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떠나라 ...(중략)...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 
그 낯선 곳으로’ [고은詩<낯선 곳>(1992) 중에서]

 

[공감신문]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 그건 아마도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함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엔 긍정적 호기심이 발동하지만, ‘낯선 것’에는 겁을 낸다. 사실 새로운 것은 낯설며, 낯선 것은 새로운데 말이다.

낯선 것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며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여행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휴가 때마다 여행을 계획한다고 한들 적극적이라 말할 수 없다. 지인을 통해 혹은 인터넷에서 본 어느 인상적인 곳에 가야지, 라는 정도가 아니라 그 블로거의 여행지를 베껴내듯 계획하기도 한다. 여기선 꼭 이걸 먹어야하고, 반드시 저기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즉흥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계획적이다. 그래서 어느 여행지에 가면 한국인들만 유독 그렇게 많은 거다.

사진=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 중에서

나는 여행을 퍽 자주 다녀본 사람은 아니다. 요즘은 그래도 종종 틈이 날 때면 혼자서 혹은 친구와 둘이 한 달에 한번 정도 해외나 국내로 짧은 여행을 다니곤 한다. 딱히 계획은 없는 편이다. 대부분 오고가는 비행기 시간과 숙소와의 이동 경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새로움보다는 낯선 것에 흥미가 가는 터라 나에겐 이 방법이 좀 맞는 것 같다. 적극적인 스타일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게 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니까. 

또 하나, 나는 여러 도시를 방문하지 못했다. 한 군데 꽂히면 그 곳을 여러 번 가는 스타일이다. 한 달 넘게 머물러본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에 여러 번 갔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여행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였는데 아마 2주 조금 넘는 시간이었을 거다. 저 저 번달엔 혼자 제주도에서 일주일 넘게 있었고 더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친한 언니의 병문안을 가야해서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여러 도시에 관심을 갖기 보단 간 곳을 또 가는 이유는, 일주일 만에 그 곳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별반 새롭거나 낯설지 않다. 그런데 좀 여러 번 가보면 그제야 여행 같고, 그 때부터 보이더라. 요즘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닌다. 얼마 전 추석 연휴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인천국제공항의 상황을 TV로 보니 정말 아찔했다. 

이젠 해외여행이 그리 어렵거나 비싸지도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떠나기 쉬워졌다. (어떨 때보면 꽤 괜찮은 국내 여행이 훨-씬 돈이 많이 든다.) 영국의 경우는 인구의 6.1%가 관광 산업에 종사한다. 전 세계인들이 모두 여행을 즐기며 밀접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의 어른들이 청년이었던 시절, 그들은 은퇴 후 꿈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자식들 다 대학을 보내고 나면 배우자와 함께 세계 일주를 할 거라고. 그리고 그들은 직장에서 적응해 갈 때쯤 되어, 그들 부모님의 첫 비행기- 그러니까 ‘효도 관광’을 시켜드렸었다. 

정말, 까마득한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건 불과 오래되지 않은 과거다. 대한민국은 OECD회원국이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했으며,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기술력을 가졌지만... IMF로 인하여 경제 위기를 맞아야했고, 이후에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경제 위기와 빈부격차의 심화, 청년들의 실업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000년대 어느 인기 시트콤에서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이 때...’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현재는 ‘장기화’를 넘어 ‘만성화’가 되었고, 청년 실업인구는 40만에 ‘육박’하는 것이 아니라 43만을 넘었으며 총 실업인구는 100만을 넘어섰다. 

단지 이것 때문에라도 청년들은 허탈해질 수도 있다.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아, 미래에 대한 준비를 잘하면 희망이 있을까? 

사진=눈이 가려진 정의의 여신 디케, EBS <지식채널 E> 중에서

작년 가을, 온 국민은 충격에 빠졌었다. 원통하고 슬펐다.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던 부정부패, 그 악취 나는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뜻있는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가까운 광장으로 몰렸다. 누군가는 ‘빨갱이’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폭력적인 시위’라고도 했다. 하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정치색은 중요치 않았다. 

‘폭력적’이라는 시위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도 있었다. 이런 나라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나왔다고 했다. 정의로운 나라, 노력하면 되는 세상에 살게 해주고 싶다고.

우리는 이러한 까닭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현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당장 눈앞에 놓인 것부터 해결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삶 역시도 나의 삶이니 즐겁게 살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이 나라에서, 겨우 이 정도인 나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된 것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욜로(YOLO)’는 사실 오늘만 살자는 뜻은 아니었다. ‘한번 사는 인생이니 남 눈치 보지 말고 나답게 살자’는 게 더 본연의 의미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의 2030에겐 그런 본연의 의미는 중요치 않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유망 직업으로는 건물주가 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사실 우스개가 아닐지도...) 어느 방송에서 손석희 앵커는 은퇴 후, ‘서울에 공기청정카페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관련 기사가 뜨자 10대로 추정되는 여고생들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역시 문과의 마지막은 카페 사장. 과정은 모두 스킵(skip)하고 카페나 차리자.’

