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인생에서는 몇 개 되지 않는 세부 이정표마저 흐릿하게 보여 확실하게 기억할 수 없다.’

/ <에릭 호퍼, <인간의 조건> 중에서

[공감신문]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종영된 지 꽤 되었으나 여운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작품이 남긴 많은 유행어나 대사들은 오랜 시간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극중 ‘성나정’과 ‘쓰레기’ 두 사람을 일컬어 ‘나레기’ 커플이라 불렀다. 방영 내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과 응원을 받았던 커플이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이 ‘나레기’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로 잘 쓰인다. ‘나’+‘쓰레기’의 합성어다. 내가 쓰레기라는 신조어다.

사진=Tim Noble and Sue Webster,  2006

이 단어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면 현실적으로 쓰인 예시를 볼 수 있다. ‘오늘도 나레기는 작심삼일이다’ ‘나레기 다이어트 폭망’ ‘시험이 코 앞 인데 게임하는 나레기’... 자기 행동에 대한 반성이 꽤나 과격하다. 차라리 이뿐이면 그나마 괜찮을(?)텐데, 나중에 가서는 반성도 아닌 글들을 보게 된다. 그저 ‘난 나레기이기 때문에-’라고 스스로를 치부해버린다. 반성이 아니다. 그렇게 태어난 인간이며 계속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이야기한다.

이런 신조어를 쓰는 이들 가운데 어린 세대들이 많다.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으로 똘망똘망 열정이 뭉쳐있어야 할 나이에 벌써부터 포기의 기운이 가득한 것이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는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 인생 전체를 포기한 듯한 ‘절대 포기자’의 모습이 다 되어간다.

나는 이런 모습을 겨우 인터넷에서만 본 게 아니다. 가끔 중, 고등학교에 동아리 특별 활동 등을 도와주러 갈 때가 있다. 요즘 고등학생 친구들과는 10살 정도 차이가 난다. 내가 그 나이 때에 우리 반에도 포기의 기운이 역력한 친구들이 꽤 있었다. 하긴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게 낫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전부’, ‘대학은 꼭 나와야지’라는 건 정말 어른들 세대의 이야기다. 원치 않는 전공으로 대학을 가야했던 친구들은 대학 정도는 포기하고 그 이후에 다른 계획을 세우고자 했다. 아예 무기력한 기운이 만연해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교실을 다니다보면 이전보다 더욱 무기력해진 게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조금 소외된 지역 학교 교실엔 더욱 그런 차분한 기운이 있다. 10대 친구들보다 거의 서른에 가까운 내가 더 삶에 훨씬 들뜬 기분이다.

나는 왜 대학에 가려고 했었나? 생각해보면 나는 원하는 전공으로 대학을 갔다. 즉,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하여 꿈을 찾아 간 것이었다. 물론 중간에 꿈이 바뀌어 그 전공을 써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전공과 다른 일을 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남들 다 가니까, 가는 거였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하여 대학엘 간다. 대학에서 인맥을 만들려고? 아니다. 사회에 나와서 ‘전공 뭐하셨어요?’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혹은 20대 초반 이야기를 할 때에 ‘당신은 무얼 했는지’ 할 때 할 이야기를 만들려고 대학엘 간다. 남들이 대학 이야기를 할 때 공감하려고 대학엘 가는 것 같다. 캠퍼스의 낭만을 뜨겁게 누리거나 학구열에 불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이럴 거라, 감히 추측해본다. 

사진=영화 <킬 유어 달링>중에서

인생은 정말 많이 변한다. 앞으로 장차 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내가 고등학교 때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우리의 미니홈피를 수놓았던 가수 박진영의 명언이 있었다. 원더걸스의 전성기 시절, 그는 우리에게 가장 성공한 한국인으로 보였다. 그가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부분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 20살 여러분들은 모두 합격자, 아니면 불합격자의 두 세상 중 하나에 속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승자는 자만하지 말 것이며, 패자는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살에 세상이 둘로 달라지는 것으로 깨달았다면 7~8년 후에는 그게 다시 뒤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시 스무 살을 앞둔 대부분의 수험생에겐 정말 힘이 되었던 이야기였다. 7-8년의 세월은 정말 오지 않을 것처럼 막막해보였다. 언제 오려나, 오긴 오려나 하다 보니 벌써 9년이나 흘렀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 역시 그러시겠지. 그리고 저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하실 거다. 그렇다. 세월은 쏜살같이 흐르고 또 어김없이 7년이 금방 지날 것이다.

당시 승자였던 친구들이 지금도 승자인가? 인생을 승, 패 두 가지로 나누는 건 반대한다만, 결코 그들이 꾸준히 모두 승자였다고 말할 수 없다. 대학을 정말 잘 가서 승승장구를 할 것 같던 친구가 지금은 거의 실직 상태에 있는 경우도 있고, 자괴감에 빠져 있던 친구가 우연히 마지못해 했던 일이 적성에 잘 맞아 지금은 그 분야에 실력자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지금 ‘패자’라고 해서 스스로를 벌써부터 ‘나레기’라고 치부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쓰레기’라고는 할 수 있다. 그건 그냥 인간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철학이다. 우리는 자연 어느 동, 식물보다도 나약하기 때문에 이 만큼 발전하고 부흥할 수 있었다.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나약한 것이 인간의 새끼다. 영화 <향수>에서처럼 낳자마자 하수구에 버려져도 살 수 있는 신생아가 얼마나 될까? 그런 건 정말 허구가 아니라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대부분 인간의 신생아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포유류의 새끼들은 해낼 수 있다. 인간은 불리한 신체조건 때문에 도구를 썼고, 미세한 후각이나 청각이 발달되지 않았었기에 서로 위험을 알려주려고 소통하며 말을 발전시켰다. 

