시는 딱딱해진 우리 가슴을 말랑하고 유연해지게끔 풀어준다. 제아무리 단단하게 굳은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도, 적재적소에 들려오는 시 한 줄만으로 눈물 흘릴 수 있다. 사람을 웃고 울리게 만드는 힘, 시를 써서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몇 줄 쓴 것이 그만큼 강력함을 지닐 수 있다니, 놀라운 일 아닐까?

그러니 한 번, 정성들여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 보자. 시를 쓰는 데에는 대단히 특별한 자격도, 어떤 천재적인 발상도 필요치 않다. 앞서도 설명했듯, 여러분에게는 그저 손에 잘 맞는 연필과 아무 종이 한 장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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