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공감신문] 선생님들은 말씀하셨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 눈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나는 문제를 읽어도 답을 볼 줄 몰랐다. 어떤 문제지는 한국말인데 뭔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않아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구나 했었다. 어른이 되고나니 그래도 저건 쉬웠구나 싶다. 이젠 문제를 이해하더라도 답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그는 자신만의 문제 해결 알고리즘-Feynman Algorithm-을 내놓았었다. ‘첫째, 문제를 쓴다. 둘째, 곰곰이 생각한다. 셋째, 답을 쓴다’ ... 핵소름? 이후 학계에서 밝혀지기로 이 알고리즘은 파인만에게만 통한다는 임상실험 결과가, 풉!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개인과 사회, 국가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는 정치인들도 그런 것 같아서다. 자신의 문제, 자신을 둘러싼 친인척들의 문제와 굴레, 그리고 그들이 정말 고민해야할 국민들에게 닥친 문제가 그들은 무엇인지 이해한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연설만 들어봐도 그러하다. 

남 탓하는 여야, 무늬뿐인 취약계층의 노동 시간 규제와 평등권,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한숨, 이게 나라냐 하는 문제들. 

...어머, 정말 알고 계시네? 그래서 묻고 싶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유행어를 인용해보겠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필자의 그림

참 쉽다, 싶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첫 번째 태도는 바로 경청이다. 누군가의 문제를 알고 있다는 건 그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었기에 가능한 일일 거다. 그리고 거기에 얼마나 고생했느냐며 공감까지 해주며 손을 잡아준다면, 금세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그 온도에 마음이 녹아내릴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은 예술가가 아니다. 그들은 국민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넘어,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기는커녕 국민들의 문제를 악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국민들의 버겁고 비통한 심경을 이야기하며, 그들은 그 동안에 누가 잘못해서 이러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 원인이 자신은 아니다. 마음이 녹아내린 사람들은 그에게 맞장구를 친다. 그렇지만 그의 말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였는가? 이런 조삼모사식의 화법이 여태껏 통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왜, 속고 또 계속 속는지 입에 발린 위로뿐인 그들의 마이크에- 답안은 없고 문제만 읽어대며 ‘이게 되게 어렵죠?’하는 화법에 지지를 보내는 지 묻고 싶다. 

놀라웠다. 지난 1일 오전 연설에서 김모 의원은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라고 묻는다고 했다. 그랬다. 나도 2016년 겨울, 정말 많이 물었던 것 같다. 이게 나라가 맞느냐고. 물론 처음엔 ‘이거 실화냐?’ 싶은 심정이었다.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왕국 같았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와 거리가 멀고 TV만 보시는 어르신들로 하여금, ‘아 저건 현 정부를 향하는 화살이구나-’라고 착각하게 할 만한 교묘한 인용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게 나라냐’고 물었던 건 박근혜 정부였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들의 탄식이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광화문에서 울려 퍼지던 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3절 가사에 ‘새누리당아 너희도 추악한 공범이 아니더냐? 쇼하지 마라’라는 가사가 나온다. 당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바뀐 것이 아니요, 그들의 행적이 바뀐 것도 아니다. 그들이 모시고 지지했던 대통령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게 나라냐’를 입에 올리다니, 이거 정말 실화냐 싶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연설에서, 얼마 전 뉴욕 타임 스퀘어에 걸렸던 문재인 대통령 생일 광고를 언급했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수 천 만원을 들여 타임 스퀘어에 대통령 생일 광고를 걸 일이냐고. 

광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기엔 한글로 ‘해피이니데이’라고 적혀있다. 가만 보면 이니*** 코스메틱 브랜드의 세일 기간 같은 귀여운 문구다. 대통령의 팬클럽을 자처하는 지지자들은 SNS에 #해피_‘문라이즈데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 광고는 나랏돈으로 한 게 아니었다. 지지자들의 사비로 벌인 활동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생일을 축하하는 타임 스퀘어 광고

물론 역대 이런 일은 없었다. 외국 어느 도심에, 국내 지하철 역사 내부에 광고가 걸리고 젊은 지지자들이 SNS등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정치인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는 일. 하지만 방식만 다를 뿐이지, 이전에도 ‘팬덤’은 있었다. 누군가는 심지어 이것을 국가 예산으로 하는 것에도 찬성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994년 ‘삶의 목표는 아버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가 대통령 재임 시절 벌이려던 사업이 무엇인가. 박정희 기념사업이었다. 2017년 구미시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48억원의 예산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었다. 그중 28억원은 기념 뮤지컬 제작비였다. 이 뿐이 아니다. 역사관 건립 및 기념사업 예산으로 총 255억원을 책정했었다. 물론 국민들의 혈세다.

그런데 지금, 저 예산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개인 사비로 전광판에 하루 축하 광고가 걸렸다고 이럴 일인가. ‘이게 나라냐’ 싶은 행보들은 절대 따르고 싶지 않은 게 생일 축하 광고주들의 심정이었을 거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트위터

사실 난 문재인 대통령의 엄청난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점점 그가 좋아지는 중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니다. 흑 아니면 백, 좌 아니면 우, 이렇게 이분법적인 논리로 접근한 것은 그들이었다. 단지 이번 연설을 듣고 국민들의 고민을 왜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지, 자신들의 파티(party: 정당)가 벌인 파티의 잔재를 왜 슬며시 다른 사람 쪽으로 떠미는 건지 비겁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쓰는 글이다. 

물론 자유한국당 의원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그중에선 지지하고 싶은 일부의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정치 보복’을 말하기 전에, 그것이 과연 합리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단지 현 정부를 깎아내리기 위한 발언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누가? 우리가. 

그들의 조삼모사식 화법은 바뀌지 않을 것 같으니. 

몇 년 전 친구 동생이 고등학생이었는데,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들었었다. 친구는 자기도 강남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동생 이야길 들으니 요즘엔 더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함께 출마한 후보 학생 중에선, 수 백 만원을 들여 명문대 학생에게 연설문을 구입했더라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그 연설문은 어땠을까? 그 돈을 들일 만큼 기막히게 참신했을까? 만일 지금 정치인들이 하는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더라면 굳이 그 돈을 쓸 필요는 없었을 거 같은데... 이야기 구조가 너무 뻔하잖아.

보수적인 게 그들의 성향이니 화법 역시 보수적으로 고수하겠다면야, 낸들 어찌하리. 그래도 젊은 세대들에게 잠시 잊을 뻔했던 기억들을 상기시켜주어 감사할 뿐이다. ‘이게 나라냐’하고 외칠 수밖에 없던 어제- 그리고 ‘우리가 빠지면 파티가 아니지’스러운 기념비적인 255억원의 예산 책정을. 

* 본 칼럼은 당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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