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 방향, 출동 후 40분간 초동대처에 정조준”…소방대 “죄인취급에 자괴감 들어”

29명이 목숨을 잃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관련해 경찰이 제천 소방서와 충북 소방본부를 압수수색하며 부실 대응 논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감신문] 29명이 목숨을 잃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관련해 경찰이 제천 소방서와 충북 소방본부를 압수수색하며 부실 대응 논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화재가 난 스포츠센터의 소유주와 관리인이 구속되자 경찰 수사의 칼날이 소방 지휘부로 향한 것이다. 

소방대가 화재 진화 및 인명 구조에 있어 늑장대처 의혹을 받자 경찰은 참사 당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따져보기 위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소방합동조사단 조사결과 발표 이전만 해도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와 관련해 소방 지휘부의 판단에 대해 사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화재 현장에서 전달된 정보가 무시되고, 20명이 숨진 2층의 구조 요청을 알았음에도 소홀하게 대응한 점 등이 지적을 받자 경찰은 현장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해 수사 방향을 소방 지휘부로 전환했다.

현장에서 구조에 나선 소방대원들에 책임은 없더라도 소방 현장 지휘를 잘못한 지휘관들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나 직무 유기 등의 혐의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경찰은 지난 12일 제천소방서 소속 소방관 6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데 이어 15일에는 이례적으로 제천 소방서와 충북소방본부를 압수수색했다. 특히 수사 방향을 출동 후 40분간의 초동대처에 정조준하고 있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2층 여성 사우나의 창고로 불법 전용돼 막혀버린 비상구 입구에 손길 흔적이 남아 있다. 총 29명의 사망자 중 20명의 사망자가 이 곳에서 발생했다.

제천 화재에 대한 첫 신고가 접수된 것은 지난달 21일 오후 3시 53분으로 제천소방서 선착대는 오후 4시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조대는 4시 33분이 돼서야 2층 여성 사우나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다. 

선착대 도착 후 30여분이 지난 뒤에야 구조대가 2층으로 진입한 것인데, 진입했을 당시 갇혔던 20명은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다. 

경찰은 신고가 접수돼 출동 후 2층에 진입하기까지 40분간 초동대처를 하는데 있어 지휘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규명할 방침이다. 

실제로 유족들은 구조대가 신속하게 2층으로 진입했거나 유리창을 깨 유독 가스가 빠져나가게 조치했더라면 많은 이들이 숨지는 대형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소방 지휘부의 대처에 작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천소방서장은 화재 신고가 접수된 지 19분이 지난 오후 4시 12분 현장에 도착했는데 당시 목격자 등으로부터 '2층에 사람이 많다'는 정보를 수차례 전해 들었음에도 오후 4시 33분이 돼서야 구조대원들에게 2층 진입을 지시했다.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도 마찬가지로 2층 상황에 대한 정보를 들었지만 건물 뒤쪽 비상구를 확인하지 않고, 발화지점이었던 1층 화재 진압과 건물 옆 LPG 탱크 폭발 방지에만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구조에 나선 소방대원들에 책임은 없더라도 소방 현장 지휘를 잘못한 지휘관들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나 직무 유기 등의 혐의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건물 구조 파악이나 적절한 인명 구조를 지휘해야 할 소방 지휘관들의 잘못된 판단과 적절하지 않은 지휘가 참사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압수수색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방 지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됐는지 여부와 40분간의 초동대처가 인명 피해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하며 현장 지휘관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나 직무 유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할 예정이다. 또 주중에 제천소방서장 등 지휘관들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제천 화재 참사를 한 점의 의혹 없이 신속하고 명확하게 조사해 참사 책임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압수수색에 이어 지휘자들에 대한 징계가 이어지며 경찰 소환까지 앞두게 된 소방관들은 착잡함 심경을 나타내고 있다. 죽을힘을 다해 구조에 나섰지만 돌아오는 것은 죄인 취급이라는 설명이다.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사법처리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

한 소방관은 "잘잘못을 엄중히 따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자부심과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일해 왔는데 죄인 취급을 당하니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자괴감마저 든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