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개봉박두: 매력적인 폐허. Ici bientôt, de charmantes ruines'

프랑스 68혁명

[공감신문] ‘내가 널 만나지 않았더라면-’ 연정을 다룬 여느 흔한 소설이나 영화, 노랫말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네가 내 인생에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럼 사랑에 빠지지도, 이별하지도, 아파하지도, 어떠한 영향을 받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쓸데없고 비생산적인 ‘가정’. 도무지 손을 쓸 수 없을 때 우린 그런 후회 섞인 가정을 한다. 1974년 어느 날, 어머니를 잃어 슬픔에 빠져있던 그녀가 최태민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편지를 그저 지나쳤더라면, 그랬더라면 과연 어떠했을까. 

징역 25년, 벌금 1천185억 원, 추징금 77억9천735만원 구형. 어젯밤, 최순실은 최후진술 중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모함과 검찰 구형을 보니 제가 사회주의보다 더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주의보다 더한 국가. 이 말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12일 방영된 MBC<PD수첩>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어땠는지,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MBC는 무려 73일간의 파업을 마치고 정상화됐다. MBC 시사 간판 프로인 <PD수첩>은 국민들에게 사과를 구했다. 스스로의 행적에 대해 ‘7년간의 몰락’이란 표현을 썼다. 그동안 MBC가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었다는 걸 잘 안다고 했다. 다만, 내부 문제이외에 외부의 압박에 의해 편파적인 보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압박의 실체를 공개했다.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그러나 실은 MB정부의 MBC장악 시나리오.

나는 국내외 이런 내용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그런 문건 같은 걸 보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작가에 의해 작성된 ‘허구’, ‘가짜’였다. 엘리트적이고 건조한 문체. 그런 단어들의 간결한 조합이야말로 납득할 만한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를 본적이 없었기에 그렇게 믿을 수밖에.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계인의 모습을 단번에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듯 말이다. 

하지만 공개된 ‘실제’는 영화와 달랐다. 난 그 단어들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근본적 체질개선 추진’, ‘종북 좌파 성향’, ‘좌파들의 선정도구’, ‘환골탈태’, ‘좌파 세력 해방구’!

...난 이 문건을 작성한 이의 가슴이 뜨거울 거라 감히 추측했다. 비이성적이며 감정적인 단어 선택. 왠지 모르게 레지스탕스적이라 느꼈다! 문학적이고 에로틱했던 프랑스 <68혁명>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인걸까? 보수에 저항하고 억압을 파괴하려했던 그 혁명과 이 문건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냐고? 여기, 굵은 글씨로 분류된 것들은 68혁명 당시 벽에 쓰인 낙서들과 슬로건들이다. 분명 느껴진다니까, 저항정신의 작은 숨결! 

‘이 곳에 개봉박두: 매력적인 폐허. Ici bientôt, de charmantes ruines',

‘공장을 점거하자. Occuper les usines.’ 

우선 정부는 ‘MBC의 정상화’를 본격화하기에 앞서, ‘말’이 통하는- 아니 말을 잘 들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당시 전달된 이 문건에는 ‘피디의 농성장인 피디수첩은 보도본부 산하로 옮기고 헤쳐 모여식 조직 개편’ 및 ‘제작본부 산하부서와 논설 위원실은 조직개편 수준의 대폭적 물갈이 인사 추진’이라는 문장이 노골적으로 쓰여 있었다. 

사실 <PD수첩>은 탐사보도 전문 시사프로였다. 영화 <제보자> 역시,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을 취재했던 당시 프로그램의 PD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PD수첩>은 그 밖에 4대강 사업, 스폰서 검사 등 많은 정치·사회적인 이슈를 거침없이 폭로했었다. 정부의 입장에선 불리한 의제들. 그걸 화두에 올리는 이들을 쫓아내야 했다. 

그리고 곧 누군가가 ‘말하는 대로’ 이뤄지게 된다. <PD수첩> 제작진 전원이 해고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자리를 지킨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부당한 해고조치에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MBC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새로운 제작진을 꾸려 <PD수첩>을 방영했다. 아 물론, 만드는 사람들이 바뀌니 방송 아이템(소재)도 달라졌다. 

MBC <PD수첩> 중에서

‘문화는 삶의 전도다.’ ‘ La culture c'est l'inversion de la vie.’

우선 정부에게 불리한 의제에 대한 보도는 최대한 피했다. 정치·사회적 이슈보단 성소수자, 부동산, 투기산업, 성형 산업 등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친 내용들을 다루었다. 아니 내가 이러려고 PD수첩을 틀었나, 자괴감이 들었다. 생생정보통이나 볼걸. 
 

‘글 쓰는 법은 모르는데 아름다운 걸 말하고 싶어. 그런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 Je ne sais qu'écrire mais j'aimerais en dire de belles et je ne sais pas.’

이번에 MBC에 복귀한 최승호 사장은 당시 정부의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물갈이 대상 1순위였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고 지지하는 이가 많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당시 교양국의 국장이 선택한 부드러운 문장은 이러하다. 

MBC <PD수첩> 중에서

‘자유는 침묵할 권리다. La liberté, c'est le droit au silence’ 

자유로우라고, 날개를 꺾어버리다니.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야. Cela nous concerne tous. ’, ‘경계선 따위 지옥에나 보내버려.’ 

