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연약한 대상을 보호해주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보호본능’이다.

대부분 생명체들의 새끼는 귀여운 외모로 우리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하앜 하앜.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이 ‘보호본능’은 여러 사람들, 특히 남자들을 위험한 상황 속으로 몰아간다. 아, 비디오 게임(이하 게임으로 통칭)의 얘기다. 과장 조금 보태서, 다수의 남자 주인공들이 게임의 스토리를 진행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이 보호본능 때문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양반이 학살을 저지르고 다니는 까닭도 결국은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서 아닌가? [슈퍼마리오 게임 장면]

보호본능의 대상이 되는 존재, 여성 캐릭터들. 이른바 ‘히로인(Heroine)’들은 보통, 게임 속의 악한 존재(마왕 등)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Help!”하는 비명을 지른다. 그녀의 외마디 비명에 남성 캐릭터들은 가슴에 용기를 품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난다. 게임의 본격적인 시작인 것이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보자. 과연 여러분들은 그런 상황에 진정으로 몰입하실 수 있는지? 조금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으신지? 암만 게임이라고 해도, 공감은 가야할 것 아닌가?

우리 중 누가 일면식도 없는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용감히 나서겠느냔 말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다. [젤다의 전설 게임 장면]

자, 현실 속에서, 누군가가 위험천만한 악의 존재에게 납치됐다. 여러분과는 접점이나 인연도 없고, 그저 납치됐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아마 대부분은 배낭을 꾸려 길을 떠나기보다는 경찰에 신고할 생각부터 하실 거다. 우리가 그들을 ‘직접’ 구할 마땅한 이유가 없는 거다.

과거의 게임들은 대체로, ‘히로인’들을 게임의 최종 목표로 내세웠다. 주인공, 즉, 남성 게이머의 분신인 남성 주인공들은 납득할 만 한 이유 없이도 목숨을 내던지고 그녀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이 점은, 과거의 게이머들에겐 어땠을지 몰라도 요즘의 입맛 까다로운 게이머들에게 ‘그럴싸한 동기’로 어필하기가 쉽지 않다.

주인공 에단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숀'을 구하려는 이유는, 그가 아들이기 때문이다. 숀!!!! [헤비레인 게임 장면]

그래서 게임 개발자들은 이런 저런 설정들을 게임 속에 가미한다. 히로인들을, (주로)남성 게이머들이 ‘구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런 개발자들의 노력이 성공적으로 먹혀 들어가면 히로인들은 그저 단순한 ‘게임의 목표’나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나고, 게이머들의 보호본능을 마구 자극한다. 게임 속 캐릭터의 대사가 아니라, 실제로도 “꼭 구해내고 말겠어!”라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할 어리고 여린 이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여러분, 혹은 게임 속 주인공 캐릭터와 혈육이 아니다. 연인도 아니고. 하지만 그녀들은 모두 여러분들의 보호본능을 마구 자극해서, 게임에 몰입한 여러분들이 그녀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끔 만들지 모른다. 다만, 연인으로서 느끼는 감정과는 조금 다르다.

지켜보고 있으면 '아빠미소'가 절로 흘러나오는 게임 속 우리의 예쁜 딸내미들, 한 번 만나봅시다. [MBC 무한도전 장면]

이 게임들 속에서, 그녀들은 여러분에게 세상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녀들은 흡사, 현실 속 ‘딸’같은 존재다. 게임 패드를 들고 있는 우리에게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들고, 우리를 ‘딸 바보’로 만드는 게임 속 ‘전자 딸내미’들을 소개한다.

 

■ 들어가기에 앞서…

요즘은 게임을 즐기는 여성들이 많이 늘었다곤 하나,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남성 게이머들이 더 눈에 띄는 편이다. 이 때문인지 아직도 많은 게임 개발자들은 여성보다는 남성들을 위한 게임을 내놓고 있다.

분명 여성 게이머들도 많이 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남성 게이머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리 티가 안나는 듯도 싶다.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이 문제의 원인이 ‘남성향 게임의 범람’이 먼저냐, ‘여성향 게임의 부재’가 먼저냐에 대한 얘기는 나중을 위해 미뤄 두도록 하겠다. 이번 포스트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남성 위주의 게임 요소들’에 대한 비판도 아니고,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의 묘사’에 대한 비판도 아니다. 그저 해당 주제에 적합한 캐릭터들을 소개할 뿐이다.

게임업계가 여성 캐릭터들을 다소 소비적으로 묘사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나,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하는 여성 캐릭터들, ‘전자 딸내미’들은 그리 평면적이지도, 너무 순종적이거나 소비적으로 묘사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성적 매력만을 부각시키는 소위 ‘눈요기’형 캐릭터들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을 여럿 지니고 있기에 선정해봤다.

