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움에 대한 안부

[공감신문] 오늘, 두장의 영화티켓을 선물 받았어요. 그리움에게 전화를 걸다가 마지막 버튼을 누르지 못했어요. 혼자가 편할 것 같아 영화관에 갔죠. 빈자리에는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리운 영혼을 불러 앉혔죠. 함께 있으면서도 함께하지 않은 것 같은 존재가 아닌, 당장 함께 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그런 존재를 불러 함께 영화를 보았죠. 혼자이지만 둘인 거 같기도 하고 암튼 편안했어요.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오프닝 장면이든, 앤딩 장면이든, 아니면 배경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희망이 있기에 영화를 애정 하는 거 같아요. 오늘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슴에 무언가를 새기네요. 아마도 현재의 내 심경과 일치했기 때문이겠지만.

사랑한다는 것도 일종의 그리움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인지도 모르지만. 아니, 산다는 것 자체가 그리움이 아닐까 해요.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도 내일의 그리움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해요. 내일, 모레, 그다음 날에는 어제 열심히 모아놓은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살겠죠.

그렇다면 그리움은 무엇일까요. 그리움은 손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그러나 그리움도 때로는 존재와 존재 사이에 메울 수 없는 헛헛한 여백이 있잖아요. 아무리 사랑해도 그 깊은 속내를 다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는 거죠. 사랑이든, 그리움이든 오가는 여백을 만들어주어야 숨을 쉬게 되니까요.

그리움은 추상의 꽃이 아닐까 해요. 마음으로 품었으나 두 팔로는 품지 못한 꽃, 결코 만져지지 않는 추상의 꽃. 누구든 그런 꽃 한 송이쯤 마음에 심어 놓았을 테지만.

아무리 귀한 꽃을 제 몸에 품고 있어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아래로 추락하죠. 그 헛헛함은 잡을 수 없는 그리움 같다고나 할까요.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각사각 스며드는 그리움을 단번에 밀쳐낼 수 있는 강력한 감정도 없다는 게 안타깝죠. 그럼에도 그리움은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고, 살아가게 하는 강력하고도 은밀한 힘이잖아요.

어떤 시인은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매일 그리워하며 그리움의 힘으로 힘든 시간도 견디는 거죠. 연어가 고향을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거친 바다를 거슬러 헤엄치듯. 가을인가 싶은데 어느새 먼 산이 아름드리 한 단풍으로 옷으로 갈아입었네요.

푸릇했던 것들이 자리를 내어주는 동안 그리움을 안고 지독하게 달려온 생의 모든 것들도 곱게 물들고 있어요. 머지않아 그리운 것들이 하나 둘 떠나갈 테지만 오늘, 이 순연한 가을빛은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그리움으로 남겠죠.

놀이터 한 곳에서 젊은 남녀가 시소를 타고 있네요. 한 번은 여자가 위로 오르며 한 번은 남자가 아래로 내려가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게 서로가 애써 배려를 하네요. 그 모습이 어찌나 애틋한 지 오래전 내 모습을 보는 듯해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온도가 차가워지는 것 같아요. 동작이 느려지는 만큼 느려져야 하는데 욕심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이네요. 어디까지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편안하게 수평을 이루는 것인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오늘은 섭섭함이 심장을 절반 이상을 차지한 거 같아 자꾸만 우울해지네요.

시소놀이처럼 애정 한다는 것은 그런 거 같아요. 둘 중에 한 사람이 더 많이 애정 하고, 한 사람은 더 작게 애정 하니까. 섭섭함이, 미움이, 두려움이 차오르는 것 같아요. 언제쯤 완전한 수평을 이루어 기울어지지 않는 애정을 안을까요? 오늘은 그리움이 제 곳을 찾아가도록 키 큰 가로수에 안부를 걸어 두었어요.

기어코 가야 한다면 바람을 타고서라도 주인을 찾아 가리라 믿으며. 안부의 편지를 보냈으니 답장이라는 우편물이 도착할 때까지 또 기다려야죠. 다만 애정의 시차를 많이 느끼지 않는 답장이 오길 바랄 뿐이죠.

잠시 켜졌다가 꺼지는 센서등이 아니라 스위치를 올려 당분간 전등을 켜두어야겠어요. 기다리는 내 그리움의 답장이 어두워 방향을 찾지 못하지나 않을까. 툴툴거리며 허둥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환하게 밝혀 둘래요. 잠시 부재중인 내 그리움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기억과 행동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단속하여 마지막 에필로그가 지금, 여기, 나라는 것임을 확신하게끔.

눈이 내렸으면 좋겠어요. 한 사람에 대한 잠시 만의 미움을, 섭섭함을, 눈이 덮어 주었으면 해요. 아니,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요. 잠시만의 의심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말끔히 쓸어갔으면 해요. 다시 따뜻하고 정직한 마음이 가득 채워져 애정 역인지 미움 역인지 분간이 안 가는 이 혼돈의 역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오늘따라 목을 꺾어 올려다본 하늘이 시리도록 슬프네요. 하늘에 쓴 애정의 문장이 다 지워진 것 같아요. 영원인 줄 알았던 애정이 어딘가에 덜컥 이별을 숨겨두지 않았을까 두려워요. 내가 깊게, 선명하게 써둔 이름 세 글자가 삭제될까봐 겁이 나요.

시나브로 가을이 깊어 갑니다. 오늘이 지나면 이 순간도 그리움이 되겠죠. 다시 흔들리는 필체로 그리운 이름 세 글자를 정확하게 써 두네요. 하늘에다가...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네요. 다시 본연의 나로 돌아와 헐거워진 마음을 다잡고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만해서 행복했던 그날, 그곳을 탐닉해요. 그리움을 토해내고 싶은 이 순간 어느 시인의 간절한 그리움의 어휘가 생각나요.

“인생에는 면제가 없다.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오고야 만다”라고.

“지금 견디기가 너무 어렵다면 다리 건너기라고 생각하라. 그 다리를 건너야 행운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그래요. 세상의 예법이 허락한다면 그리움이여! 우리 만날까요? 거기서 손이라도 맞잡고 잠시 하나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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