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이 없었다. 내 젊음도 끝이 없었다. 나는 전쟁에서도, 젊음에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히로시마 내 사랑> 중에서)
 

[공감신문] 아버지는 무기력하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부양에 대한 책임을 져버린 아버지, 다독이기보단 부수어버리고 싶은 저 축-쳐진 어깨가 지겹다. 그의 쓸쓸함은 돌볼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의 한숨이란 할 말을 잃은 이의 핑계 같은 것이라고 아들은 생각했다. 아들은 자라서 성인이 되고, 그 역시도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 알게 되겠지.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다는 것을. 하지만 절대적으로, 이를 악 물 것이다. 그의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기에.

영화 '버드맨' 중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여느 한국 가정의 군상이 아닐까 싶다. 나는 최근에도 이런 사연들을 TV를 통해 많이 접했었다. <안녕하세요>같은 고민을 털어놓는 방송에서, 5-60대의 아버지 때문에 고민이라는 자식들이 나와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가족들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기보다 미워했다. 그래도 그들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자명했다. 슬프고 안타까웠다. 

한국 사회에선 특히나, ‘아버지’라는 역할의 무게가 그러해왔다. 영화 <국제시장>만 보더라도, 부모들은 자식을 먹이고 입힐 수 있다는 말에 낯선 땅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더라. 그런데 왜 오늘날, 저기 나온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존경받을 기회를 마다하는 것인가. 

사실 그는 오랫동안 앓고 있었다. 아버지의 몸을 숙주 삼은 ‘그것’이, 그를 지배해오고 있음을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답기 위하여 이 사실을 숨겼었다. 정말 힘든 시기일 때에, 아버지는 자기 몸에 ‘그것’이 자라나고 있음을 몰랐다.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날, 몸에 전기가 오르는 듯 한 기분에 잠에서 깼고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쌔근쌔근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노라니,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아버지답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결국은 아버지를 넘어 가족 전체에 손을 뻗었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제와 그가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난, 오랜 시간 앓아왔다고, ‘트라우마’가 나를 집어 삼켰다고. 

영화 '버드맨' 중에서

1997년 11월, 대한민국에 불어 닥친 IMF 경제 위기는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어느 한 군데 안전한 분야가 없었다. 7-90년대에 아시아에 흘러들어온 외국 자본 위에 쌓아 놓은 산업들은, 이 자본이 빠져나가며 와르르 무너질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도 그러했다. 30대 대기업 중 16곳, 은행 26곳 중엔 16곳이 문을 닫아야했다.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했으며. 억울한 마음에 거리로 나온 이들은 ‘IMF’에 몇 글자를 덧붙여 ‘I’M Fired’라며 호소했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우린 스스로 구제해야만 했다. 한국인 특유의 단결력과 화력은 어마어마했다. 현재 환율로 약 60조원이 넘어가는 550억 달러의 채무를, 약 3년 8개월 만에 갚아냈다. 한반도의 역사를 보자면 짧은 시간일 수 있겠으나, 누군가에겐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3년 8개월이었을 것이다. 우린 다시 탄력적으로 재생의 에너지를 얻은 듯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우린 좀 먹고살만해진 것도 같다. 그러나 사회 전반이 회복되어지고 재생되어진 건, 결코 아니다.

IMF 경제위기가 일반 가정에 던진 건, 단순히 당장 먹고살 문제에 대한 위협과 불안이 아니었다. 3년 8개월?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였다.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린 이것을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IMF의 후유증 같은 것이다. 당시 한 순간에 직장을 잃은 이들의 상실감과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고 당시엔 어디가 고장 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야 점차 통증이 드러난다. 업무 중 어느 중요한 프로젝트가 끝나 긴장이 풀리면, 그 때서야 몸살이 오는 것과 똑같다. 

경제가 회복되었는데 왜 치유되지 않느냐고? 회복 이전에 상처가 있었겠지. 그런데 그 상처를 낸 당사자가,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유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건 한밤에 불어 닥친 불의의 사고였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빼어나게 잘한 건 없을 지 언정, 이런 벌을 받아야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매일매일 가족들을 위해 자영업으로 열심히 생계를 꾸리던 어느 가장은, 하루아침에 모든 거래처들이 우후죽순 문을 닫는 단 얘길 듣게 되었다. 수입이 뚝, 끊겨버린다. 끝내 그 역시도 영업장을 정리할 수밖에. 