MBC를 향한 정부의 개입이 뻗친 건 비단 <PD수첩>뿐만이 아니었다. 방송사 전반에 구체적인 내용이 전달됐으며, 박근혜 정부 때엔 더욱 심화됐다. 물론 수뇌부들 역시 그들의 측근으로 채워졌다. 덕분에 MBC뉴스는 한쪽으로 치우친 편파적이고 당파적인 단어들을 연발했다. ‘종북 세력, 북한, 무죄, 대통령 복귀’... 심지어 김장겸 전 사장은 세월호 유가족을 ‘깡패’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정말 도를 넘어, 경계선 따위 지옥에 버린 것 같다. 
 

‘소통이여 영원하라, 전자통신을 타도하자. Vive la communication, à bas la télécommunication’

국민들이 MBC를 외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세월호 참사 때가 아니었나싶다. 최악의 참사 보도였다. 당시 딸을 잃은 어느 아버지는, 각 언론사에 딸이 사고 당시 세월호 선체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제보했었다. 많은 주요 방송들은 이 영상을 공개했는데, MBC는 영상을 받고도 보도하지 않았다. 물론 위에서 내려온 지시사항 때문이었다. 아마도 MBC 뉴스만 봤던 분들이라면 인터넷에서 ‘떠드는’이야기들을 믿지 않으셨을 거다. ‘아무렴, 뉴스가 거짓말을 하려구! 인터넷 얘긴 다 선동하는 종북 세력뿐이지!’
 

‘미래는 우리가 지금 그 속에 넣는 것만 담고 있을 거야.’ 

이렇게 MBC는 마치 한 특정 정권을 위한 수단으로 충실하게 쓰이고 있었다. 

영화<굿바이, 레닌>이 생각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하지만 주인공은 동독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어머니께,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요즘 어머니의 건강이 몹시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쇼크 받으실 걸 생각하면 정말 아찔했다. 결국 아들은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사랑스러운 사기극(?)을 벌이게 된다. 친구들을 섭외해서 어머니가 매일 볼 뉴스까지 제작한다. 

서독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들, 그리고 여전히 건재한 동독의 위상. 어머니는 역시 서독은 불쌍하고 어리석다며 동독에서의 위대하고 평온한 일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묻지, ‘그렇지, 아들?’

영화 <굿바이 레닌> 중에서

그래서 나도, 묻고 싶다. 박정희 정부에 대한 향수가 있던 그대들은 그 ‘가짜 뉴스’를 보며 만족감을 느끼고, 또... 행복하셨냐고. 

특정 언론 및 일부에선 정부에 반反하는 입장을 가지면, 마치 ‘종북’ ‘좌파’ ‘북한’ ‘빨갱이’란 이미지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북한의 체제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고 딱히 말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독재 체계를 구축해놓았다. ‘백두 혈통 계승’을 앞세운 ‘주체사상’(김일성 주의)과 군이 앞장서는 선군주의가 그들의 정치이념이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 나도 싫어, 정말 싫다니까?! 그런데 자유민주국가라는 이 나라의 정부에서, 하나의 방송을 마치 관영방송인 듯 주무르는 행동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정농단의 시작과 끝에 있던 최순실은, ‘사회주의보다 더하다’는 표현을 쓰며 울먹였단다. 그래, 그녀가 비선실세로 있던 당시엔 사회주의보다 더했으니 그 말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얼마 전 ‘인천 영흥도 급유선-낚시배 충돌 사고’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는 정말 이 지경까지 되었구나,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유가족에게 10억원을 줘라’, ‘낚시 갔던 아빠들 자식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해줘라’, ‘세월호 때처럼 촛불 들고 추모하러 광화문에 모이자’는 댓글들 역시 달려있었다.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유가족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너무도 악랄했다. 이렇게 만든 건 누구인가? 언론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과연 저들과 마주앉아 차 한 잔을 다 비울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다시 화합될 수 있을까.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수용소, 감옥, 다른 시설들의 문을 열어라. Ouvrons les portes des asiles, des prisons et autres facultés.’

국정농단 및 적폐를 저질러 온 이들의 석방과 무죄 판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들의 ‘농단’이 밝혀지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니다, 이들은 혁명적으로 사랑한다. 수많은 <68혁명>의 슬로건 중, 단연 으뜸은 무엇인가? 

‘에메 라 레볼루숑, 레볼루쇼네 라무아-!’ aimer la révolution, révolutionner l'amour. 

사랑할수록... 혁명한다는 뜻이다.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사실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을 옹호하는 이들의 머릿속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찬찬히 살피며 비유해보니, 한편으론 그들이 엄청난 감수성 소유자인 것 같다고 느꼈다. 

저항, 사랑, 뭐든 좋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에는, 한 사람의 영혼을 구제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오늘 법정에서 비명을 질렀다는 그녀의 눈빛은, 분명 구제된 영혼의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녀가 곁을 지키고자 했던- 43년 전 최 씨에게 한 통의 편지를 받았던 누군가의 눈빛 역시 구제되지 못한 것 같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에 개봉박두, 매력적인 폐허.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감히, 정의를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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