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낙규의 축제이야기] 나를 잊고 鵬이 되어 남쪽 바다로 나는 상상을 해보자

 

[공감신문 강낙규 기술보증기금 이사] 국제나비곤충표본관(금호아시아나관으로 명칭변경)에는 나비도 아름답지만 수십 마리의 나비를 모자이크로 큰 나비표본으로 만든 상상력이 더 아름답다.

나비는 1억5천만년에서 2억 년 전에 출현했다고 한다.

나비와 나방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 나바의 활동시간은 주간인데 비해 나방은 야간이고, 크기는 나방이 조금 더 크다고 한다. 앉을 때 나비는 날개를 접지만 나방은 날개를 펴고 앉는다. 나비는 밝은 색을 띠는 반면 나방은 어두운 색을 띤다. 형형색색의 나비무늬가 눈을 즐겁게 한다.

 

이제 종합 학습 체험장으로 간다. 먼저 곤충관으로 가면 장수풍뎅이를 비롯해 각종 곤충을 판매하기도 한다. 큰모기장을 쳐 놓은 곳에는 나비와 곤충들이 날아다닌다. 장수풍뎅이의 애벌레는 몸길이가 약 8~10cm정도 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애벌레라고 한다. 애벌레기간은 총 5~7개월 정도이며 온도에 따라 차이가 난다. 성격이 온순해서 여러 마리를 같이 사육해도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 엉덩이에 공생 균을 지니고 있어 소화를 담당한다.

딱정벌레, 바퀴벌레, 좀, 흰개미, 사냥벌류를 포함하여 셀룰로오스를 먹는 특정한 곤충들도 소화 과정에 박테리아를 이용한다.

 

반추동물(되새김질하는 동물)의 첫째 위에는 박테리아와 균류, 원생동물로 이루어진 사실상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미생물들의 발효를 통해 섬유질 탄수화물인 셀룰로오스를 다양한 영양분으로 분해한다. 유기체들 간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협동을 가리켜 공생이라고 한다. 흙은 복잡한 성장 환경이며 유기체로 가득 차 있어 흙 1킬로그램에 박테리아 5000억 마리, 진균류 10억 마리, 곤충에서 벌레에 이르는 다세포 생물이 많게는 5억 마리까지 들어 있다. 이러한 유기체들 가운데 다수는 협력하여 죽은 나뭇잎과 동물의 배설물 같은 유기물을 분해하는 한편, 질소를 추출하여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시킨다. 또한 탄소를,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 필요한 이산화탄소와 그 밖의 화합물로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상호의존개체들의 집합전체가 또 다른 개체를 형성하고 있을 때 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관점이 있으며, 중생체(衆生體)라고 한다.

톰 웨이크퍼드는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이란 저서에서 생물은 미생물과 ‘공생’할 때에만이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진화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며 “이빨과 발톱으로 피투성이가 된”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이미지가 만연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박테리아가 틈입한 생물체 간의 투쟁을 거친 공존을 통해서 진핵세포가 기원했고, 다른 한쪽이 죽으면 다른 한 쪽 역시 살 수 없는 깊은 상호의존성을 통해서 생물체는 진화했다.

지금 가장 긴급한 메시지는 우리의 미래가 완전히 커다란 생물학적 전체의 미래와 생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다 능동적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 공연중인 무희. /사진=강낙규

함평나비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나비곤충생태관으로 간다.

나비곤충생태관에는 온갖 나비가 날아다니고, 갖가지 꽃에 나비가 앉아 있으며 여자아이들은 나비망토를 입고 다녀 온통 나비세상이다. 나도 모르게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착각에 빠진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꾸면서 사람에서 나비로, 나비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듯 나비곤충생태관을 나오면 생태관에 들어가기 전의 ‘나’가 ‘자각한 나’로 변화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 일이다.

중앙광장꽃밭과 함평천(川) 수변공원에서는 하루 8천 마리, 축제기간동안 총 10종 5만 마리의 배추흰나비, 몰포나비, 암끝표범나비를 마치 부처님 오신 날 거북이나 물고기 방사하듯 날려 보낸다.

 

나비의 꿈(蝴蝶夢).

장자 제물론에,

“장자가 어느 날 낮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데 꿈속에 나비가 되어 신나게 날아다니며 자연을 만끽하다 잠시 쉬려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잠이 든다. 잠에서 깨어보니 나비가 아니라 인간 장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장자는 고민에 빠진다. 인간이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본래 나비가 꿈속에서 인간된 건지 구분이 안된다.“

꿈은 현실이 아니지만 그 현실 또한 다시 꿈일 수 있다.

