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결승서 동전 던지기로 진 격, 부조리하고 불공정하다"

현재 영국에 위치한 'EMA(유럽 의약품청)'의 유치를 위해 노력했던 이탈리아 밀라노가 '제비뽑기' 방식으로 유치에 실패한 것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웹사이트]

[공감신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게, EU 산하 기관의 유치는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기구들을 자국에 유치할 경우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부수적인 경제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에 있는 유럽 은행감독청(EBA)과 유럽 의약품청(EMA)은 오는 2019년 이전이 결정돼 있다. 이 기구들의 유치국을 결정하기 위해 20일 벨기에 브뤼셀의 EU본부에서 27개 회원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투표가 열렸고, EMA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EBA는 프랑스 파리에 각각 이전이 결정됐다. 

그러나 치열한 접전 끝에 EMA 유치를 네덜란드에 놓친 이탈리아가 유치 도시 선정 과정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는 회원국들의 여러 후보 도시 중 3순위까지 정해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1차 투표에서 총 25점을 획득하면서 선두를 차지했다. 이때 암스테르담과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각각 20점을,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는 15점을,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13점을 얻으며 밀라노에 뒤쳐져 있었다. 

이날 EMA 유치에 고배를 마신 직후 주세페 살라(오른쪽) 이탈리아 밀라노 시장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후 상위 3개 후보 도시들을 대상으로 회원국들이 각 1표씩을 던지는 2차 투표에서도 밀라노는 12표를 획득, 암스테르담(9표)과 코펜하겐(5표)을 따돌리고 1위를 유지했다. 연이은 1위 수성에 이탈리아는 내심 최종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후보가 둘(밀라노·암스테르담)로 좁혀진 결선 투표에서는 슬로바키아가 기권표를 행사하면서 13표로 동률을 이뤄 승부를 내지 못했고, 제비뽑기 방식으로 최종 선정이 진행됐다. EU 순회의장국인 에스토니아 대표가 선택한 봉투에는 암스테르담의 이름이 적혀있었던 것.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밀라노와 EMA 유치를 위해 노력해온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말하면서도 "빈틈없는 유치 노력이 제비뽑기에 의해 패배하다니 어찌 이런 불운이 있을 수 있느냐"고 탄식했다. 

밀라노는 영국의 EU탈퇴가 결정된 직후인 작년 여름부터 EMA 유치를 위해 민관이 합심해 총력전을 펼쳐왔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유치가 실패로 돌아가자 각계에서는 선정 방식에 대한 거센 비판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산드로 고치 유럽 담당 부처 차관은 선정 결과에 대해 "제비뽑기로 진 것은 쓴맛을 남길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마치 축구 결승전에서 동전 던지기로 패한 격"이라 평가했다. 

유치 후보 당사자인 밀라노의 주세페 살라 시장도 1, 2차 투표에서 최고점을 얻었음에도 최종적으로 제비뽑기 방식에 패배한 것에 문제가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남겼다. 그는 "추첨으로 승패가 갈리는 것은 정말 부조리한 일"이라면서, "마지막에 정치적 협상으로 유치 도시를 정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라 부연했다.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주 로베르토 마로니 주지사는 "제비뽑기로 소재지를 결정한 것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유럽의 전형적인 단면을 보여준 예"라 비판하면서 "밀라노는 정말 준비된 도시였는데 유감스럽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영국의 EU 탈퇴로 이전이 결정된 EMA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유치하게 됐다. EMA 유치는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부수적인 경제 효과를 불러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EMA 웹사이트 캡쳐]

또, 반(反) EU 성향의 이탈리아 극우정당 북부동맹(LN)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수 천 개의 일자리와 20억 유로의 경제 효과가 결부돼 있는 선택이 이뤄진 것은 EU가 얼마나 어리석은 방식으로 굴러가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 맹비난하면서 "이탈리아가 EU에 내는 연간 170억 유로의 분담금을 재협상하는 것이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 발언했다. 

이탈리아 소상공인 연합체 '콘프코메르치오'의 카를로 산갈리 회장도 "제비뽑기로 EMA 소재지를 정한 것은 부조리하고, 불공정하다"면서 비판 발언에 동참했다. 

이날 이탈리아 언론들은 2차 투표에서 코펜하겐이 얻었던 표가 3차 투표에서는 대부분 암스테르담으로 향했고, 믿었던 스페인 마저 암스테르담에 표를 행사한 것이 패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EMA는 EU회원국들의 의약품 평가 및 감독, 신약 승인 등을 담당한다. 이 기구에는 직원이 약 900명에 달하는데다, 연간 3만여 명의 전문가가 방문하기 때문에 유치에 따른 경제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이번 EMA유치에는 EU 회원국 내 총 19개 도시가 유치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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