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당한 것을 그대로 되갚아 주는 것. 그런 행위를 앙갚음, 보복, 복수라고 한다.

몇몇 사람들은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며, 혹은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복수를 해본 적이 없거나, 복수의 희생자가 될까 두려워서 하는 말일지 모른다. 상처받고, 박해받고, 복수심에 불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들의 말을 부정할 것이다.

원수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다. 그걸 하는 사람이 대단한 거다. [pxhere 이미지 / CC0 Public Domain]

원수를 용서하라.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지만, 그처럼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우리들에겐 용서가 그리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아프게 하고 괴롭게 만드는 무언가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 대상에게 분노하고, “똑같이 되돌려 주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그래서 용서는 값진 것일지 모른다. ‘척’하고 쉽게 내어줄 수 없으니까.

예상하셨겠지만 기자는 복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복수는 달다. 기나긴 준비 끝에 복수에 성공했을 때의 그 희열과 쾌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정성껏 준비한 끝에 복수에 성공해본 분들 계시는가? 그 맛은, 꽤나 달착지근하다.

직장상사에게는 복수따위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로또라도 맞은 게 아니라면.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영화 포스터 / 네이버 영화]

뭐, 복수에 대해 부정적 관점을 지닌 분들도 있겠고, 그들의 주장도 존중한다. 어떤 복수는 그 끝에 섰을 때 두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니까. 복수에 대해 긍정적인 것은 순전히 기자의 개인적 성향이다.

복수 후에 저렇게 '상콤'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복수였다고 볼 수 있다. [pexel 이미지 / CC0 License]

어쨌거나,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는 복수에 대한, 복수를 다룬 영화 속에 등장했던 ‘복수귀’들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들은 주제의 특성상 복수의 과정이 다소 불법적일 수 있겠으나, 그들이 벌이는 일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일이라는 점을 유념하시길. 유혈낭자한 복수활극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만 맡겨두자. 우리의 복수는 합법적이어야 하고, 불쾌감이 아닌 통쾌함을 남겨야 한다.

 

-소개에 앞서…

사실 복수는 누군가로부터 입은 피해를 폭력으로 되갚는 행위만은 아니건만, 대표적인 ‘복수물’로 꼽히는 영화들은 대부분 폭력성이 짙다. 소박한 복수 쯤에는 사람들이 그리 통쾌함과 후련함을 느끼지 못하는가보다…

폭력을 통한 복수는 현실 세계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Pixabay 이미지 / CC0 Creative Commons]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할 복수 영화 속의 인물들 대부분은 상당히 잔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다는 점, 미리 밝혀둔다. 또한, 이 분야에서 너무나도 유명하기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은 최소한으로 소개한다.

 

※ 아래 내용에는 다음 영화들에 대한 크고 작은 스포일러들이 포함돼 있다.

올드보이 (2003)

모범시민 (2009)

킬 빌 Vol.1 (2003)

킬 빌 Vol.2 (2004)

 

■ 익스트림 군만두 빌런 오대수 - 올드보이

15년 삼시세끼를 군만두만 먹으면 진짜 싫어질 것 같다. [올드보이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누군가는 복수를 다룬 명작 영화로 ‘올드보이’를 꼽는 것이 진부하고, 뻔하다고 여기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복수를 다룬 한국 영화 중 이만큼 유명한 작품이 있을까? 어쩔 수 없다. 한국의 복수 영화에 대해 다루기 위해서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그 중에서도 올드보이를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산다’는 주인공 오대수는 자신도 모르는 새 납치되고, 출구 없는 방에서 15년간 갇혀서 살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갇히게 된 대수의 반응은 아마 우리라도 다르지 않았을 온갖 반응을 보이며 서서히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득 자신을 가둔 것이 누군지를, 왜 그곳에 가뒀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탈출을 준비한다.

15년동안 쉐도우 복싱 열심히 했는데… 써먹을 수 있었을까? [올드보이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정작 15년이 지나고 맥없이 풀려난 오대수는 그때부터 자신을 가둔 존재, 그리고 자신을 가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그런 오대수의 처절한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

오대수가 자신을 가둔 자에게 복수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누구라도 자신을 뜬금없이 납치해 15년 동안이나 방 안에 가둬둔다면 참을 수 없이 분노할 것이다. 거기에 심지어 자신의 가족까지 살해당하고, 그 누명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운다면? 성인군자라도 복수귀로 변할지 모른다.

