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시간이 지나 겪어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부모님’에 대한 이해다. 나이가 들어가거나, 자녀를 키우다보면 새삼스레 ‘아,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를 깨닫게 된다. 특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녀를 두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더욱 커진다. 

어린 시절 마냥 부모님만 바라보던 아이들은 이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하고, 부모는 당연히 섭섭함을 느낀다. 생각과 입장 차이가 발생하는 기간이 길어지며 때로는 감정의 골까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더욱 길어지고 서로 노력하지 않을 경우,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그 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나의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내 말을 들어라’라고 하거나 ‘내가 널 잘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녀와 속 깊은 대화를 오히려 방해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인 나의 자녀. 어떻게 하면 그들과 다시,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 아이의 호르몬 변화를 이해하자

분명한 사실은 아이들이 지금 ‘성장중’이란 것이다. 그들의 몸에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신체 변화가 생기는 중이다. 이 변화는 호르몬에 의한 것이며, 호르몬은 우리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월경시기의 여자들은 평소보다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거나 예민할 수 있다. 이것 역시 호르몬 때문이다. 임신이나 갱년기를 겪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호르몬에 의해 기분이 지배당하기 쉽다. 

우선 아이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 화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기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하다보면 아이들 역시 격양되기 쉬워진다. 이 때 부모 역시 흥분한 감정이 되면 둘은 대화를 꺼냈던 주제에 대한 경중을 떠나 갈등이 고조될 수밖에. 

‘이렇게 크게 싸울 문제가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대화’로 시작했다가 결국 ‘싸움’으로 끝난다. 우선 어느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이가 다소 버릇없거나 격양돼 이야기하면 잠시 대화를 멈추고 부모 스스로 차분해지는 게 좋다. 

아주 잠시 동안의 시간을 통해 아이가 방금 스스로의 대화를 돌아볼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자신이 말실수를 하거나 다소 흥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 화를 누그러뜨리고자 할 것이다.

만일 아이가 계속 그렇게 대화할 경우, 우선 원래 전하려던 이야기만을 전달한 후 대화를 종료하는 것이 좋다. 이후에 아이의 화가 누그러졌을 때, ‘사랑하는 **아, 그 문제에 대한 너의 생각을 들어보려 했었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말했을 때 아빠(혹은 엄마)는 좀 마음이 아팠어.’라는 작은 카드를 적어 책상에 놓아두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놓는 것도 좋다. 아이를 탓하려 하지 말고 최대한 담백하게 적는 게 좋다. 

■ 내 자녀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아이들은 집보다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즉, 가족보다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같은 또래의 성인 남녀도 서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마냥 똑같지 않다. 하물며 관심사와 세대가 다른 부모와 자식 간에 표현방식과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쓰는 단어가 다소 가볍게 느껴지거나 감정적으로 진지해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볍게 들으면 안 된다. 내 아이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들어보려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그저 아무런 큰 맥락이 없는 대화라도 그러하다.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고민이 정말 많다.

 

■ 준비되면 이야기해줄래?

아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면 굳이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누구나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그것을 친구들과 상담하거나 스스로 생각할 때에, 부모가 나서서 ‘넌 이렇게 해야한다’고 강압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부모가 제시한 방향에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가도 그 태도에 상처를 받아 마음을 닫을 수 있다. 그럴 때엔 준비가 되면 이야기해주겠냐고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 아이는 부모의 대화를 보고 배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평소 부모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 지, 아이들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단순히 ‘부부’사이 뿐만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부모나 형제, 친구, 동료, 이웃과 소통하는 방식 모두 마찬가지다. 

‘나의 부모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구나.’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를 그렇게 이해하는 순간, 스스로도 정체성과 진로에 혼란이 오는 불확실한 모습들을 더욱 잘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육아’는 한 아이를 양육한다는 의미를 넘어, 한 인간의 인생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위대한 시기를 함께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미래에 대한 커다란 중압감과 더불어, 서로 경쟁하는 것을 배우며 큰다. 아이들이 처한 문제와 스트레스가 과연 작다고 할 수 없다.

‘부모만 이해해야 돼? 아이들은 왜 부모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을 돌아보면, 그분들 역시 자식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이해하셨었다.

무조건 자식을 위해주라는 것이 아니다. 자식에게 반성할 시간과 기회를 열어두고, 부모 역시 자식의 언어를 이해하는 시간을 서로 가지자는 것이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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