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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교양공감] 우리만 아는 그때 그 시절 팬 문화


[공감신문 교양공감] 2015년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S.E.S가 컴백을 한 데 이어 1세대 아이돌들이 속속 컴백길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젝스키스가 15년 만에, 올해는 NRG가 12년 만에 화려하게 돌아왔다. 

12년 만에 컴백한 NRG오빠들! (와아) [ NRG 공식 트위터 (@NRG_official_) ]

한 때 학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진성 ‘빠순이’로 이름을 날렸던 기자로서는 그들의 컴백이 반갑기 그지없다. 아마 신인 시절 구호를 외치며 인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 여러분이라면 다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특히나 TV를 통해 나오는 1세대 아이돌들의 과거 활약상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시기 무대 아래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우리의 모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밤을 새서라도 가야 했던 콘서트, 수집상처럼 사 모으던 틴에이저잡지와 늘어질 때까지 돌려듣던 카세트테이프 등등. 아마 기자 또래의 분들 중 비슷한 추억쯤 마음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빠들의 무대영상을 녹화해둔 비디오테이프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 pexels / CC0 Creative Commons ]

그래서 오늘 교양공감 포스트에서는 그들이 가장 빛나던 2000년대 초, 가장 열렬한 사랑에 빠졌던 우리를 추억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포스트를 보는 동안만큼은 철없고 서투르던 그때의 추억에 한껏 젖어도 괜찮을 것이다. 

※ 이번 포스트에서는 '빠순이'라는 다소 비하의 소지가 있는 단어를 귀엽게 순화해 '순이'라는 표현으로 우리를 자칭하고자 한다. 그때의 우린 귀여웠으니까..! 


■ 굿즈의 시초 
*굿즈(Goods): 본래는 ‘상품’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등장인물 혹은 배우, 가수 등 특정 유명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만들어진 상품을 일컫는 말로 주로 쓰인다. 

인기 아이돌 EXO의 공식 굿즈 [ 11번가 판매사이트 캡처 ]

굿즈라는 말이 팬덤 용어로 통용되기 이전부터, 오빠들을 일상 곳곳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순이들의 욕구는 굿즈의 역사를 끊임없이 개척해왔다. 요즘의 아이돌 굿즈라 하면 그 기성품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하지만, 그 시절 굿즈는 퀄리티보다는 정성에 더 큰 비중이 있다고 하겠다.

하드보드지 필통. 어떻게 꾸미느냐는 순이의 자유다. [ 인스티즈 캡처 ]

그 시절 가장 핫한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직접 오리고 붙여서 만든 ‘하드보드지 필통’. 그냥 보기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래봬도 과학적인(!) 설계를 거쳐 고도의 신중함(!)으로 만들어지는 굿즈다. 만드는 방법은 하드보드지를 잘라서 필통의 형태로 조립한 다음, 그 위에 오빠들의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준다. 사진만 붙이면 오빠들의 얼굴에 때가 탈 수도 있기 때문에 투명시트지로 코팅까지 해줘야 완성! 필통 안에 색색깔의 펜들을 담아주는 것은 기본이다. 

네임택은 2세대 아이돌 팬덤에서 더욱 활발하게 사용됐다. [ 다음카페 ‘여성시대’ 캡처 ]

이후 온라인 카페인 ‘장미나라의 태그교실’로 포토샵이 점차 대중화되면서 굿즈계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포토샵을 이용해 만든 ‘네임택’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이 네임택은 어디에 쓰냐에 따라서 종류도 다양하다. 교과서의 이름표로 쓸 수도 있고 볼펜과 연필마다 띠지처럼 두를 수도 있다. 오빠들의 얼굴을 잘 보이게 넣은 다음 [ ○○오빠를 살앙하는 △△의 연필입니다♡ ] 정도의 다소 오글거리는 멘트를 넣어주는 것이 우리의 ‘멋’이었다. 


■ ‘공방’ 필수품!
*공방: 공개방송의 줄임말. 아이돌이 서는 콘서트나 음악방송 등의 무대를 아울러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1997’에서는 극중 주인공이자 H.O.T.의 열혈 팬인 성시원(정은지 분)이 비 오는 날 팬클럽 공식 우비를 입고 나간 아빠를 쫓아나가, 입으면 안 된다고 엉엉 우는 에피소드를 실은 적 있다. 순이들에게 우비란 아빠에게도 양보할 수 없을 만큼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고 저 귀한 걸... [ tvN 드라마 ‘응답하라1997’ 캡처 ]

당시 팬클럽에 가입하면 제공됐던 우비와 풍선은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나름 ‘기수’별로 그 디자인이 다르게 출시됐다. 그렇기 때문에 필수 응원도구이면서도 내 팬질의 역사까지 증명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한여름에는 우비 안으로 땀이 홍수처럼 흐를지언정, 절대 후드모자와 목까지 채운 단추를 포기해서는 안 됐었다. 

