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대한 우리들의 가학적 오해에 대하여

[공감신문] 6,000,000. 600만. 이건 돈의 액수도 아니요, 어느 유명 셀럽의 팔로워 수도, 도시 인구도 아니다. 어떤 이들이 죽인, 사람의 수다. 

홀로코스트의 실무자, 아이히만은 그 중심에 있었다. 그가 몇 살 때 첫 살해를 시작했는진 모르겠지만, 약 56년을 살았던 그가 태어나자마자 그런 일을 자행했다 가정하면 1년에 약 10만명을 넘게 죽인 셈이 된다. 

하지만 아마 그렇진 않았을 테니, 그는 어느 시기에 집중적인 살인 행각을 벌인 것이다. 일평생을 사람 죽이는 일에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진짜 부지런히 죽인 거다. 대단한 열정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그의 가장 큰 죄는 무사유였다. 그가 본인의 타고난 열정을 다른 데에 썼더라면. 
 

Caravaggio , 1595-1598

누구나 재능을 가진다. 비상한 머리, 예술적 심미안, 무쇠 같은 체력, 균형이 훌륭한 외모, 경제 감각, 공감능력 같이- 부단한 노력 역시 재능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재능을 허투루 쓴다. 손에 쥔 무기를 잘못 휘두르는 것이다. 무기를, 정말 무기로 써서 그러하다. 요즘 인간들은 무기 개발의 목적이 방어라 한다. 하지만 보는 순간 몸이 돌처럼 굳어버리는 메두사 머리가 달린 아테나 여신의 방패가, 과연 방어만을 위한 방패라 할 수 있을까? 

세기 최고의 무기는 단연, 핵이다. 신이 만든 게 아니라서 신도 어쩌지 못한단다. 지구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인간은 스스로 이런 핵 개발이 치명적 실수였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과학 발전에 대하여 혐오감을 갖기도 한다. 종교에 심취한 이들은 다윈의 <종의 기원> 같은 진화생물학에 귀를 닫고 사탄 취급한다. 물리학은 신에 대한 도전과 같이 여겨진다. 이미 인간과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성서에 다 나와 있는데, 왜 가설을 세우냐면서. 

하지만 이게 그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업무는 소설가들처럼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이가 있다면, 소설가들처럼 맘껏 비유하지 못하고 xyz같은 한정된 어휘력을 구사해야한다는 것. 대신 여러 번 반복해서 증명해야하기에 자기 작품에 대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심지어는 자기 작품을 계속 우려먹을수록 영광이 쇠퇴하는 소설가와는 달리- 더욱 추앙을 받는다는 게 좀 다르다. 소설가(예술가)들은 자기 자신이나 평론가 같은 인간과 싸웠다면, 과학자들은 신과 싸웠다. 

사랑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수식 : 2□ + 2△ + 2○ + 2V + 8< = LOVE

사실 혁명적인 발견을 한 과학자들의 삶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물론 잘 먹고 잘살았지만, 업적에 비하면 소박했다. 그들의 포커스는 개츠비 같은 파티 쪽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많은 과학자들이 바람둥이였던 건 사실이지만, ‘저 여자는 어떨까’하는 마음도 호기심이니 어쩌겠는가. 지구는 돈다면서 목숨까지 거는데 얼마나 많은 사랑의 맹세를 던졌을까,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휴, 누가 말려. 

우리가 과학을 체감하는 건 일상에서 경험할 때인데, 그건 대부분 기술과 결합된 형태다. 이를테면 ‘토마토’라는 과학이 ‘소스’기술을 만나서 파스타가 되고- 우린 그렇게 토마토의 존재를 알게 된 거다. ‘소젖’이라는 과학이 ‘발효’기술을 만나 치즈가 되고 우린 소젖의 존재도 알게 된 거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걸 원소 기호로 풀어내면 뭔지 모르지만, 기술은 알게끔 해준다. 삶에 접목 시켜주는 것이다. 

여성의 삶을 바꾼 최고의 발명품 세 가지는 세탁기, 생리대, 그리고 피임약(혹은 콘돔)이다. 그리고 기술은 점점 여성들에게 더욱 편리한 형태를 제공하려한다. 여성들이 여기에 한 평생 지갑을 열 것이므로. 

결국, 돈이다. 과학도, 기술도, 자본이 없었다면 우리에겐 안드로메다 이야기였을 거다. 당연히 지갑이 많은 곳에 자본이 모인다. 이런 문명의 혜택엔 투자가 있었고, 인구 절반인 여자들은 그 돈을 나눠낼 수 있었기에 이 모든 걸 누리게 된 거다. 암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암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 거였지만 요즘은 아니다. 당연히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수술비 부담이 이전보다 적어진 것 역시, 여기에 돈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다. 치료법을 개발할 가치가 충분한, 시장이므로. 