 

소요유에서도 곤(鯤)이란 물고기가 붕(鵬)이란 거대한 새로 변화하는 물화(物化)를 보여준다. 여기서 물(物)이란 생물, 무생물, 추상적 현상까지를 포함한 개념이고, 화(化)는 종차를 가로지르는 변화를 말한다. 따라서 물화란 한 존재에서 전혀 다른 존재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꿈을 꾸기 이전의 장자는 오직 장자로만 생각하지 다른 존재로 생각을 못하는 상태이고, 꿈속에서는 장자가 나비인줄로만 알지 인간이란 사실을 모른다. 그런데 꿈을 꾸고 난 이후에는 다시 인간 장자로 회귀하지만 꿈꾸기 전의 장자와는 다른 장자로 태어난다. 하나의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진 전혀 다른 장자로 탄생한 것이다. 변화는 경계를 넘어가는 것으로 그 경계는 영원하거나 고정되어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화(化)를 통하여 가로지르고 허물 수 있는 경계인 것이다.

장자자신의 주체정신이 자의식에서 벗어나 절대자유의 경계로 들어감에 따라 대상과 나의 절대불변의 구별이 무너져 버린 물아일체(物我一體), 주객합일(主客合一), 상아(喪我), 망아(忘我)의 상태가 된 것이다.

존재 조건에 구속되어 있고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한,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여름에만 사는 벌레에게는 얼음을, 일곡지사(一曲之士 소견이 좁은 선비)에게는 도를 이해시키기가 불가능하다. <추수>

엘린슨은 왜 모기나 파리 또는 장미가 아닌 나비인가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나비의 아름다운 이미지와 번데기에서 변태(metamorphosis)의 과정을 거쳐 나비로 변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생태관을 나오면 유채꽃 사이로 맨손으로 미꾸라지잡기 체험을 하느라 아이들이 첨벙 첨벙대며 정신이 없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아무것도 없는 고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모두가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 함평이 그런 마을이 되기를 기대한다.

혜자가 가죽나무는 줄기가 뒤틀리고 옹이가 가득해 크기만 하고 쓸모없다며 은근히 장자의 이야기가 허황됨을 비꼰다. 장자는 드넓은 들판에 가죽나무를 심어놓고 그 주위를 하는 일 없이 배회하기도 하고, 그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라고 충고 한다.

▲ 장자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꾼다. 꿈은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도 또한 꿈일수 있다. /함평 나비축제 웹사이트

조상(曹商)이란 자가 송나라 왕을 위하여 진나라에 사신으로 갈 적에 송나라 왕에게서 몇 대의 수레를 얻었을 뿐이었는데, 진나라 왕이 그를 좋아 하여 수레 100대를 보태주었다. 조상이 송나라로 돌아와서, 장자에게 가난한 시골의 비좁고 지저분한 뒷골목거리에 살면서, 곤궁하여 짚신을 삼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비쩍 마른 목에 누런 얼굴을 하고 사는 것은, 자기가 잘 못 하는 것이며, 한 번 만승 대국의 군주를 깨닫게 하여 따르는 수레가 100대나 되게 하는 것은, 자기가 잘하는 일이라고 거드름을 피운다. 이에 장자가 진나라의 왕이 병이나 의사를 부르니, 종기를 터뜨리고 부스럼 을 없애주는 자는 수레 한 대를 얻고, 치질을 핥아 고쳐 준 자는 수레 다섯 대를 얻으니, 치료해 준 부위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레를 더욱 많이 얻었다. 그러니 그대는 아마도 진왕의 치질이라도 핥아주었나 보구나. 아니라면 어떻게 수레를 그렇게 많이 얻었단 말인가? 그러니 얼른 떠나 가라며 꾸짖는다.

 

“명예란 공적인 도구로 혼자서 많이 가져서는 안된다. 인의(仁義)는 옛 선왕 들이 잠시 묵었던 임시처소인지라 하루 저녁 묵을 수 있지만 오래 머물면 책망을 받는다. 부(富)를 최고 가치라고 여기는 자는 녹(祿)을 양보할 줄 모르 고, 출세를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은 명예를 양보할 줄 모른다. 권세를 사랑 하는 사람은 남에게 권력을 양보하지 못한다. 하나같이 반성함이 없고 그리 쉴 새 없이 변동하는 것만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자들은 하늘의 처벌을 받을 백성이다.”

“샘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땅위에서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서로 거품으로 적셔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하다.” (不苦相忘於 江湖) <천운>

▲ 포돌이 아저씨와 속삭이는 아이. /사진=강낙규

함평 나비축제장(엑스포공원을 나비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답지 않을 까?)을 한가로이 걸으면서 쓸모 있음과 돈만을 쫓아가는 세상을 잠시 뒤로 하 고 장자의 가르침대로 나를 잊고(吾喪我) 한 번 호기롭게 붕(鵬)이 되어 남쪽 바다로 훨훨 날아보는 상상을 해보자.

하늘은 쾌청하고 때 아닌 뭉게구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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