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제시되는 현실은 실제 현실의 모방이나 반영이 아니라,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이다.’ / (장 보드리야르著 <시뮬라시옹> 중에서)

르네 마그리트 <데칼 코마니>

[공감신문] 요즘 나라 안에 뜨거운 소식 중 하나는 바로 국가정보원, 즉 국정원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아, 이 단어를 쓰려니 날씨가 추워서인가 왜 이렇게 손이 시린지 모르겠다. 사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오늘 오전부터, 유난히도 손이 떨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다른 걸 쓸까, 불온한 프랑스 연애소설 하나를 후딱 읽고는 낭만적이고 허세스런 글을 써볼까-’싶었지만 그냥 이 주제를 가지고 책상에 앉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이 글은 영화감독님들이나 드라마 작가님, 그리고 영화나 TV없이 살 수 없는 나 같은 독자님들이 꼭 읽어주셨으면 한다. 

사실 이렇게 쫄 필요는 없다. 나는 그 기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위에서 말했다시피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고 수요하는 이들에게 몇 마디 적으려는 것 뿐이니까. 아마도 그들은 어느 특정 기관의 사람들보다야 좀 더 너그럽지 않을까, 싶은데. 

이전 정권들 시기의 국정원 활동들이 최근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 댓글 사건과 특수 활동비... 각종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대표적인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청와대와 검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개혁해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중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해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국정원이 가졌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전에 누가 ‘남산에 (끌려)간다’고 하면 걱정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한 때 ‘안기부’라 불리던 이곳에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었기에...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 때에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활화산 같은 북한과 같은 한반도에 위치해있는 세계 유일 분단국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국정원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국내외 간첩, 스파이, 테러는 물론이거니와 해외 조직의 범죄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도 대비한다. 

또 필요에 의해 해외 국가기관과 함께 협력하기도 한다.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은 세계적이다. 미국 NSA 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 및 각 분야의 첩보를 수집하는 최대 위협국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것.

영화 <베를린>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는 국정원의 ‘블랙요원’들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은밀하고 위대하게 활동하며 제 2차 한국전쟁, 제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목숨 바쳐 국가를 수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검찰과 경찰’에 이관한다고 하니, 일부에서는 ‘역부족’이라는 여론이 거세게 나온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의 안보를, 그 기관들이 과연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거다. 이런 말을 꺼내는 건 국회의사당에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국민들 역시도 우려한다.

사실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보단 부정적이다. 아니, 부정적인 정도가 아니다. 무능력해보이며 부정부패의 온상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여기에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진 경찰들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크고 작은 범죄조직은 물론이거니와 성매매나 마약 같은 특수한 범죄에 가담한 ‘큰 손’들과 경찰이 공생한다고 그려졌다. 몇몇 영화들에서는 거의 ‘한솥밥’을 먹는 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물론 영화에서 이렇게 비춰지기에 그걸 곧이곧대로 다 믿는 다면 관객이 바보겠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경찰의 이미지가 더욱 부정적이 된 건, 아마도 몇몇 사건들 때문이 아닐까. 광화문에 모여든 100만 시민들과 더불어 의경 역시 그 자리에 맞서있어야 했다. 그들은 경찰 조직 수하에 있으므로 그래야만 했다. 촛불을 든 많은 사람들은 의경들에게 ‘고생이 많다’고 말했다. 정의가 승리할 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해주시라고.

제72주년 경찰의 날 홍보영상 중에서

도시의 조폭 그리고 주(酒)폭과 싸우며, 도시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경찰. 그러나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란, 검찰과 국정원에 밀리며 과학 수사와는 거리가 멀고 초동 수사에 안일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그럼 대공수사권 뺏으면 수사는 누가해? / 경찰!’ 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여론의 반응이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경찰의 ‘의외성’이 보이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맨날 짜장면이나 설렁탕을 시켜먹으며 후배 뒤통수나 때리는 아재 냄새나는 경찰은 그만 보고 싶다. 색다른 이미지의 경찰을 만나고 싶다. 

왜 경찰 역할에는 미남 배우가 캐스팅이 되지 않는가! 영화 <V.I.P>에서도 경찰은 김명민, 국정원은 장동건이었다. 왜 장동건 같이 생긴 경찰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 것인가! 

영화 <청년경찰>은 그런 면에서도 몹시 새로웠다. 우선 박서준과 강하늘, 훤칠하고 깔끔한 두 배우가 경찰 제복을 입고 나온 그 자체로, 아- 음 이미 좋은 것 같다. 그들은 경찰대에 다닌다는 것만 빼면 그 또래 남자 대학생들 같았다. 아니 또래에 비해 월등히 똑똑하며 운동도 훨씬 잘한다는 것도 빼야겠지만.