이 과학의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누구에게 어떻게 팔지 결국, 자본가의 손에 달렸다. 끼많은 유망주를 어떤 컨셉, 어떤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어필해 보일 지 프로듀서 손에 달린 것처럼. 지구를 날려버릴 수 있는 핵 버튼은 과학자의 실험실에 있지 않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의 집무실 책상 위에 있으며, 그것이 또 권력을 강화시킨다. 

그러니 사실 과학 자체는 무죄다. 기술은? 애매하다. 땅에 떨어진 사과 하나에도 상상력이 폭발하는 과학자들에겐 온 세상이 가설 창작 욕구의 근원이다. 어떤 이는 자신이 왜 궁금해 하는 지도 궁금해 했다. 

 

‘왜 그런지 궁금해. 왜 궁금한지가 궁금해. 왜 궁금한 질 왜 궁금해 하는 지가 왜 궁금한지 나는 궁금해.’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대학시절 쓴 시)

 

어차피 이들은 못 말리는 작자들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말리진 못해도 선택을 할 수가 있을 텐데, 기술이 냄새를 풍겨낸다는 거다.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보다 강력한, 돈 냄새... 핵무기도 그러했다, 비극의 시작.

결국 용도가 중요하다. 세기의 악녀들의 타고난 아름다움은 죄가 아니다. 악용한 게 죄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실제 인물인 천재 수학자 앨런 튜닝은 2차 대전 때 암호를 해독해서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수학은 정의롭지도, 정의롭지 않지도 않지만- 그의 용도는 정의로웠다. 그걸 허가해준 건 국가 권력이었다. 권력과 자본은 용도의 사용이나 변경을 허락하며 심지어 홍보하기도 한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중에서

어느 곳의 주민들도 원자력 발전소를 반기지 않는다. 원자력, 핵물질이다. 체르노빌처럼 작은 실수하나로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기에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어떠했었나. 기술과 권력, 모두 끼리끼리였다. 피해자는 생존을 위협받는 주민들과 또 다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과학이었다. 서로의 오해는 깊어져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798회 중에서

아서 에딩턴은 지혜와 과학은 별개라 하며 지혜롭지 않으면 과학 때문에 피를 본댔다. 아니다. 사실 지혜롭기에, 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너스가 에로스에게 성애(性愛)를 물려주었듯, 올림푸스 신들은 자기의 여러 능력들을 자식에게 하나씩 세습했었다. 하지만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네는 안타깝게도 처녀였다. 그래서 자기 능력을 물려줄 자식이 없었고- 전쟁과 지혜는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녀가 수호하던 아테나 주민들은 생각했다. 지혜롭다고 판단되는 일에는 전쟁을 해도 된다, 정의로운 일엔 전쟁을 불사한다는 게, 서구 정신이다. 유럽과 이슬람 지역 문화권에 자리 잡은 이 정신이 지속되는 한, 무기는 계속 팔려나갈 것이다. 정의로운 자본가들에 의하여. 

Gustav Klimt(1898) <미네르바(팔라스 아테나)>

그렇다면 요즘은 뭐가 가장 잘 팔릴까. 4차 산업 혁명, 그리고 ‘페미니즘’이다. 요즘 국내에서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이 엄청 팔리고 있다. 그 뿐인가? 관련 강의나 영화, 상징을 드러내는 상품들도 팔린다. 페미니즘으로 돈을 버는 사람 중엔, 페미니스트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한 젊은이에겐, 그 속에 쌓인 사회에 대한 분노를 살랑여서 페미니즘이란 포장지를 제시한다. 감정의 쓰레기통을 파는 누군가는 지금도 어디선가 오호호! 웃고 있을 거다. 자기 권리를 보호하려는 본질은, 돈을 쥐려는 이들 손에 흐려진 것이다. 그 피해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몇몇 남자들은 ‘보슬아치’라는 말을 쓰며 여자들이 성별을 무기삼아 벼슬아치처럼 군다고 말한다. 직장에서는 직급으로 상사들이 갑질을 한다고 한다. 너에게 사랑을 말하며 어젯밤 같이 있자고 조른 건 다 술 때문이었단다. 젠더와 직급, 그리고 술에겐 잘못이 없다. 무기로 삼은 우리 탓이다. 서로 찌르고 상처받고 미워하고 쉽게 탓하며- 우린 마치 핵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처럼 혐오에 노출되어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요즘과 같은 실업 시대가 거듭 될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나’라는 과학을 어떤 기술로 요리할지, 그래서 어떻게 시장과 대중에 나올지- 이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은, 과학의 이미지도 책임져주지 않았었기에. 

그래서 난, 무기를 엄청 많이 만들어놓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나의 과학을 지키는 데만 쓰는 무기로! 다양한 자본이 탐내는 기술들을 탑재해서 어떤 이미지의 과학이 될지 고를 수 있기를! 나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과학이고 싶다. 신비스럽고 가본 적 없지만 늘 그리운, 우주처럼. 그러니 내가 가지러 갈 때까지 무기여, 제발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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