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강란희 칼럼] “잉여인간(剩餘人間) ②, 빈대 몇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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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강란희 칼럼] “잉여인간(剩餘人間) ②, 빈대 몇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어”
  • 강란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3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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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법원도 변해야 한다.”

“당신의 목숨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공감신문] 강란희 칼럼니스트= 언제 어디서나 파산법원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한결같이 나도는 소리가 있다. 바로 “파산관재인”이다. 파산관재인의 무소불위 권력은 서민들 특히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죽지 못해 삶을 이어가는 힘없는 백성들에게 저승사자 같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사진 연합뉴스>

그뿐만 아니다. 더 웃긴 건 또 있다. 파산관재인은 공공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사무원들의 기개는 가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겨룰 수 없는 힘과 권력을 가졌단다. 그들은 약자에게 더 강하게 고압적이며 듣기 힘든 언어를 구사하며 신청자들을 괴롭힌다고 말한다.

한 법조인의 말을 빌리자면 “파산관재인에 관한 이야기는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적이고 약자를 보듬을 줄 알고 자료를 요구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친절하게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마치 자신(파산관재인이나 사무원)이 약자(신청자나 신청자 대리인)에 대한 왕이나 된 듯 권력을 휘둘러며 ‘당신의 목숨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참 애 닮지요. (그들 앞에서는) 신청자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들의 권력에 대해서는 글쓴이도 이골나게 보고 듣고 한 적이 있다. 또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들은 대단한 권력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법원이 이런 파산관재인을 그대로 두고 있다는데 문제가 더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다수는 파산관재인들을 가혹한 권력 남용자라고 하는군요.”

더불어 법조인들이 더 열 받고 어이없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파산법원 판사들이라고 귀띔한다. “파산법원 판사들도 마찬가집니다. 요즘은 총각 판사들이 많다 보니 삶을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아요. 다시 말하면 개인파산 신청자나 개인회생 신청자의 고충이나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느냐는 인간적인 미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파산이나 면책 선고도 아주 머리 아프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어요. (중략) 일각에서는 ‘니(판사)가 이 돈 가지고 3개월만 살아봐라’라는 소리도 나온다니까요.”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파산관재인도 문제지만 젊은 판사들도 문제인 성싶기도 하단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요즘 파산법원의 젊은 판사들은 험난하고 고단한 과거의 삶을 겪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망치로서 뭉개버린다.” 등의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파산관재인이란: 법원에 의해 선임되며 파산재단의 관리나 처분 그리고 파산 채권의 조사와 확정 등과 파산재단 채권의 변제 등 파산 절차상의 중심적 활동을 하는 공공기관.

<사진 한국금융피해자협회 제공>

“약자를 위한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사실 이들(파산선고는 받고 면책이 불허된 경우)의 대다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거나 기술이나 능력을 갖췄어도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도 하지 못하고 그냥 투명 인간이나 잉여 인간으로 남아 사회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우선 이들만이라도 구제 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법조인의 말이다.

우리나라 파산제도가 생겨난 이후 법원으로부터 빚을 갚을 수 없어 파산을 선고받고 면책을 받지 못한 숫자는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파산관재인 제도가 생긴 후부터 숫자는 더욱 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고압적인 조사와 상상을 초월하는 자료제출요구 그리고 조사 범위가 가족을 비롯하여 엄청나다는 말이다. “이건 파산/면책을 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사람 온 집안에 알려 창피나 주자는 심보지 다른 것은 없어 보여요.”