영화 <청년경찰>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그려진 ‘신부’의 모습도 그러했다. 신부, 그러니까 사제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어마어마한 학업량이 전부가 아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신학생들은 사제가 되기 위하여 약 6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며 철저히 규율에 입각한 생활을 한다. 오전 6시에 기상하여 아침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검은 사제들>에서도 강동원이 연기한 보조사제는 히브리어, 라틴어, 중국어, 영어, 독일어 등 ‘저... 저... 정도면 왜 신부님을 하지?’라고 할 만한 수준의 언어능력자로 나온다. 우리가 몰랐던 사제들의 모습이다. 

당시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중일 때 어느 신도가, ‘신부님! 그 영화 보셨어요? 그거 말도 안되는 거죠?’라고 물었단다. 신부님은 당연하지, 라고 대답했고 신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그러자 신부님이 말했단다. ‘나도 강동원 같이 생겼으면 신부 안 해.’

29년 동안 살면서 112에 신고를 한번 해보았고, 고소장 및 진정서를 두 번 내러갔으며, 출석을 요구에 의해 한 번의 조사를 받았었다. (참고로 무죄였다) 당시 사건들을 대하는 나의 무거움과 더불어 어린나이에 ‘경찰서’를 간다는 자체가 날 잔뜩 긴장시켰었다. 하지만 내가 뵈었던 수사관 분들은 모두 인자하셨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경찰의 업무량은 어마어마하며 그 수준 역시 그러하다. 2008년부터 올해까지 약 10년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모두 739건이었는데, 그 중 71%가 경찰이 적발했으며 국정원은 25%를 적발했다. 올해에는 7월 말을 기준으로 경찰은 28건을 적발, 국정원은 한 건도 없었다. 

단순히 ‘잡아들인다’는 것 이상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에 의한 1심 판결의 무죄 비율을 보자면, 국정원이 17.4%인데 비해 경찰의 형사사건 1심 무죄율은 3.7%에 그쳤다. 

1심에 이은 재심 판결의 무죄 비율. JTBC <뉴스룸> 캡처

이렇게 놀라운 수사력을 가진 경찰들에 대해, 이젠 이미지 재건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매스미디어가 중요하고, 그래서 영화감독 드라마 작가님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는 거다. 

영화 <맨 온 파이어>나 <아저씨>에서처럼 멋있는 남자 주인공이 꼭 요원 출신이 아니라 경찰 출신이면 안 되냐고, 원빈이나 장동건 같은 미남 배우를 경찰 역할에 캐스팅 해주시면 안 되냐고 말이다. 

매스미디어가 대중에게 주는 이미지란 어마어마한 것이다. 내가 얼마 전 칼럼에도 쓴 살리에르는 영화<아마데우스>의 최대 피해자다. 그는 영화에서 보여지 듯, 모차르트를 질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다. 그러나 우리는 ‘살리에르 증후군’이라는 말을 만들어 그를 모두 2인자로 여기고 있지 않나. 

수사(搜査)하는 자들을 위한 감미로운 수사(修辭)가 필요하다. 똑같은 피사체를 가지고 사진을 찍더라도 작가의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진이 다르다. 이때껏 한결같이 ‘못났던’ 그들의 이미지에 대해, 새로운 수사가 있어야 한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어김없이 찾아온 어느 밤에 놓인 술과 음악, 즐길 거리에 나 몰라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때로는 너무도 한가롭다 못해 따분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일상들은, 저절로 펼쳐진 것이 아니다. 

국정원에는 ‘자유와 진리를 위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문구가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 헌신들 덕분에 지금 나에겐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진리는? 아직 난 그것을 알진 못한다. 단지,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래서 나는 오늘, 감미로운 단어들로 경찰을 위로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가 친하지 않아서인지, 나는 생각처럼 감미로운 단어들을 형용할 수가 없었다. 많은 매체들이 다양한 경찰의 모습을 그려주길, 우리도 사뭇 몰랐던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라본다. 이후에 나는 진심으로, 감미롭고도 따뜻한 수사를 늘어놓을 수 있게 되길. 경찰 기관뿐만이 아니다. 정의가 발현된 사회를, 기분 좋은 형용사로 마구 예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대과거가 될 과거에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며, 더 정의로운 것을 찾기 위한 오늘날 누군가의 고민에 박수를 보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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