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다.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열정을 해방하라. 굶주림은 참아도 권태는 못 참는다.’ - <프랑스 68혁명>

 

[공감신문] 권태로움의 연속이다. 이상의 소설<권태>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현대인들은 자의식 과잉으로 인하여 권태로움을 느낄 수 없는 계급이라고. 권태로움을 느껴야 내면을 들여다볼 텐데 말이다. 나는 현대인치고 무지 권태롭다. 아니, 사실은 그립다 혹은 셈이 난다. 낭만이 배제되어 버린 지금이 싫어 그런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낭만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게 셈이나 배가 아프다. 그래서 그 시절 영화를 보고, 또 보아 내 것 추억하고 또 추억한다.

[<친구의 초상> 이상의 유년시절 학교 동창인 화가 구본웅이 1935년 그렸다.]

매일 낭만적 순간을 꿈꾼다. 요즘 그리는 장면은 이러하다. 어젯밤에도 그랬고, 난 혼자서 극장을 자주 찾는 편이다. 편안한 복장으로 너무 늦지 않은 시간, 그러니까 영화가 끝나면 한 10시 반 11시나 될 것 같을 때에 구석 자리에서 혼자 영화를 본다.

너무 멀찍이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눈에 띄는 미남은 아니지만 계속 신경 쓰이는 한 남자가 앉는다. 영화는 너무 재밌지도, 너무 지루하지도 않다. 감독이 관객을 웃기려고 넣은 대사는 사실 실패한 것이라 주변의 반응은 냉담한데, 나와 저 남자만 피식 웃는다. 유머 코드가 맞아 떨어져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는데 우연히 계단에서 어색하게 얼굴을 마주친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발걸음도 느리게 떨어진다. 나 혹은 그가 ‘혹시 시간이 되면 맥주 한잔할 수 있겠냐’ 묻는다. 근처에 처음 가보는 맥주 집에서 정말 한두 잔만 마신다. 좋은 친구 혹은 썸 타는 사이가 된다. 이것이 요즘 바라는 그림인데, 도통 이루어진 적이 없다.

즐길 거리 투성이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가능한 것 같다만, 이런 소소한 떨림이나 낭만은 없다. 섹스는 있더라도 거기에 낭만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낭만 혹은 수치심이 결합된 섹스만이 섹시하다. 그런데 그런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섹스가 지나간 자리란, 결코 야하지 않아서 추억도 남기지 않는다.

[프랑스 68혁명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몽상가들> 중에서]

故마광수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2014년에도 출간된 것이니 비교적 최근 작품이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하나도 안 야하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적극 공감한다. 우린 하나도 안 야하다. 그는 혈기 왕성한 나이에 7080시대를 살았다. 그런 그가 우리의 섹시함에 공감해줄리 만무하지. 우리는 그저 우리치고, 야하고 섹시한 거다.

어쩌면 우리는 그 당시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많이 섹스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섹스는 단순히 몸을 섞는 게 전부가 아니다. 섹스는 머리로 하는 거다. 새디즘과 마조히즘, 상황극, 페티쉬 등 사람들의 다양한 성적 취향만 보더라도 겨우 살을 마주치는 대에 만족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지 않나. 심지어 여자 복상사 중 가장 큰 원인은 뇌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 섹스 말고, 기억에 남는 섹스는 언제였나? 이런 질문에 서글퍼지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거다.

요즘 아이들에게 성 조숙증이 유행이다. 평균적으로 첫 성관계를 갖게 되는 나이도 어려졌다. 그런데 왜 우리가 야하지 않느냐고?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많은 시청각 교육(?)을 통하여 이성의 몸에 대한 호기심은 그다지 크지 않다. ‘저 사람은 어떨까?’이런 호기심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생물학적인 호기심을 말한다. 그건 이미 어릴 때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대신 궁금한 건, 상대방의 ‘심리’다. 오히려 마음은 읽지 못한다. 쟤는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쟤가 나를 더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쟤는 믿을 만한 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반대로 ‘야한’시대에는 어떠했나? 그들은 많지 않은 성경험 때문인지 심리보다는 생물학적인 ‘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오히려 그들에게 심리적 기 싸움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을지 모른다. 낭만적인 시대였으므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은 전 세계에 그런 훈풍을 불러일으켰다. 기나 긴 2차 세계대전, 이후 분위기에 진절머리가 난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원했다. 평화와 사랑을 갈망했다. 열정을 해방하라, 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다, 굶주림은 참아도 권태는 못 참는다고 외쳤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혁명적으로 사랑했다. 프리섹스 열풍이 불었다. 이윽고 이 바람은 우리나라까지 불어 닥친다. 광복 이후의 끊임없는 독재정권 역시 이들의 혈기왕성함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금지를 금지하라!’ 한반도에도 혁명적인 낭만의 훈풍이 불어 닥친 것이다.

