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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시사공감] 품위 있게 죽을 권리, 존엄사에 대하여

[공감신문 시사공감] 여러분은 혹시 스스로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보신 적 있으신지. 가능하다면 그 순간만큼은 고통 없이, 긴 잠에 든 것처럼 떠나고 싶다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고 싶으신지.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행복한 삶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선택권은 어떤가. 시간이나 장소 등은 사람의 선택으로 어찌할 수 없겠지만, 어떤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지난 8월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 이른바 ‘웰다잉법’이다. 다른 말로는 ‘존엄사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에서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연명의료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2월 전면시행을 앞두고 지난 10월 16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웰다잉법 시범시행 1개월여 만에 7명의 환자가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오늘 포스트에서는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한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웰다잉법에 대해 오해를 품고 있거나, 혹은 아예 시행여부 자체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다수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에서는 웰다잉법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이 포스트를 읽는 동안엔 조금 먼 얘기처럼 들렸던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으실 테다. 


■ 2009년 ‘김 할머니’ 사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존엄사에 관한 논의는 수년 간 이어져왔다. 국내에서는 특히 2009년 일어난 ‘김 할머니 사건’ 이후 존엄사 허용 여부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존엄사에 관한 논의는 수년에 걸쳐 이뤄졌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2008년 김 할머니는 폐암 조직검사 중 과다출혈로 인해 식물인간이 됐다. 이에 그 자녀들은 병원을 상대로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2009년 5월 21일 끝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김 할머니 자녀들의 손을 들어줬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존엄사란 용어 대신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말이 쓰인 것도 이때부터다. 

 

■ 품위 있는 죽음을 허용한 나라들 
우리나라보다 앞서 존엄사를 허용한 국가들이 있다.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태국 등이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가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각국의 문화가 다 다른 만큼 약간의 시각차는 있긴 하지만,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존엄사를 허용한 나라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가장 먼저 존엄사를 허용한 국가는 네덜란드로, 1973년부터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운동이 전개됐다. 이로부터 27년 만인 2000년 네덜란드 하원은 불치병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네덜란드는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적극적 존엄사까지 허용하고 있는 나라다. 

적극적 존엄사는 우리나라처럼 연명의료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합법적으로 처방받은 약물을 투여해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안락사가 이에 해당한다. 

프랑스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에서 환자의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존엄사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던 프랑스도 2004년 환자 스스로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마련했다. 단 의학적인 치료에도 더 이상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로 그 대상을 제한했다. 이 법의 이름은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이다. 

미국은 40개 주에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 중 일부는 적극적 존엄사까지 허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이사를 강행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고 전해진다. 2014년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존엄사를 알려 이목을 모았던 브리타니 메이너드 역시 같은 이유로 캘리포니아주에서 오리건주로 자신의 거주지를 옮겼다. 캘리포니아주는 메이너드가 떠난 뒤인 2015년 6월부터 적극적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존엄사를 예고했던 브리타니 메이너드 [유튜브 캡쳐화면]

일본과 캐나다는 그에 대한 법적 제도는 없지만 환자 상태와 본인 의사, 법원 판례 등에 따라 관행적으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 시범사업 시행 한 달이 흐르고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볼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존엄’을 지키는 선택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웰다잉법은 통과되기 직전까지도 갖은 몸살을 앓아야 했다. 특히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해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는 법 시행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완전히 없어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명의료계획서. 어떤 연명의료를 중단할 것인지 항목별로 선택할 수 있게 해뒀다.

하지만 이런저런 논란과 우려 속에서도 웰다잉법 시범 사업은 한 달째 순항 중이다. 28일 보건복지부의 중간결과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임종기 환자들은 11명이며, 이들 중 7명이 연명 치료를 받지 않고 숨을 거뒀다. 

건강한 성인이 “임종에 이르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건수는 시범사업 기간 동안 매일 늘어나 24일 기준 2197건에 달했다. 

그러나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 건수가 의향서에 비해 턱없이 저조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환자가 웰다잉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도, 병원은 물론 보호자들마저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기 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죽음이 닥쳤다고 알리는 것은, 의료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pxhere/CC0 public domain]

이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가 연명의료의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 상담인력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일각에서는 환자의 의사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외국의 사례처럼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 대리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누구에게나 죽음의 순간은 온다. 
우리나라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던져진 물음표는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로 숨만 붙어있는 것이 과연 저승보다 나은 삶인가’ 하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이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pxhere/CC0 public domain]

웰다잉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2013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90%의 응답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보다는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택하고 싶은 이들이 더 많다는 뜻이겠다. 

무조건 쉬쉬하는 것만이 환자를 위한 일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내년 2월에는 본격적으로 웰다잉법이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특히 당사자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이 법의 존재자체를 모른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홍보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인식도 변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충격을 받아서 상태가 더욱 악화될까봐’ 그저 쉬쉬하기만 하는 것은 결코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미리 환자에게 알려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환자가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돕는 것도 보호자의 역할 중 하나란 뜻이겠다. 

공평하게도, 누구에게나 죽음의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누군가에게는 먼 일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코앞에 닥친 일일 수도 있겠다만, 어쨌든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 마지막 순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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