 

※ 다음 게임들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비욘드 투 소울즈

-워킹데드 시리즈

-위쳐3

 

■ 엘리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그 흔한 '비호감' 요소 하나 없는 청정 캐릭터, 엘리.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게임 장면]

Playstation 독점작으로 출시된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전염병으로 인해 좀비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암울한 스토리, 여러 게임 요소들, 연출, 음악 등 온갖 부문에서 찬사를 받으며 ‘2014년 GOTY’를 수상했다. 또한, 이 게임에 등장하는 소녀 ‘엘리’는 게임을 플레이해본 숱한 이들을 ‘전자 딸 바보’로 만들기 충분할 만큼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엘리는 원인 불명의 곰팡이균으로 인해 문명사회가 반쯤 무너져 내린 게임 속 시대적 배경, 2033년을 기준으로 14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애다. 그녀는 모친을 잃고 난 뒤, 어머니의 친구인 ‘마를렌’에 의해 거둬졌다. 이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 즉, 플레이어인 ‘조엘’과 동행하며 미국 대륙을 횡단하게 된다.

만약 너무나 어이없게 딸을 잃어봤다면, 두번 다시 그런 상실을 겪고싶지 않을 것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게임 장면]

한편 주인공 조엘은 딸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아버지다. 그는 곰팡이균 사태 초반(게임 도입부)부터 딸을 잃고 상처를 받는다. 2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 때의 상처를 잊지 못한 것인지, 살갑게 구는 엘리를 멀리하려 노력한다. 물론 아직 철없고 순진무구한 엘리의 모습 때문에 잠시 마음을 여는 것도 같지만, 일단 기본적으로는 그녀를 떼놓으려 한다.

하지만 조엘의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둘은 가까워지게 된다. 사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딸 뻘인 아이와 함께 고난을 헤치고 서로 도우면서 미국 대륙을 횡단하니 둘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점차 조엘은 엘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녀를 아끼면서 진심으로 대한다.

초반에 엘리에게 시큰둥했던 조엘도 점차 그녀를 아끼게 된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게임 장면]

이 모든 과정을 직접 플레이하며 경험한 게이머들도 차츰 엘리에게 마음을 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여느 다른 게임 속에 등장하는 ‘피보호자’처럼 수동적이지도 않고, ‘발암’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무법자들과의 싸움에서 벽돌을 집어던지는 식으로 플레이어를 돕는다. 또 거친 입담은 얼마나 위트있는지… 까칠하고 성깔있는 성격이면서도 순수함을 간직한 엘리를 지켜보고 있으면 조엘도, 그리고 우리도 배시시 미소를 짓게 된다.

 

※ 스포일러

조엘과 엘리가 동행하게 되는 까닭은 엘리의 특별한 신체능력 때문이다. 그녀는 곰팡이균 감염에 면역이 됐으며, 이 때문에 그녀를 통해 인류를 구원할 백신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엘리가 희생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은 그것을 잠자코 지켜만 볼 수 없었고, 결국 백신을 만들어낼 연구 집단을 몰살시키고 엘리를 구출해낸다.

과연 우리 중 누가 조엘의 선택을 탓할 수 있을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게임 장면]

단편적으로 보면, 조엘은 인류의 구원을 저버리고 오로지 제 딸(이나 다름없는 존재)을 구해낸 이기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해본 이들이라면 그 누구도 조엘의 선택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우리 중 그 누가 자신이 끔찍이 아끼는 대상을 ‘인류의 구원’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희생시킬 수 있을까?

 

■ 조디 홈즈 (비욘드 투 소울즈)

엘렌 페이지가 직접 동작과 표정을 연기한 캐릭터, 조디 홈즈. [비욘드 투 소울즈 게임 장면]

게임 ‘비욘드 투 소울즈’는, 155cm의 단신에 귀여운 동안 외모로 인기를 끌고 있는 ‘엘렌 페이지’가 직접 게임 캐릭터를 연기한 어드벤쳐 게임이다. 이 게임은 알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인 ‘에이든’을 달고 살아야하는 ‘조디 홈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조디’와 ‘에이든’을 번갈아가며 조작하게끔 구성됐다. 또한, 게임 설정 상 에이든은 조디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녀의 유년기부터 청년기, 성인이 된 이후까지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게이머들은 조디를 ‘게이머 자신’으로 여기기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온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어릴 적부터 귀여웠던 '우리' 조디의 모습. 꺅! >.< [비욘드 투 소울즈 게임 장면]

조디는 에이든을 이용한 초능력 때문에 온갖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치기도 참 많이 다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게임상) 조디를 지켜봐온 게이머들, 우리들은 그녀의 괴로움과 외로움, 고통을 지켜보면서 가슴 깊이 보호본능을 느끼게 된다.