 

※ 스포일러

사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복수귀 캐릭터는 오대수 뿐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애초부터 오대수의 가벼운 입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으며, 대수를 가둔 이우진 역시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복수를 꿈꾸는 자들의 복수 파티 영화, 올드보이였습니다(뻥). [올드보이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뿐만 아니라 오대수를 가둬둔 사설 감옥(?)의 관리자, 폭력배 ‘철웅(오달수 분)’ 역시 복수심 때문에 오대수를 추격하고, 미도를 인질로 붙잡는다. 그러나 그는 거금을 제안 받고 복수를 포기한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복수를 갈망하는 자들의 아귀다툼과 같은 꼴을 하고 있다.

 

■ 정의를 망각한 법체계에 저항하다 – 모범시민

보는 내내 "왜 저렇게까지 되어야만 했을까?" 싶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영화 모범시민. [모범시민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주인공의 복수에 대해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주인공의 복수 행위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문에 죄 없는 주인공의 가족(주로 조·단역)들은 오늘도 부지기수로 죽어나가며 주인공의 복수심을 불태우는 장작개비로 장렬히 산화한다.

그런데 이 영화, 모범시민에 등장하는 주인공 클라이드의 가족에게 닥친 시련은 해도해도 너무하다. 주인공 클라이드의 단란한 가족에 두 명의 괴한이 습격하고, 범죄자들은 폭행과 금품 절도도 모자라 클라이드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내를 강간살해한 뒤, 딸까지 살해한다.

초반부 묘사된 범죄 장면을 보면 그의 불타는 분노에 공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모범시민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아마 가정을 꾸린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보고 분노에 온몸을 떨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영화 속 상황이라 해도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작중 범죄자들은 인간의 탈을 쓴 쓰레기라고 봐야겠다. 강간·살인만 해도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최악질 범죄인데, 그것을 피해자 가족의 눈앞에서?

좋냐? 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부들). [모범시민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그렇게 클라이드는 관객들로부터 그의 복수극에 대한 허락을 얻게 됐다. 이른바 영화는 초반부부터 범죄자들을 ‘죽어도 싼’ 인물로 그려낸 것이다. 그래서 클라이드가 복수하려는 이유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게 됐다.

 

※ 스포일러

재판으로 넘어간 클라이드 가족의 사건은 그의 복수심을 더욱 맹렬히 타오르게 만든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 닉이 클라이드에게 합의를 권한 것이다. 닉은 증거 불충분으로 두 명을 모두 체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피의자들과 거래를 하게 되고, 그들의 거래 합의 장면(악수를 한다)을 본 클라이드는 종적을 감춘다.

사실 주인공은 초일류 공작 요원이었다… 복수의 스케일도 초일류! [모범시민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10년 뒤, 홀연히 나타난 클라이드는 두 명의 범죄자는 물론이고 그들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등에게 하나하나 복수한다. 클라이드의 복수는 그가 체포된 이후에도 계속된다. 클라이드의 복수극을 멈추기 위해 닉이 고군분투할수록, 사건에 관계된 이들은 죽어나간다.

끝끝내 '스파르타' 때의 박력으로 복수를 완성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따름. [모범시민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영화의 결말은 다소 께름직하다. 만약 기자가 클라이드의 상황이었다면, 피의자 중 한 명과 합의를 한 닉 역시 용서치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닉은 결국 살아남는다. 클라이드의 모습에 과하게 몰입한 기자는, 도저히 닉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 끝나지 않는 복수의 나선 – 킬 빌

피칠갑을 한 저 여인의 작중 이름은 베아트릭스 '키도(Kiddo)'. '꼬맹이' 같은 이름이다. [킬 빌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하던가. 이 속담은 여자를 함부로 대하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의미로도, 여인의 복수심은 냉혹하고 무자비하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겠다. 이와 비슷한 말은 서구권에도 있다. 

1697년 윌리엄 콩그리브의 희곡, ‘비탄에 잠긴 신부’에는 “(중략) 지옥에도 멸시받은 여자와 같은 분노가 없다(Heaven has no rage like love to hatred turned, nor hell a fury like a woman scorned)”라는 구절이 나온다. 뭐, 조금 다른 해석도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여인의 분노는 무시무시하다는 의미로 통한다. 그리고 이 말에 가장 적합한 영화 속 인물로는 영화 ‘킬 빌’과 ‘킬 빌2’, 두 편에 걸쳐 빌에게 복수를 꿈꾸는 여인 ‘베아트릭스 키도(우마 서먼)’을 꼽을 수 있겠다.

