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모든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진왕소똥구리의 관찰에서 시작하는 《파브르 곤충기》는 장 앙리 파브르(Jean-Henri Fabre, 1823~1915)가 56세가 되었을 때 1권이 나와 그 후 30년에 걸쳐 10권이 완성된 곤충학의 위대한 고전이자 불멸의 자연사기록이다. 곤충 뿐 아니라 새 등 자연에서 만나는 살아있는 많은 생물들에 대한 현장관찰이자 탁월한 학술 르뽀(Reportage)이기도 하다.

서로 많은 편지들을 통해 학문적인 자주 견해를 교환한 진화론자 찰스 다윈(1809~1882)으로부터 ‘위대한 관찰자’라는 찬사를 받은 파브르는 곤충을 중심으로 한 자연에 대한 세밀한 현장관찰과 뛰어난 연구를 바탕으로 과학저술의 선구자적인 모델(model)을 창조했다.

곤충학자 파브르/ 사진=교육부

‘곤충학의 성경’, ‘곤충학의 시인’이라는 찬사처럼 파브르는 우리를 둘러싼 들과 숲, 산에서 사는 작은 곤충의 신비로운 세계와 자연의 질서를 깊이 연결시키면서, 서로가 대화하고 이용하고 투쟁하는 가운데 조화를 이루는 자연에 대한 우리 지각의 새로운 확장을 계속 이끌어낸다.

곤충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서 백과사전적으로 곤충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 진화의 문제, 인간과 동물의 차이, 학문하는 자세, 당시의 프랑스 사회상, 종교, 신학, 철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용광로처럼 용해시키고 있다. 따라서 책은 곤충학과 함께 인간학을 논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과 통섭을 이끄는 역작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 ‘파브르는 과학자이지만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예술가처럼 관찰하고, 시인처럼 느끼고 표현한다.’는 찬사가 오히려 부족할 정도다.

곤충도 작고, 인간도 결국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모든 생명체는 동일하게 중요하며, 우리가 작은 벌레를 존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할 수가 있다는 것을 파브르는 특별히 강조한다. 《파브르 곤충기》는 지구상의 생물 종 반 이상을 차지하는 곤충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단순한 벌레이야기를 넘어서서 우리 인간의 내면을 조명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다. 

파브르 곤충기/ 사진=현암사

오늘날 동물행동학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고 있는 파브르는 책에서 자신의 모든 과학지식과 함께 인생의 현실, 희망을 솔직히 토로하며 보다 나은 앞으로의 세상과 자연에 대한 소중한 꿈들을 함께 그리고 있다. 파브르는 책에서 ‘인간은 깎아 내리고 동물은 추켜올려 비슷한 접촉점을 설정해놓고, 양쪽을 동일 수준에서 보려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유행하는 고차원의 학설이다’(1권 162페이지)라는 의미 깊은 통찰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곤충학이나 자연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분량이 많아 완독하기에는 다소 부담을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생물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빛나는 감수성과 생명외경의 철학을 책 곳곳에서 볼 수 있으므로 한 편의 위대한 인생론, 자서전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책은 생물학과 인간학에 대한 하나의 대서사시이자 학문의 길고 어려운 여정을 깊은 사색과 뛰어난 필치로 소화한 회고록이기도 하다. 파브르 자신이 책에서 고백하듯 ‘부자 집에서 일하는 마부의 연봉보다 적은’ 가난한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파브르는 때로 한 달 월급을 모두 털어 책을 사고,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계속할 정도로 한 눈을 팔지 않고 ‘인기 없는’ 곤충학자의 길을 올곧이 걸었다.

파브르는 돈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시약, 도구 일습, 실험실 등의 비싼 장비 일체가 필요한데, 나는 연구자들이 보통 겪는 금전적 궁핍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따라서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6권, 465페이지) 이처럼 그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누구보다도 풍요롭고 놀라운 유산을 후세에 남겼다.

《파브르 곤충기》는 반드시 읽어야 할 세계적인 명저(名著)의 하나다. (1)우선 양적으로 방대한 기록과 자료를 드러내고 있다. 10권에 이르는 대작이다. 어떤 작가의 역량과 수준을 양으로 결정하긴 어렵지만, 좋은 저자는 대부분 다작(多作)을 하는 법이다. 어느 정도 이상의 양(量)이 있어야 질(質)을 논할 수 있다. 닭이 많아야 봉(鳳)도 찾을 수 있다.