매일 몇 시간씩 부지런히 기계를 돌리던 어떤 이들의 손은 어색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공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이 찾을 수 있는 건 술잔밖에 없었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억울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숨을 죽인 아이들의 통통한 얼굴과 와이프의 그늘진 표정. 아버지는 저 통통한 아이들의 얼굴을 지켜주고 싶었다. 

IMF 당시 모습

이런 한밤의 사고 이후, 누군가는 아직 일어설 힘을 찾지 못했다. 성실했던 나날들의 보상이 겨우 저거였냐는 생각은, 그들을 오랜 시간 허무에 빠뜨릴 만 했다. 머리로는 힘내자고 마음먹지만 잘 되지 않았다. 외환 위기가 끝나고 경제가 회복세라는 뉴스가 어찌나 매정했던 지.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겁쟁이처럼 스스로 세상에 고개를 돌린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제일 강한 줄 믿던 시절이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증오가 생겨났다. 
...사실 아버지는 세상으로부터 사과와 위로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게 된 요즘, 아버지들 역시 그래야만 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경제가 회복되었다지만 미래에 대한 우리의 불안은 여전하다. 고령화된 사회, 아버지들은 앞으로의 20년을 또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연한 고민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전 특별하지도 않아요. 보잘 것 없는 놈이라고요. 아버지도 마찬가지예요.’
 

아서밀러의 희곡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아들 비프가, ‘어느 세일즈맨’이던 아버지에게 퍼붓는 대사다. 현실에서 ‘패배자’가 되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허황된 꿈을 좇는 아버지가 더 슬플까, 아니면 마치 어느 밤거리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 소녀처럼 방안으로 숨어버린 듯 한 아버지의 모습이 더 슬플까? 그리고 이걸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모든 게 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전후戰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투명해진 내 살도 이윽고 뚫고 / 뼈만 쫓아오는 방사선 / 길거리에 내 뼈가 노출된다 / 노출된 내 뼈가 더 급하게 더 악착같이 달린다’ (김기택 시,<원자폭탄 아름다운 원자폭탄> 중에서)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감히 그들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일본은 언제쯤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것인가? 그 밖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전후 문제들이 얼마나 또 많은가.

일본 애니메이션 '맨발의 겐(1983)' 중에서

박정희 정부 시절, 대통령은 공장에서 불철주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국민들을 ‘민주사회의 일원’이자 ‘산업의 역군’이라 칭했다. 당시 국민들은 ‘우리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일념하나로 몸이 부서져라 작업에 박차를 가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경제 대통령’이라 칭송하기에 앞서, 먼저 수고했다며 칭찬해야할 건 ‘스스로’-‘서로서로’였다.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가 끝난 후 월드컵을 치루기까지- ‘이건 당신 탓이 아니었어요.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요?’라는 다독임을, 우리 아버지들은 얼마나 받았을까. 

민주주의의 일원, 산업의 역군, 한강의 기적, 자랑스러운 국민! 
... 그것도 좋은데, 우리 아버지들에게도 이름이 있잖아.

故전태일 열사, 사진=ebs클립뱅크

‘전쟁은 끝이 없었다. 내 젊음도 끝이 없었다. 나는 전쟁에서도, 젊음에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1959년에 발표된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에 나오는 대사다. 어쩌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 아버지들 역시 그 끝이 없는 젊음과 시간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괴로운 트라우마가 붙드는 시간. 그것은 마치 생로병사가 없다는 ‘관능’처럼, 그들의 자연스러운 노화와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모습의 젊음일지도. 
 

영화 '세일즈맨의 죽음' 중에서

‘어느 세일즈맨’의 이름은 윌리로먼이었으며, 꽤 먼 훗날인 지금- 그의 이름은 대단한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입술에서 불리기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대단한 추모인가. 

우리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당신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가실 수 있도록, 얼른 그 불편함으로부터 해방시켜 드려야하지 않을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버지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 가장 위대한 짝사랑은 누구일까. 그 사람의 이해와 존경심이라면, 아니 그것만이 그의 시계를 온전히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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