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안타까운 죽음들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죽음인들 안타까움을 남기지 않겠느냐만, 올해는 유난히 혹한으로 접어들수록 추운 소식들이 전해지는 것만 같다.

우리는 지난 10월, 허술하지만 소탈하게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던 한 멋진 배우를 잃었다. 또, 얼마 전에는 깊고 푸른 밤마다 고된 하루를 보낸 지친 이들을 위로해주던 반짝이는 청년을 떠나보내야 했다. 같은 날에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던 한 희극인이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Photo by Ruben Ortega on Unsplash]

죽음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거스를 수도 없고, 또 예기치 못하게 들이닥치기도 한다.

그래서(꼭, ‘그래서’라고 할 순 없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만일 우리가, 내가 떠나고 난 뒤 그 어떤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할까? 아니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훌훌 떠나가 버린다면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을 통해 떠난 이들을 추억하고 되새길까?

[Photo by Ruben Ortega on Unsplash]

우리에게 깊은 슬픔과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간 이들이 남긴 것들. 그런 무언가는 때로 유언, 유품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의 날들을 살아가는 이들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예술가들의 흔적에는 ‘유작’이란 이름이 붙게 된다.

유작, 남겨진 작품들. 오늘 교양공감 포스트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유작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둘러보는 시간이다. 어떤 것은 역사적 유작으로 알려지게 된 작품도 있고, 비교적 최근의 사망 소식으로 인해 유작이 된 무언가도 함께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 폴 워커 –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영화 팬들 중에서는 흔히 호주 출신의 배우 히스 레저와 그가 출연한 영화 ‘다크 나이트(2008)’를 놓고 ‘영화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작’이라 일컫는 이들이 있다. 사실 그가 죽기 전 가장 마지막에 참여한 영화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2009)’이지만, 영화가 그리 흥행하지 못했으며 그가 촬영을 끝까지 마친 작품은 다크 나이트라는 점 때문에 이쪽을 진정한 유작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시리즈의 두 주인공 중 한명인 '브라이언 오코너' 역할을 맡은 폴 워커. [분노의 질주 영화 장면]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영화 촬영 도중 배우가 사망했기에 촬영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작으로 취급받는 사례도 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상당히 잘 알려져 있을 그 사례는 바로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과 폴 워커다.

배우 폴 워커는 2001년 개봉한 분노의 질주 첫 번째 영화에서부터 시리즈와 긴 인연을 맺게 됐다. 시리즈 내내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브라이언 오코너’ 역할로 등장했던 그는 영화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3년,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그는 생전 "언젠가, 속도가 나를 죽게 만든다면 울지 마. 나는 웃고 있었을 테니까"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어 많은 이들을 더 안타깝게 했다. [RMS모터링 웹사이트 캡쳐]

이 사고로 영화 제작진은 불시에 시리즈의 오랜 주인공이자 친구, 가족과도 같았던 주연 배우를 잃게 됐는데, 제작진과 제작사는 회의 끝에 사망한 폴 워커와 닮은 동생을 대역으로 사용해서 주인공 브라이언이 은퇴한다는 내용으로 전체적인 각본을 수정한다.

수정된 각본에서 그가 은퇴하는 장면은 이렇다. 일련의 모든 사태를 마무리 짓고 난 뒤의 평화로운 어느 날, 도미닉(빈 디젤)은 범죄로부터 손을 씻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던 친구 브라이언을 위해 조용히 떠나려 한다. 물론 이미 브라이언을 형제나 다름없이 여기는 도미닉과 일행들에게, 브라이언을 떠나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브라이언의 모습에 도미닉과 팀원들은 그를 보내주기로 한다.

도미닉과 브라이언이 각자 다른 길로 향하게 된다는 암시. [분노의 질주 영화 장면]

이때 찰리 푸스(Charlie Puth)가 작곡한 폴 워커의 추모곡, ‘See You Again’이 흘러나온다. 도미닉과 브라이언은 마지막으로 함께 도로를 달린다. 이 장면에서 도미닉 역을 맡은 빈 디젤의 연기는 실제를 방불케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빈 디젤과 폴 워커는 시리즈를 함께 해오면서 말 그대로 ‘형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는 2001년부터 우리와 함께 해왔던 폴 워커-브라이언 오코너에게 멋진 작별인사를 건네는데 성공하고, 흥행 면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됐다.