우린 영화 <아저씨>처럼 오늘만 보고 산다, 그래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간다. 결혼자금? 저축? 정말 그 돈을 모으면 내 집장만의 꿈이 이루어질까? 그 전에 나죽겠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현상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비행기 요금도 값싼 마당에, 지금이 여행을 떠날 절호의 기회다! 심지어 어릴 때하는 여행은 나중에 하는 여행보다야 훨씬 ‘효율적’이다. 왜? 우선 결혼 이후 아이가 있다고 치자. 아이가 있으면 위험한 곳을 돌아다닐 수도 없고 비교적 시설이나 위생 면에서 떨어지는 숙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누군가는 ‘제대로 여행하려면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가야해. 아이를 봐주시거든. 아무리 싼 비행기 표를 끊어도 경비가 확 달라진다’고 말하더라. 친정어머니, 혹은 장모님이 왜 아이 봐주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진=영화 <다가오는 것들> 중에서

그리고 우린 사실 여행을 통하여 통념이나 가치관이 깨어지는 순간들을 자주 경험하는데, 어릴 때 그걸 겪어야 자기 관념이 뚜렷이 선다는 것이다. 게다가 깨어지는 것을 잘 흡수하는 것도 어릴 때나 가능한 데, 이래야 나중에 ‘꼰대’가 되지 않는다. 

꼰대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적어도 귀만은 늙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백발이 된 당신 주변에 오로지 백발인 친구이외에 다양한 나이대의 친구들이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에릭 호퍼는 말했다. 창조적 인간은 영원히 미성년자라고.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 성장하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보다 ‘낯선 것’에 마음을 여는 게 훨씬 좋다. 적극적인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행복하게도 돈이 많아서 외국의 팝스타처럼 놀지 언 정, 거기서도 새로운 것보다 낯선 것에 고개를 돌리자는 거다. 

심지어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선 우린 어른들처럼 20대 중후반에 입사하여 그 ‘평생’ 직장을 꾸준히 다니다가 정년퇴임하지 않게 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심지어 그 때에 모아둔 돈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남은 돈으로 약 50년 더 남은 인생을 대비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또한 정말 ‘노년’이 되었을 때, 시간이 남아서 여행을 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진짜 여행은 되도록 ‘혼자’하는 것이 좋다. 그건 젊었을 때 더욱 좋다. 낯선 곳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혼자 있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짧은 시간들을 만끽하는 편이 더 나을 거다.

‘나이 들어 하는 여행이 부질없는 일임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그때는 풍경에서 가장 큰 부분은 바로 나였다.’ (<사랑과 여행의 여덟 단계>/비비안 스위프트 저, 중에서)

이 책을 쓴 작가는 심지어 나중에 가서는 마흔 살에 하는 여행은 너무 늦다고 말한다. 아, 그러기에 요즘 마흔은 너무 젊다.(이 책은 참고로 10년 전쯤 집필되었다) 20대, 30는? 더 더욱 젊다. 부질이 더, 더욱 있다. ‘그 때의 풍경에서 가장 큰 부분’에 해당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 같이 간 여행자가 누구인지가 몹시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사진=영화 <다가오는 것들> 중에서

사랑에 빠지기가 힘들고, 사랑받기도 힘들고, 사랑 줄 수 있는 자격을 가지는 건 더 더욱 힘이 든다지. 그래,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해가 좀 된다. 겁이 나서는, 낯선 것보단 새로운 것 쪽으로 기우는 마음. 나에겐 사랑이 그렇구나.   

우리 마구 떠나버리자고,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가 ‘스텝이 엉키면 그것이 탱고죠!’라고 말하듯이 그렇게 여행을 하자고, 저 책 작가의 남편이 세상에 잘못 끊은 기차표는 없다 했다고, 낯설고 또 낯설게 여행을 즐기자고 마무리를 지으려했는데 막상 바로 위의 문단을 쓰고 보니... 차마 그렇게 손이 떨어지지 못하겠구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새로움보다 낯선 것을 탐닉하자. 여행이든, 사랑이든, 책이든, 음식이든, 뭐든! 낯선 것을 시도하고 만끽하는 쾌감의 경험이 자꾸만 쌓이다보면 인생의 어느 곳에서든 가능하지 않을까? 이것 봐. 난 아직 여행을 덜 했다니까. 어서 낯선 여행을 쌓고 더 쌓아 그 경험치를 사랑에 접목시켜봐야지! 

(추신. 참고로 여는 글에서 인용한 ‘알루빠’는 인도어로, Aloo Paratha라고 쓰며, 감자 파르타. 인도 정통 요리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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