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함녕전 남쪽 자리’로 복원…'자격루·흥천사명 동종'도 보존처리 절차 밟아

1938년 일제가 덕수궁 남서쪽 구석으로 이전시킨 광명문(光明門)이 80년 만에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공감신문] 1938년 일제가 덕수궁 남서쪽 구석으로 이전시킨 광명문(光明門)이 80년 만에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80년 전 일제가 이왕가미술관을 개관하면서 함녕전과 떨어진 석조전 맞은편 숲으로 옮긴 광명문이 원래 위치인 함녕전(咸寧殿) 남쪽 자리로 복원되는 것.

문화재청은 덕수궁 광명문의 위치를 복원하는 공사를 올봄에 시작해 연내에 매듭지을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광명문 이전 공사를 시작하기 전 문화재청은 앞서 2016년 이전할 위치의 발굴공사를 진행하며, 문의 자취를 확인했다.

광명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의 외관을 갖추고 있다. 1904년 덕수궁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침전인 함녕전은 소실됐으나 광명문은 함녕전의 남쪽 행각 너머에 있어 다행히 화마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다.

광명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의 외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제가 1930년대 석조전 서관을 증축해 이왕가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광명문을 자신들 입맛에 맞춰 현 위치로 이전하며, 물시계인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1462년에 제작된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을 광명문 내부에 전시했다. 

이 때문에 광명문은 본래 함녕전의 문 역할을 상실하며, 유물이 전시되는 야외 전시관 출입문 역할을 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광명문 이전 공사 시작과 함께 자격루·흥천사명 동종의 보존처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유물 2점을 보존처리하는 필요성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년간 보존처리를 할 예정인데, 유물 2점이 외부에 꽤 노출돼 있었던 상황이라 보존처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유물의 부피가 크고 무게가 무거워 보존처리 장소는 조금 더 고심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제가 옮긴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 역시 광명문과 같은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일제가 옮긴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 역시 광명문과 같은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자격루는 물의 증가량이나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문화재다. 조선 세종 16년(1434년) 경복궁에서 제작됐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현재 덕수궁에 남아 있는 자격루 일부분은 중종 31년(1536년) 창경궁 보루각에 다시 만든 장치의 일부다.

흥천사명 동종은 15세기 최고의 장인들이 함께 만든 공예품이다. 흥천사(興天寺)는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명복을 기원하던 사찰로 서울 중구 정동에 자리했었다.

동종은 흥천사가 16세기에 화재를 겪었을 때도 보존됐으나, 절의 위치가 성북구로 바뀌면서 한동안 방치됐었다. 한 때는 광화문에 설치되기도 했다.

보존처리가 끝나면 자격루는 조선 왕실 유물을 관리하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흥천사명 동종의 행선지는 아직까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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