한편 폴 워커의 사고는 그가 2013년에 발생한 태풍 피해자들을 위한 자선 활동 이후 이동하던 도중 발생했다는 점, 차에 타기 전의 사진이 공개됐다는 점, 분노의 질주 시리즈 외 별다른 흥행작이 없기 때문에 더욱 작품 활동에 열심히 임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그의 죽음은 특히나 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 오세홍 – 짱구 아빠의 성우

비록 다른 나라(일본 등)의 작품이지만, 워낙 오랜 기간 동안 방영되면서 너무나도 친숙해진 만화들이 있다. ‘짱구는 못 말려’ 시리즈도 아마 그런 만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만화는 유치원생 신짱구,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 밖의 주변인물들의 생활을 코믹하게 표현해낸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다.

'짱구'를 보며 자란 세대들에게 영원한 '짱구 아빠'로 남을 오세홍 성우. [구자형 성우 트위터 캡쳐]

짱구는 못 말려 시리즈는 국내에서만 약 20여 년 동안 비디오, 공중파 방송, 케이블 방송 등 온갖 곳에서 방영됐다. 그런 만큼 젊은 세대들에겐 이 작품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해도 과언은 아닐 터다.

한편 짱구는 못 말려 만화 속의 더빙은 다양한 매체에서도 큰 변화 없이 오래 이어져왔는데, 주인공 짱구의 아빠 ‘신형만’ 역할로는 성우계의 대선배 중 하나인 오세홍 성우가 맡았다. 작중 짱구 아빠는 다소 얼빠진 모습도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가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성애가 돋보이는 캐릭터다. 오세홍 성우는 그런 짱구 아빠 캐릭터를 맡으면서 (당시)어린이들에게 누구보다 다정하고 즐거운 아빠가 돼 줬다.

신형만, 짱구 아빠는 다소 허술하고 바보같은 면이 있지만 짱구에게는 누구보다 믿음직한 아빠다. [짱구는 못 말려 장면]

그러다가 지난 2015년, 언제까지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오세홍 성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네티즌들은 ‘영원한 짱구 아빠가 그리울 거다’,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는 반응을 내놨다. 한편, 고인의 사망 이후 유족에 의하면 오세홍 성우는 병환이 깊어지는 와중에도 “짱구 아빠 역할만큼은 끝까지 맡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에게 짱구 아빠는 그만큼 애착이 가는 캐릭터였다는 뜻일 것이다.

오세홍 성우는 그의 대표작이자 유작이 된 ‘짱구는 못 말려’ 속 ‘짱구 아빠’ 이전과 이후로도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그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할은 ‘아기공룡 둘리’의 마이콜, ‘몬타나 존스’의 알프레드 등이 있다. 특히 둘리의 건넛집 까무잡잡한 총각 마이콜이 부른 ‘라면과 구공탄’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 빈센트 반 고흐 – 까마귀가 나는 밀밭

‘비운의 천재’라는 말이 있다. 걸출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시대, 상황, 환경을 잘못 타고났다고 평가받는 인물에 대해 묘사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아마 시대와 환경 등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졌다면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천재들의 재능이 빛을 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운’이 나쁘게도, 그 조건들이 그리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세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드라마틱한 삶도 그랬다.

빈센트 반 고흐. 현시대에 가장 많이 사랑받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바이오그래피 캡쳐]

고흐는 익히 알려져 있듯 정신질환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 때문에 기행을 하거나 괴팍한 성격을 드러내는 일이 잦았고, 일생의 진정한 반려자나 다름없는 남동생 외의 다른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되어 갔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정신질환과 발작의 가운데에서도 사그러 들지 않았다.

고흐는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면서 지냈다. 그러다 이따금씩 정신질환이 발작으로 이어지면서 강한 우울감에 사로잡혀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는 동생 테오, 가까워진 지인 등으로부터의 지원을 통해 요양 생활과 함께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고흐에게는 우울증, 자기 자신에 대한 비관, 발작 등은 지속적으로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은 중단하질 않았다. 이런 창작열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결국 정신과 신체가 쇠약해져갔고, 스스로에게 권총을 쏴 자살을 하게 됐다.