그렇다. 수없이 많은 취재를 하는 동안 만난 사람 중에는 법원을 속이기 위해서 파산을 신청 한 사람보다 정말 살기 위해서 제도를 이용 한 사람이 더 많았다. 물론 “도덕적 해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속이려는 사람보다 속일 힘마저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보통 파산과 동시에 면책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때로는 재량면책이라는 제도도 활용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쉽게도 파산선고 후 오랫동안 면책을 못 받은 사람 중에는 젊은 사람은 빨리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고 고령자들은 생의 마지막을 가족들과 보낼 수 있게 해 줘야지 않겠습니까. 고령자를 파산자로 잡고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이런 사정으로 그들을 가정에서, 집단에서 거리로 내몰지 말고 이왕 파산이 선고된 사람은 면책을 시켜 사회 일원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등 이와 관련된 제도가 시급 하다는 다양한 목소리가 지식인들이나 정치인 그리고 법조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같은 제도를 위해 현재 법조계에서는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회장 백주선 변호사)를 비롯하여 정계에서는 박주민 의원 등 다수 의원이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면책이 불허가되는 사유는 몇 가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파산재단에서 조사 시 그 요건에 충족함에 따라 파산이 선고된다. 그래서 면책허가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그렇다고 파산선고가 난 사람을 면책을 안 시킨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또 돈을 수십억을 감춰놓고 사기파산/면책을 신청하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파산자는 파산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국가도 파산법원도 뭣이 이익인지를 따져봐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파산 법정은 채무자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가리는 곳이 아니지요. 오직 채무자를 건전한 경제주체로 사회에 복귀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경찰이나 검찰이 조사하라.”

빚을 갚지 않는(못한)다고 중죄인 취급을 하며 벌을 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없애고 “형사소송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것이 이익이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는 법원도 신속히 파악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 파산법원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특히 파산신청자를 파산선고 전에 완전 죄인으로 취급해 버린다. 그중에서도 파산관재인들이 말이다.

설령 파산신청자가 채무에 대한 죄를 지었다 치더라도 무슨 살인죄나 강간죄 등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다 잘못된 것인데 말이다. 물론 채권자 입장에서는 괘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갖은 노력을 하다 법원에 손 내민 약자에게 범법자 취급을 한다면 이보다 더 황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 그렇다 하더라도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선고가 나기까지는 죄인이 아닌데 말이다.

다시 말하면 파산법원이나 파산관재인들은 파산신청자의 재산이 혹여 숨김이나 부정한 사용으로 인해 채권자를 괴롭혔는지? 아니면 정말 노력하고 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파산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피고 조사해서 남은 재산이 있다면 파산재단에 귀속시켜 그 권한을 행사하면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없고 가난하고 가진 것 없다고 파산신청자를 마지 살인이나 폭력 등 중죄인에게고 잘 하지 않는 수치심을 가하거나 거만하게 윽박지르거나 혹은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일들이 지금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중죄를 짓는 등 형사사범이나 큰돈을 해먹은 사기 사건 등에 연루된 자들은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보호를 다 하면서 정작 조그마한 채권 채무 관계에 연루된 자들에게 인권이 없었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파산에 연루된 사람들은 대다수 채무를 안 갚거나 갚기 싫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는 못 갚아서 제도권에 부탁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럴 바에야 차라리 ‘형사소송법’으로 다루고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 하면 될 것이고 무슨 파산법원이 필요하며 파산법률(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필요합니까?”라며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도 있다.

<거리의 가족>

“파산법원도 변해야 한다.”

좀 늦긴 했어도 이제 파산법원도 변해야 한다. 그래야 약자도 공존의 세상에서 어울릴 수가 있다. 물론 악의적인 사람들은 골라내야 한다. 그렇다고 빈대 몇 마리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일찍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보면 변화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제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그런 법원이 안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더불어 정말 힘든 약자들에게 군림하며 권력만 행사할 것이 아니라 세세하게 묻(질문)고 과도하지 않은 일 처리로 삶의 의욕이 생겨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반면 파산신청자 자신에게 여러 가지 감당하기 어렵고 버거운 요구를 해서 삶 자체를 좌절시키거나 희망을 꺾어버려 거리의 사람을 양산해 내는 기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중한 빚에 허덕이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나 가족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아울러 마지막으로 오래전 서울 서초구의 윤준석 파산 회생 전문 변호사가 SNS에 올린 글이 공감이 가서 인용해 본다. “파산 법정은 채무자에 대해 ‘잘했다.’ ‘잘못했다.’ 하는 가치판단을 하기 보다는 채무자를 건전한 경제주체로 복귀시키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이며 이러한 합의가 있었으므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존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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