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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살리에리를 꿈꾸다

‘황제폐하의 관심은 오직 살리에리 뿐이에요.’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 중에서. 1781년 12월)

 

[공감신문] 살리에리, 살리에리 증후군, 열등감의 아이콘, 2인자, 모차르트의 라이벌 아니, 뭘 해도 그를 이길 수 없는 남자. 우리가 알고 있던 그는 이러했다. 중학교였나,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모차르트에 대하여 배우며 영화<아마데우스>(Amadeus, 1984)를 봤었다. 교과서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살리에리라는 음악가에 대한 정보는 영화에서 본 게 전부였다.

사실 그 영화는 위대한 천재 음악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생애를 그려냈지만, 등장인물로선 살리에리의 감정 선을 더욱 복합적이며 인상 깊게 드러냈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그 배우가 연기하던 극중 살리에리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영화<아마데우스> 중에서

사람들은 ‘살리에리 증후군[Salieri syndrome]’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주변에 뛰어난 사람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끼는 증상을 이렇게 부른다. 그렇게 살리에리는 우리 기억 속에 그저, 평생가도 모차르트를 이기지 못했던 사람이며 심지어는 모차르트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 대하여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영화 속 이야기일 뿐.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년 8월 18일 - 1825년 5월 7일)는 위대한 음악가였다. 단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에 ‘견줄만한’ 정도가 아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다.

고급스러운 연회장에, 불면증에, 심신 안정에, 치매 예방에, 심지어 태교에 좋은 건 단지 모차르트뿐만이 아니다. 살리에리의 음악도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는 왜곡된 이야기에 가려진 그의 음악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당연히 모차르트보다 못할 거라 생각하는데, 이건 ‘예술’이기에 무엇이 더 훌륭하다고 하기 어렵다. 개인 취향이 모두 다르니까. 어쨌든 살리에리가 사랑받는 예술가였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난 모차르트의 음악이 조금 더 내 취향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하여 롤모델을 꼽으라면 난, 살리에리다.

=<살리에르의 초상>(1815), Joseph Willibrord Mähler

살리에리는 ‘타고났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두각을 나타내어, 10대에 빈 궁정으로 초청을 받는다. 그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가수였다! 또 탁월한 선생님이었기에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심지어 모차르트의 아들 역시 그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더라면, 과연 모차르트가 아들을 그에게 맡길 수 있었을까? 그들의 우정이든 증오든 뭐든, 여전히 증명된 건 없다.

이렇게 젊은 시절부터 성공가도를 달리던 살리에리의 재능은 겨우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오페라가 성행이었으므로 그 역시도 오페라를 쓰고 감독을 맡았다. 엄청난 건 그가 오페라를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3개 국어로 썼었다는 사실! 사망 직전까지 궁정 작곡가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대중은 물론이요, 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그의 명성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살리에리의 생애에 대해서는 사실 모차르트만큼 알려진 게 많지 않다. 그가 쓴 오페라들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평가들에게 인정받았으며 그 중 <Les Danaïdes>(The Danaids)는 정치적인 살인 등을 묘사하여 이후 파리에서 40년 넘게 무대에 올려 졌었다. 당시 시대의 정치 상황이 바뀌며 지위에 위협을 받기도 했는데, 이때에도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품은 물론이요 학생들을 위한 교육법에 공헌하였고, 순수한 음악적 작품 활동도 활발히 했다.

=오페라<Les Danaïdes>의 포스터. 1784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더라면 아마도 이렇게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지 못했을 것이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 대상을 증오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 대상의 삶을 따라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노선은 정말 달라 보이지 않나. 얼마 전엔 둘이서 함께 작업했던 칸타타의 악보가 230년 만에 발굴되기도 했다.

= 두 사람이 함께 작업했던 칸타타 <오필리어의 건강을 위하여> 악보, 1785

두 가지 행보가 있다면, 난 만능 엔터테이너인 살리에리의 행보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만능’까지는 아니지만 이것저것 호기심 많은 나에겐, 살리에리의 삶이 더욱 계절에 맞는 옷 같은 느낌이다.

사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살리에리야 말로 시스템을 파악할 줄 아는 예술가가 아니었나 싶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황제폐하의 관심은 오직 살리에리 뿐’이라고도 했다. 살리에리가 10대에 궁정 초청을 받은 건 탁월한 재능 덕분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교육자이자 가수, 감독, 그리고 궁정의 임원으로서 자리를 지킨 건,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알았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예술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분야의 시장에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자신이 고용된 시장 구조 속에서 ‘왜 내가 필요한 가’ 파악하는 건 18세기 빈에서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엔 거의 필수적이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시장’에 들어올 필요가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알아야한다. 나의 노동 가치를 돈과 교환하려면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된다면 그 쪽에서 타협해 주겠지만!)

사람마다 성향차이가 있겠으나- 어떤 창조적인 작업을 요구하는 직업군에, 시스템을 파악하려 들지 않는 이들이 꽤 많다. 그러다보니 환경이나 ‘그 바닥 탓’으로 이어지기 쉽다. 물론 그 시장이 몹시 불합리하거나, 심지어는 비인간적인 경우도 비일비재하지만.

감히 현대적 인물이라 표현하고 싶은, 살리에리를 기억하자.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미는 ‘우월감과 열등감’, 질투심이 아니다. 원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뜨겁게 사는 것, 시스템과 ‘밀당’을 하는 것, 예민하게 세상에 반응하는 것! 그게 아닐는지.

=영화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 역시 수세기를 넘어 길이길이 남을 위대한 영화다. 하지만 아마 내가 살리에리였다면 무덤을 박차고 나와서는 밤마다 그 감독의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싶었을 것 같다. 왜? 상상력이 마구마구 가미된 이야기로, 하필 끝내주게 잘 만들어놔서는 약 30년이 지난 지금에도‘꼭 봐야할 세기에 명작’에 꼽히고 있지 않나. 그러니 살리에리 업적에 반의반에 반도 못 쫓아가던, 전 세계 수많은 나 같은 고딩이 그를 ‘2인자’라 치부하고 있었지...! 앞으로도 대부분 그럴 테고.

오늘은 살리에리의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써내려갔다. 한글로 된 살리에리의 자료들이 많지 않아서 영어로 된 것들을 보느라 평소보다 오래 걸렸나보다. 어머, 완전 집중해서 시간이 이렇게 된 지도 몰랐네? 이것 봐, 모차르트 음악만 집중력이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살리에리 음악 역시 집중력에 좋다. 그 뿐인가? 심신 안정에도, 불면증에도, 치매 예방에도, 물론 태교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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