드림콘서트처럼 대규모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우비 위에 현수막을 망토처럼 메고 다니는 순이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비를 입고 현수막을 흔드는 것은 ‘우리 팬덤이 오늘 이렇게나 많이 왔다’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장 전이라 할지라도 미리 착용(?)하고 있어야 했다. 

다 순수한 여학생들이었다. 진짜다. [ 네이버 블로그 ‘제이와이스토리’ ]

오빠들의 얼굴로 가득 채워진 현수막 망토를 두르고 다른 순이들에게 “안녕하세요, ○○파입니다!”를 외치며 명함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파, △△파… 얼핏 들으면 조폭 같아 보이지만, 팬덤 내에서 그룹을 형성한 순이들끼리 만들어낸 사조직(?)의 이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그 시절 나름의 멋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참, 오빠들의 스케줄은 각 공식사서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공식 팬클럽 회장들이 해당 가수들의 일정 등의 정보를 미리 녹음해놓고, 순이들이 해당 번호에 전화를 걸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인사말 정도는 가수들이 직접 녹음을 해놓기도 했다.) 전날 사서함을 미리 확인하지 않고 갔다가 오빠들의 불참소식을 공방 현장에서야 알게 되는 불상사도 종종 일어나곤 했다. 

언제 오빠들의 일정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밖에서도 한번씩 공중전화를 이용해 사서함을 확인해줘야 한다. [ 나무위키 ]


■ 기념일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지하철역에 걸린 아이돌 생일 축하 광고 [ 나인뮤지스 경리 인스타그램 ]

예나 지금이나 아이돌 팬들에게 가장 큰 기념일은 역시 데뷔일과 오빠들의 생일일 것이다. 사랑 받아 마땅한 우리 오빠들이 특별한 날,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큰 축하를 받았으면 하는 것은 모든 순이들이 같은 마음일 터. 요즘 아이돌 팬들은 지하철역 광고나 카페 진동벨 영상 등으로 스케일 큰 축하 메시지를 보내곤 하지만 그 시절 우리의 축하는, 지금에 비하면 다소 소박했었다. 

가령 4월10일이 생일인 오빠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전날 미리 뽑아둔 A4 크기의 벽보를 당일 아침부터 거리마다 붙인다. 벽보는 통상 “4월10일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날입니다” 로 시작해 “이 벽보는 4월11일 아침 ○○팬이 직접 수거합니다. 떼지 말아주세요” 로 끝난다. 반드시 팬덤 풍선색에 맞는 색지에 뽑아서 붙이는 것은 기본이다. 

정작 기자 본인은 한번도 사탕을 받아본 적 없다는 점.. [ wikimedia / CC0 Creative Commons ]

벽보로 끝나지 않는다. 아마 그 당시 누군가의 순이가 아니었더라도 기억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사탕 돌리기’다. 생일이 4월10일이라 치면, 각 반마다 4번과 10번의 학우들에게 풍선 색과 동일한 색깔의 사탕을 돌리는 것이다. 이때 “오늘 우리 ○○오빠 생일이야. 같이 축하해줘!” 정도의 멘트는 붙여줘야 인지상정. 사탕을 받은 학우는 고마워 대신, “응! 축하해”라고 화답해줘야 준 사람으로서 보람이 있는 것이다. 


■ 추억은 방울방울

1세대 아이돌들이 컴백하는 걸 보고 있자면, 마냥 들뜬 마음이다가도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열애설 루머만 돌아도 눈물 콧물 쏙 빼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키워주십쇼!”를 외치던 H.O.T.의 리더 문희준은 한 아이의 아빠가 됐고, 요정인 줄로만 알았던 S.E.S는 각자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S.E.S 세 멤버가 모두 참여한 바다의 웨딩화보 [ 엘르 코리아 홈페이지 ]

오빠밖에 모르는 여학생이었던 순이들 역시 이제는 어엿한 성인으로 각자의 삶의 영역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것이 변한 지금에도 우리가 기억하는 언니, 오빠들의 모습은 10대 후반, 20대 초반 그 언저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렇게 변함없이 빛나기 때문 아닐까.

지난 9월 열린 젝스키스의 20주년 콘서트 [ YG엔터테인먼트 ]

비록 그때처럼 열렬한 마음은 아니지만, 다시 무대에 오른 그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본다. 그 시절처럼 베일 듯한 칼군무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아도 좋다. 지금도, 아니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들은 우리 맘속에서 멋진 우상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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