파브르 곤충기 10권/ 사진=현암사

(2)인간정신의 진보와 역사에 대한 믿음이 빛난다. 인류 보편의 가치나 휴머니즘을 끝없이 사색하고 추구한다. 시(詩)와 기행문, 일기, 수필작품, 과학논문, 철학논고 등이 융합되어 있다. 단순한 곤충 관찰기록이 아니라 자연과 인생을 묘사하고 문학작품이자 철학을 설명하는 서적이다. (3)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통찰과 영감이 가득하다. 작은 곤충을 통해 생명, 우리가 사는 생태계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다양한 경험과 상상력이 온축되어 어떤 높은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이런 글은 쓸 수가 없다.

(4)지식과 학문에 대한 성실한 자세와 철저한 논박이 존재한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고 일부 오류는 있을 수 있다. 어떤 걸작도 1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진리이고 모두가 명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책에서 어떤 보물섬을 발견하려는 독자들의 인내심도 충분히 키운다. (5)100년 이상 꾸준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다. 이런 책은 책장에 꽂아 두는 것보다 책상 옆이나 침대 옆에 두고 수시로 읽는 것이 유용한 독서방법이다.

(6)젊은 나이에 쓴 것이 아니라, 관조하는 경지에 이른 노년(50대 이후부터 80세 이후까지 집필)에 나온 작품이다. 문재가 뛰어난 젊은 천재(天才)들의 글 이상으로 대가의 경험과 지혜가 온축된 노성(老成)한 문장은 보다 감동적이다. 거의 무(無)의 상태에서 유(有)를 창조했으며, 천재인데다 노력을 멈추지 않는 성실함이나 겸허함까지 볼 수 있다. 과학 저술이지만 수신(修身)을 위한 하나의 교과서를 방불케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면, 이런 저작은 하나의 위대한 길이다. 좋은 책은 반드시 이런 책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파브르는 말한다. “누구나 평상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정신세계가 독서로 인해 새로 일깨워지는 수가 있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지혜는 그 곳으로 집중되고, 그 결과는 화롯불을 지펴줄 하나의 불씨가 된다. 이런 불씨가 없는 화로 속의 장작은 언제가지나 쓸모없는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사고가 발전해 가는 과정에 새로운 길의 출발점이 되는 이런 읽을거리는 우연한 기회에, 아주 정말 우연하게 손에 들어온다. 우연히 눈에 띈 몇 줄의 글자가 우리의 장래를 결정하고, 그 운명의 고랑으로 밀어 넣는다.” (1권 64페이지)

한편 《파브르 곤충기》 번역판(현암사 발행)은 김진일 교수가 지난 2006년 완역하는 작업으로 다시 독서가들에게 유명해진 것도 우리가 참으로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이 책은 앙리 파브르가 졸업한 프랑스 몽뻴리에 대학교에서 1978년 곤충학 학위를 받은 김 박사가 《파브르 곤충기》 완역본을 소개하겠다는 꿈을 꾼 지 30여년 만에 이룬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우리 출판문화사, 나아가서 우리 지성사(知性史)의 빛나는 승리에 해당한다.

김진일 교수

방대하고도 깊이가 있으며, 시적이며, 철학적인 곤충기를 번역하면서 역자인 김 교수는 ‘저자인 파브르와 함께 4년여를 동고동락하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회상하면서 완역본의 남다른 감회를 말한다. 30여년이 지나 젊은 날의 소중한 꿈을 이룬 역자는 또 본문에 나타난 동식물에 대한 우리 말 작명, 분포 종 조사 등을 통해 한국판 《파브르 곤충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현재의 발전된 생물학의 지식과는 다른, 오류라고 판단될 수 있는 파브르의 일부 결론들은 김 교수의 해박하고 친절한 재설명으로 오해가 풀리고, 충분히 정리된다.

원로학자의 지칠 줄 모르는 학문에 대한 집념과 헌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 교수는 40여 년 동안 불모지에 가까운 풍뎅이 등의 우리나라 곤충학에 천착해 왔으며, 후학을 양성해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곤충학자다. 김 교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곤충 백가지》, 《한국곤충명집》 등의 저서도 유명하다. 

금테비단벌레/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우리는 곤충들이 보석(寶石)보다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거의 모른다. 책에 실린 곤충 사진들의 강렬한 색깔들은 우리를 경이로운 미학의 세계로 인도한다. 지구상에 100만종 이상이 존재한다는 곤충의 세계는 너무도 화려하고 신비롭다. 

곤충들은 이제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곤충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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