자연을 파괴시키며 악랄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데, 이런 본성을 쓰레기라 부르는 것 역시 한 사람의 철학일지 모른다. 어느 정도의 지식과 인식이 확립된 이후, 우린 느끼게 된다. 자연은 우리를 늙게 만들며 죽음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는 거기에 맞서고자 한다. 어느 관점에서 볼 때에 정말 쓰레기 같을 수 있다.

사진=영화<유스> 중에서

하지만 저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아니 저 스스로의 인생을 ‘쓰레기’ 같다고 말하진 말자는 거다. 겨우 30년도 살지 못한 내가 감히 말하자면, 박진영이 말한 7년보다 요즘은 훨씬 그 주기가 짧아진 느낌이다. 3-4년 정도로 대폭 줄어든 것 같다! 3-4년? 정말 금방 간다. 

영화 <종이달>의 여자 주인공은 대단히 화려한 삶을 누리다가 그것이 허물어졌는데도 대단히 덤덤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화려함이 ‘달’이라면 자신이 누리던 것이 종이로 만든 달이었던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쓰레기’처럼 보인다고? 과연 그럴까? 이건 7년이 아니라 3-4년은 더 지나봐야 알 수 있다. 그게 정말 달인지 종이달인지, 쓰레기인지 아닌 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포리즘적 철학을 펼친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해가 없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바쁜 것은 해롭다’고. 그가 이야기하는 ‘일’이란 어떤 의미 있는 행동을 말할 것이다. 단지 생계유지를 위하여, 혹은 누가 한심하게 볼까봐서 하는 ‘일’하고는 다르다. 그런 것들을 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건 오히려 괜찮다고 하지 않나. 그럴 바에 사색가가 되는 게 나은 것이다. 그러나 정말 아무 의미 없이 ‘돈 때문에’하는 일은 인간에겐 해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렇게 산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더욱 인간적인 취급을 받지 못한다. 주변에서 우리를 ‘쓰레기’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면 우린 스스로의 삶을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허망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중요한 건 ‘패자’로 있던 7년, 아니 3년의 시간 동안 남들이 날 보는 시선을 넘어 나를 지키는 것이다. 

당장의 삶이 고되고 시궁창 같을 수는 있다. 고통의 시간은 더디게만 간다. 오, 그러니 어쩌면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잘된 일이다. 어려운 책을 읽듯 천천히, 곱씹어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린 무언가를 발견할지 모른다. 

‘파란만장한 삶이 가장 쉽게 기억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전환, 성공, 낙담, 뜻밖의 사건, 위기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인생은 이정표로 가득한 인생이다.’

에릭 호퍼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그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10대 때부터 노동자로 살아야했다. 그의 인생 역시 파란만장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겨우 몇 년을 주기로 전환, 성공, 낙담, 사건 등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여기엔 모두 ‘이정표’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공허한 인생에서는 몇 개 되지 않는 세부 이정표마저 흐릿하게 보여 확실하게 기억할 수 없다.’ 

사진=에릭 호퍼 Eric Hoffer, 1902-1983

증오보다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우울한 인생보다 보잘 것 없는 것이 허망하고 허무한 인생이다. 자기 고백을 하자면 난 어릴 적 굉장히 우울한 아이였는데, 그때보다 내 스스로가 무서웠던 것은 20대 중반이었다. 당시 난 내 인생이 너무도 허망해서 삶을 놓아버릴까란 생각도 들었었다. 우울했을 때보다 그런 충동이 강했다. 인생의 무게가 너무도 가볍게 느껴져서 생각보다 쉽게,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떤 잔재도 남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날 사랑했던, 남아있을 이들의 아픔마저 대단지 않은 것으로. 아, 이야말로 시궁창에 쳐 넣어야할 쓰레기 같은 추측이 아닌가. 

인생을 공허하다 느끼지 말자. 차라리 힘들다 소리치고 인생은 왜 이럴까, 지구 망해라! 라고 홧김에 소리를 질러라. ‘자살을 할까 커피를 한잔 할까’같은 쇼킹한 말을 했던 알베르 까뮈를 읽는 게 낫다. 사실 그렇게 허무하게 말을 한 사람이 정말 그런 삶을 살고자 했다면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자 했을까? 글을 쓰고자하는 행위 자체도 열망인 것을.

이정표를 살피자. 천천히 느껴져서 곱씹을 수밖에 없는 이 고단한 삶에는 분명 이정표가 가득하다. 이정표를 볼 줄 아는 법부터 차근히 배우자. 삶을 살아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것을 조금씩 익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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