꼬맹이(Kiddo)의 피 튀기는 복수극! 어째 말이 좀...[킬 빌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베아트릭스 키도는 암살 조직의 단원으로 세계에 악명을 떨쳤으나, 돌연 평범한 남자와 정착하고 가정을 꾸리려 결심한다. 화려했던 범죄 경력을 뒤로한 채, 외딴 시골 한 교회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리허설을 한다. 그 리허설에 암살 조직의 보스, 빌이 등장하고 빌은 그녀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뒤, 교회는 총성과 함께 피투성이 아수라장이 된다.

 

※ 스포일러

4년 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키도는 자신이 새롭게 꿈꾸던 삶을 송두리째 없애버린 빌, 그리고 4년 전의 사건 현장에 있었던 암살 조직 단원들을 찾아가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그녀가 복수하려는 대상은 1번 오렌 이시이, 2번 버니타 그린, 3번 버드, 4번 엘 드라이버, 마지막 5번 빌이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이름난 암살자들이기에 만만찮은 적이겠지만 결국 그녀는 다섯 명의 리스트 속 한 명, 한 명의 이름 위에 줄을 긋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영화 제목처럼 빌을 죽이는데(Kill Bill) 성공한다.

남의 결혼식에 왔으면 얌전히 놀다 가야지, 안 그럼 하나 하나 끔살당할지 모른다. 얘네들처럼. [킬 빌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개봉한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작품인데, 아직도 영화에 관한 ‘떡밥’이 인터넷 상에 돌고 있다. 영화의 첫 번째 장면에 등장했던 키도의 2번 타겟, ‘버니타 그린’의 딸을 주인공으로 한 세 번째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부른다더니. 만약 뜬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번에는 처절하게 복수를 ‘당하는’ 키도의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르겠다.

 

■ 복수의 참 맛

그리 강심장은 아니라 저 영화는 못 보겠다(ㅠㅠ). [악마를 보았다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한 대표적인 ‘복수귀’ 캐릭터들 외에도 영화계에는 눈물을 머금고, 또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복수를 위해 일어서는 이들이 많다. 올해 개봉한 ‘조작된 도시’ 속 주인공 ‘권유’도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시를 누비고,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달콤한 인생’도 어둡고 깊은 복수극의 이야기다.

생긴 건 4대 성인 중 한 분을 닮았건만… [존 윅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어디 그 뿐인가? 변치 않는 외모로 ‘뱀파이어’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배우 키아누 리브스도 ‘존 윅’ 시리즈에서 인간 흉기 같은 면모를 보이는 복수귀로 등장했고, 테이큰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에서는 주인공(리암 니슨)에게 당한 범죄조직이 주인공에게 복수하려다 오히려 응징을 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에 '복수'가 직접 노출되는 영화도 많은데, 안 그런 영화까지 합치면… [복수는 나의 것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복수에 대해서, 또는 복수 과정을 그린 영화는 정말 무수히 많다. 영화 뿐 아니라 드라마, 만화, 게임 등 다른 분야로 넘어가면 또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못 할 수준으로 많은 캐릭터들이 있다. 왜 그렇게 많냐고? 그야 물론, 인기 있으니까. 복수를 갈망하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복수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작품들이 흥행하는 까닭은 우리가 그들의 통쾌하면서도 처절한 복수를 응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넌, 나에게 목욕가운을 주엇서. [달콤한 인생 영화 장면 / 네이버 영화]

영화 ‘올드보이’에서 우진(유지태)은 말한다. 복수는 몸에 좋은 것이라고. 또한 무수히 많은 곳곳에서 복수의 맛을 ‘달콤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왜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는 걸까?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으면 응당 항의해야 옳은 것 아닌가? 용서는, 신 또는 그에 근접한 자들에게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예상 댓글 하나, "~는 왜 없음?"…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작품들을 다루도록 하겠다. 

물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복수는 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부르는 사례도 많을 터이니. 하지만, 우리는 합법적이고 타당한 범주 내에서 만큼은 복수를 계획하고, 꿈꾸고, 실행에 옮겨도 된다. 못된 말만 하는 친구의 머리통에 지우갯가루를 뭉쳐 던진다던가… 너무 소박한가? 어쨌든, 그 정도는 괜찮단 얘기다. 왜냐고? 복수심은 우리의 본능이고, 복수는 우리의 힘이니까. 또, 그것의 맛은 꽤나 달큰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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