고흐가 생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라 알려져있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 [wikimedia]

고흐의 유작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field with Crows, 1890)’으로 알려져있다. 이 작품은 요동치는 음울한 하늘과 불길함의 상징인 까마귀 등이 돋보이는데, 일각에서는 자살하기 전 그의 불안정했던 심리가 그림에도 반영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고흐는 생전보다 사후에 더 유명해지고, 그가 남긴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은 인물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오늘날 그의 명성을 하늘에서 그가 지켜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말한다. 극심한 외로움으로 자신을 혼자라 여겼을 그가 먼 후대의 사람들에게 이토록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지켜보고 있기를 바란다.

 

■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단 한 장의 앨범으로 평단의 찬사를 얻어냈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전에 바삐 세상을 뜬 천재적인 가수들이 있다. 1987년 1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매하고 불과 3개월 만에 사고로 목숨을 달리한 가수 유재하 역시 그런 ‘요절한 천재’ 중의 한 명이다.

유재하는 쾌활하고 밝은 듯 하면서도 수줍음이 많은 청년이었다고 한다. [위키백과]

유재하는 순수음악 전공으로 클래식을 배웠지만 대중 음악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남다른 관심이 대중음악을 ‘딴따라’라며 배척했던 당시 순수음악계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중음악으로 이끌었고, 그는 조용필, 김현식 등 유명 가수들과 함께 그룹 활동을 하게 됐다.

청년 유재하의 남다른 재능은 작곡을 통해 빛을 발했지만,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으로 1987년 8월 솔로 앨범을 내놓게 된다. 이 앨범이 대중음악의 격을 한 계단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사랑하기 때문에’다.

그의 첫 솔로앨범이자 유작, '사랑하기 때문에'의 1988년판 음반 재킷.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이 앨범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곡은 아무래도 앨범과 같은 이름의 곡, ‘사랑하기 때문에’다. 유재하는 6분 15초 길이의 곡에 다양한 악기를 접목시켰는데, 이는 클래식 전공이라는 그의 배경에서 기인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까닭은, 그가 특히 당시 기준 대중가요의 전형에서 벗어나 클래식과 가요를 접목한 스타일을 최초로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앨범(곡) 자체의 완성도는 둘째 치고 혁신적인 음악 스타일 도입 시도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 죽음 후에도 남는 것

세상을 떠난 이들은 숱하게 많고, 그들 중에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들도 많았다. 그런 만큼, 지금 세상에 없는 모든 아티스트들에게는 저마다 각각의 유작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 유작을 남기는 것은 예술가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삶의 곳곳에 있는 모든 순간들, 우리가 하는 많은 행동들은 종종 예술만큼, 혹은 그보다 더 값지기도 하다. [Photo by JOHN TOWNER on Unsplash]

그렇게 생각해보면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부러워질 때도 있다. 그들에 비하면 평범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후대에 길이 남을지 모를 예술적 유산을 남길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미친다.

그러나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보면 그 기준은 다소 모호하다. 누가, 무엇을 “이건 예술이고, 이건 예술이 아니야”라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예술이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무언가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표현이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무언가라면, 그것도 예술 또는 예술작품이라 칭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작고한 어느 IT기업 CEO가 생전에 선보인 스마트폰을 사람들은 그의 ‘유작’이라 칭한다. 스마트폰이 어찌 작품일 수 있겠느냐 반문할 수 있지만, 언어에 얽매이지 않고 본다면 스마트폰도 작품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가치있는 뭔가를 남기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에 의해 기억될 것이다. [Photo by David Grandmougin on Unsplash]

더욱 범위를 넓혀보자. 예술이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숫자만큼의 기준으로 구분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한 끼 한 끼를 정성껏 차려내시는 어머니의 밥상이 예술일 수 있고, 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업무일지 역시 예술의 경지에 달한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것도 같지만, 그런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놀라운 일들은 전부가 예술이고, 예술 작품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도 언젠가, 우리의 때가 됐을 때 나름대로의 유작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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