또한, 종종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들도 있는데, ‘에이든’을 조작하게 될 때면 게이머들은 그 남자에게 심통을 부리거나 둘 사이를 방해하려 들 수도 있다. “감히 나의 소듕한 조디를 넘보다니!”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 스포일러

게임 최후반부에서야 에이든의 존재가 밝혀진다. 그는 다름 아닌 조디의 쌍둥이 형제였던 것이다. 에이든은 사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당시 죽었으며, 이후 조디에게 깃들게 된다. 에이든은 자신의 남매인 조디를 여러 방면으로 돕는다.

조디… 그 자식은 앙대…! [비욘드 투 소울즈 게임 장면]

에이든은 왕따를 당하고 갇힌 조디를 자신의 능력을 통해 풀어주는가 하면,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 그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이 영체라는 ‘강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빙의를 하거나, 날아드는 총알을 막아주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조디를 아끼게 된 게이머들은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그녀를 보호하려 드는데, 재밌는 점은 이런 게이머들의 여러 선택을 통계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 클레멘타인 (워킹데드 시리즈)

귀요미 최고봉 클레멘타인! [워킹데드 게임 장면]

우리에게 인기 코믹스 기반의 미국 드라마로 잘 알려져 있는 워킹데드는 그야말로 ‘좀비 붐’을 재차 불러일으켰다. 워낙 큰 인기 덕분에 게임으로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특히 이 게임은 그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이 게임은 우리가 흔히 ‘좀비가 나오는 게임’이라고 했을 때 쉽게 떠올릴 법한 ‘슈팅’이나 ‘액션’ 장르는 아니다. 대화를 통해 퍼즐을 풀고, 선택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는 방식의 어드벤쳐 게임이다.

수많은 전자 아빠들을 양산해낸 꼬마 귀요미 클레멘타인의 모습. [워킹데드 게임 장면]

게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리 에버렛’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아내의 불륜 현장에서 범죄를 저질러 수감되던 참에 좀비 사태에 휘말려 어린 소녀 ‘클레멘타인’을 만나게 된다. 리는 클레멘타인과 함께하면서 그녀를 보호하고, 흡사 부녀지간 같은 관계가 된다.

사실 시리즈 초반 클레멘타인은 어린 꼬마아이이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어주지는 못하고, 수동적인 피보호자 그 자체로 비춰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우의 호연, 그리고 천진난만한 행동과 착한 심성 때문에 리에게 몰입하는 게이머들은 클레멘타인을 엄청나게 귀여워한다!

게임 속에서 우리의 분신으로 활약하는 '리 에버렛'의 모습. [워킹데드 게임 장면]

이 게임 역시 상기한 ‘비욘드 투 소울즈’와 마찬가지로, 다른 게이머들의 선택을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대체로, 주인공(게이머)이 취하는 행동 대부분은 클레멘타인을 지키거나 그녀를 위한 선택인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클레멘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인물은 선택이 가능한 한, 거의 대부분의 게이머에게 끔살당한다… 이것으로 게이머들이 얼마나 클레멘타인을 아끼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스포일러

게임 워킹데드는 여느 ‘미드’처럼 시즌제로 출시되고 있다. 그리고, 시즌1의 마지막 에피소드(5번째)에서 우리의 분신인 ‘리 에버렛’은 사망하게 된다. 이후 시즌2, 3에서는 클레멘타인이 점차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게이머들은 리(혹은 우리 자신) 없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대견함과 측은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멋지게 컸구나 우리 딸… (눙물) [워킹데드 게임 장면]

뿐만 아니라, 시즌 2나 3에서 클레멘타인에게 접근해오는 다른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게이머들 대부분은 마치 딸의 남자친구라도 대하는 듯 그들을 경계한다. 그러면서 클레멘타인이 ‘리’를 그리워하는 장면이라도 등장하면 감동받는다.

 

■ 시리 (더 위쳐3)

우리(게롤트)의 수양딸 시리 공주님. 진짜로 공주다. [더 위쳐3 게임 장면]

지금까지 소개한 우리의 ‘전자 딸내미’들이 대체로 어리고 유약한 모습을 지녔거나, 혹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지켜봐왔기에 아끼고 보호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면, 시리는 그녀들과 약간 맥락이 다르다. 더 위쳐3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리는 이미 성장해있고, 우리(게이머)가 보호해줄 필요조차 없을 만큼 유능하다.