[68혁명 이후의 미국]

그들은 노래했다. 7,80년대 <대학가요제>는 노래하는 시인들의 향연이었다. 77년도<나 어떡해>, 78년도<그때 그 사람>, 80년도<불놀이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82년도<어쩌다 마주친 그대>... 당시 수상했던 곡들은 지금도 숱하게 불리는 전설적인 곡들이다.

통금이 있던 시절, 오히려 은밀하고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다. 원나잇 스탠드 대신 프리섹스가 있었다. 그들은 마치 그 시대가 마지막인 것처럼 하얗게 불태울 줄 알았다. 지금처럼 계산적이지 않았다.

 

“숨겨줘, 재워줘, 먹여줘 ... 몸 줘. 왜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

“그때는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한 시대였어...” (영화 <오래된 정원>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엔 엄청난 순수함이 있었다. 아니, 순수해서 그럴 수 있었다. 80년도 대학가요제 수상곡인 이범용, 한명훈의 <꿈의 대화> 가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용한 호숫가에 아무도 없는 곳에 우리의 나무집을 둘이서 짓는다 /

흰 눈이 온 세상을 깨끗이 덮으면 작은 불 피워 놓고 사랑을 하리라 /

따뜻이 서로의 빈 곳을 채우리 /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

서러움도 없더라 너와 나의 눈빛엔.

 

저런 노래를 불러주는 이를 누가 진심을 배제하고 바라볼 수 있겠는가. 여기에 모두가 동했다는 것이, 그 시대가 얼마나 낭만적이었는지 말해준다. 요즘 젊은이들이 모두 원나잇을 하는 게 아니듯, 당시에도 모두가 프리섹스를 한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낭만적 분위기가 있었다는 거다.

마광수는 대학 시절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더랬다. 그가 첫사랑 이후 처음 좋아했던 여자랬나? 아무튼 그 여자는 연세대를 다니는 마광수에게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나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여자 마음에 대해 풋내기인 그는, 학교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일쑤였단다. 그 유식함에 정이 떨어지는 지도 모르고!

그 시대가 셈나고 탐나고 그립다. 요즘에도 그런 유식함이 자랑거리가 되나? 아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유식함보다는 돈이 앞선다. 남자들은 돈을 자랑하는 데에 익숙하고, 여자들도 그런 허풍을 듣는 데에 익숙하다.

영화<말죽거리 잔혹사>를 수도 없이 보았다. 교문에서 선도부의 제지를 받으며 등교하던 학생들 사이로, 이사장의 검은 세단이 들어올 때 영화의 타이틀이 뜬다. 철저히 유신 정권 시대를 반영한 영화다.

거기 청춘들은 뜨겁게 산다. 영화<몽상가들>의 등장인물들처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또 어느 찬란한 ‘한 순간’을 위하여 살아간다. 어떤 여자에게 우산을 씌워주기 위하여, 기차 여행가서 노래를 불러주기 위하여, 옥상에서의 결투- 대한민국 학교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또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가 찾아올지 모르는 어느 밤을 위하여 끊임없이 떡볶이를 볶는 아줌마까지.

정말 이 영화를 하도 많이 보아서 이젠 내 추억이 된 기분이라, 보고 또 보아도 마음이 아프다. 그 시절엔 그랬지, 라면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에서]

많은 것이 허락된 오늘 날을 살고 있는 난,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낭만적 시대에 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평생을 셈이 나서 배 아파하기나 하겠지. 리플리처럼 어떠한 갈망 때문에 내 것이 아닌 누군가의 추억을 내 것 삼아 착각하며 살아가겠지. 그럴 바엔 이러한 낭만적 욕구를 져버려야 하나? 욕구불만으로 가득 쌓여 그 어떤 자극도 자극 같지 아니한 나는 술이나 퍼마시며, 마치 지난 사랑을 떠올리듯 옛날 음악을 켜야지. 쥐뿔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욕구불만이 이렇게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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