시리는 주인공 ‘게롤트’의 수양딸로, 둘은 원작 소설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긴 인연을 이어온 사이다. 더 위쳐3에서 주인공 게롤트는 실종된 시리를 찾아내야 하는데, 이것이 곧 스토리의 큰 줄기다.

주인공(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그녀의 운명도 달라진다. [더 위쳐 게임 장면]

그러나 시리는 자신의 혈통으로 인해 가는 곳마다 위험한 존재들의 추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그녀가 머무르는 곳은 곧 쑥대밭이 된다. 그녀도 이런 의도치 않은 민폐를 방지하기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추적의 명수’로 이름난 주인공 게롤트가 그녀를 찾아나서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게임은 상당히 광활한 오픈월드로 구성돼 있는데, 대부분의 장소를 거쳐야만 게임 중반부에 비로소 그녀를 찾게 된다.

사실 이 시리즈를 본편(더 위쳐3)으로 접한 게이머들은 시리의 아름다운 미모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주인공 게롤트가 그녀를 딸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 순간 상당한 아쉬움을 느낀다고 한다. 시리와 연인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게이머들은 그 뒤로도 시리를 순전히 ‘딸’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아끼게 된다.

 

※ 스포일러

시리는 사실 설정상 ‘민폐 캐릭터’로 지목받기 딱 좋다. 악당들로부터 항상 추격을 받고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을 제대로 통재하지 못한다는 점, 또, 자신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문제에 휘말리게 한다는 점 등 때문이다.

작중 최종병기급으로 묘사되는 그녀의 언리미티드 빠와. [더 위쳐3 게임 장면]

또, 왈가닥에 호기심 많고 용감하다는 성격도 설정 상 문제를 일으키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흔히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어요!”라 말하는 여성 캐릭터는 대체로 그 말에 책임지지 못하고 위기에 처한다는 묘사가 허다하기 때문. 그러나 시리는 실제로도 그만큼 강한 힘이 있다. 게임 최후반부에서 그녀의 강력함이 잘 드러난다. 그런 점 때문에 민폐 캐릭터로 등극하는 수모를 겪지는 않았다.

 

■ 게임 속 캐릭터와의 유대

요 공주님은 모래시계 보는 것 외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 장면]

과거 게임들은 대체로 내러티브가 그리 깊지 않았었다. 그래서 남성 게이머(남성 캐릭터)들이 여성 캐릭터를 지키고, 보호하고, 구출하려는 이렇다 할 마땅한 이유도 없는 편이었다. 그저 나라의 공주니까, 구해오면 결혼시켜준다고 하니까, 예쁘니까 등등이 이유였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점차 확대되어감에 따라 그런 천편일률적인 캐릭터 묘사도 차츰 변해가고 있다. ‘섹시한 게임 캐럭터’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툼레이더’ 시리즈의 ‘라라 크로프트’의 변화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시다.

물론 못생겨졌다곤 안 했다. [툼레이더 게임 장면]

이제 우리가 아는 ‘라라’는 비정상적인 흉부에 비효율적인 의상을 입고 무덤을 전전하는 여전사가 아니다. 새롭게 변한 ‘라라’는 게임 속에서 성적 매력을 어필하기보다는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그게 종전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라 많은 팬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현실과 다르기 때문에 더 재밌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현실과 비슷한 점이 많기에 재밌을 때도 많으니까. 현실 속의 사람들은 그렇게 평면적이지 않으니까.

악역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깊은 사정이 있는 캐릭터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 장면]

어쨌거나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참 감사하게도, 요즘 게임 속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런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만나고,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도 게임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렇게 주인공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게임 속의 많은 캐릭터들은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게임 속에서 사망하거나 게임이 끝나고 나면 상실감까지도 느껴지게 한다. 실제로 사람을 잃은 것처럼.

훌러덩 벗고 나온다고 다 인기있는 캐릭터가 되는 건 아니란 말씀! [언챠티드 게임 장면]

매력적인 게임 캐릭터는 그것이 0과 1로 이뤄진 데이터 덩어리, 정해진 스크립트를 읽는 성우의 연기일 뿐이라도 우리에게 하나의 인격체로 느껴진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여러분이 겪어본 이런 ‘스토리텔링의 힘’ 사례에 적합한 캐릭터는 누가 있으신지? 누구라도 좋다. 여러분이 (게임 속)세상 무엇보다도 아꼈던 캐릭터들과의 추억을 들려주셨으면 한다. ‘전자 딸내미’ 뿐 아니라, ‘전자 아들내미’라도 좋다. 또, 뜨거운 우정이나 절절한 사랑을 느껴본 캐릭터도 상관 없다. 교양공감팀과 함께, 그들과의 추억을 공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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