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일종의 계속되는 대화이고, 그 대화는 보통 그렇듯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로버트 허친스

[공감신문] 예전에 한 친구가 해준 얘기가 생각난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국과 미국의 교육을 어느 정도 비교 가능한 사람이란 얘기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그가 다니던 학교만의 경우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친구는 대학에서 미국 관련된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다고 했다. 그 수업을 신청한 학생 대부분은 유학생이었으며, 전반적인 내용은 미국이 얼마나 ‘나쁜’ 나라인지에 대해서였다고. 

그래서 그는 미국이 무서운 나라라고 했다. 미국에 F1비자(유학비자)로 가면, 법적으로 아르바이트가 금지된다. 즉, 자기네 나라에 공부하러 왔으면 돈만 쓰고 가라는 얘기다. 근데 그러한 유학생들에게 이 나라의 치부를 훤히 드러내는 셈이다. 마치 어떤 인기 많은 남자가, ‘나 원래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얼마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미국이 아닌 독일에게.

Johann Wolfgang Goethe, Lettera a Charlotte Von Stein, 1781

동네 산책을 할 때마다, 남산 소월길 한 복판에 자리한 ‘Goethe Institute’가 대체 뭐하는 곳인지 궁금했었다. ‘Goethe 괴테’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심오한 풍미- 그리고 쇼윈도 속 좁은 책장 틈에서 무언가를 탐닉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강한 호기심이 일게 했다. 그곳은 주한 독일문화원이었다. 몇 주 전 기관 홈페이지를 들어갔다가 우연히, 곧 어느 행사가 열릴 거란 소식을 접하게 됐었다.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일’을 맞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그리고 독일 문화원에서 펼쳐지는 3일 간의 행사랬다. 첫날은 초청 행사가 있고, 둘째 날은 홀로코스트 전문가의 강연, 마지막 날엔 음악회가 있을 예정이랬다. 한국에서 태어나 여기에서만 교육을 받았던 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깊게 알 기회가 없었다. 단지 출판물이나 영화로만 접할 뿐. ‘야드바셈’이라는 홀로코스트 관련 학습기관에서 미국인 전문가가 오는 것이며, 통역 지원도 할 예정이랬다. 그리고 무료였다. 이건 기회다 싶었다.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이 행사가 벌어지는 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익히 알려진 대로 홀로코스트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이,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한국’에서 굳이 이런 행사를 주최할 일인가? 우리도 일제에게 그들이 괴롭혔던 유태인, 집시, 동성애자들과 비슷한 핍박을 받긴 했었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의 향후 태도는 확연하게 다르니, 가기 전부터 이미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전에도 독일은 자신들이 해온 일들을 모두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사과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보았던 유태인 학살이나 2차 세계 대전 관련 영화들도 독일 작품이 정말 많았으니까. 그들은 미국 영화처럼 전쟁을 미화시키거나 영웅처럼 표현하지도 않았다.  

주한 독일 문화원 홀로코스트 추모 행사 강연 중에

괴테 인스티튜트 지하 1층 강의실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국적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백인들도 반 정도 있었다. 그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난 자리에 앉자마자 벌써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큰 스크린으로 자극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봐야할 생각을 하니 눈을 질끈 감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말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감정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막상 강연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범법국인 독일이, 부러워졌다. 그들의 범죄 전적이 부러운 건 절대 아니다. 그들의 살아있는 교육이 정말 부러웠다. 정말 그들의 나라에서 ‘괴테’와 같은 인물이 나온 게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주한 독일 문화원’이라며 자신들의 국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괴테’로 표현한 것도 엄청난 프라이드였구나, 싶다. 그들은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교육과 문화가 얼마나 대단한 지...! 그들은 수많은 것이 아닌 위대한 사람 한명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던 것이다.

역사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역사 교육은 현재이고 미래였다. 우리는 왜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 지 아주 어린 시절 배웠었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지혜롭게 바라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암기의 여정 속에서, 한국사를 통해 남은 건 얼마나 있을까?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이렇게나 많은 희생이 있었다... 지리적인 불리함 때문에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침략을 받았었다... 이렇게 두드러지는 몇 가지 정도? 무려 10년의 교육과정 동안.

하지만 이날 내가 2시간 동안 들은 강연은, 다른 차원이었다. 나를 피곤하게 할 것 같았던 피해자들의 자극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시작부터 강연자는, 이 홀로코스트 사태에 범죄자, 피해자, 방관자가 있었다며 이런 관점으로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그녀는 학살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홀로코스트와 일반적인 학살의 차이점도 말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에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했다. 요즘엔 총과 같은 무기로만 학살이 행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홀로코스트의 자극적인 사진이 아닌 전혀 다른 사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그녀의 리드에 따라 ‘이 기자의 입장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했다. 어느 사고 현장에서 누군가는 활활 불에 타는 건물을 찍을 수도, 다른 각도로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찍을 수도, 혹은 찍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 지금도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면, 나의 피사체는 무엇이 될까? 나는 방관자인가, 아닌가? 방관자는 누구의 편에 선 사람인가, 서지 않은 사람인가- 이런 질문이 던져지는 자리였다.

홀로코스트의 범법국인 독일뿐만이 아니었으며, 유태인만이 피해자가 아니었다. 유태인 사회에서 ‘가계’가 중요한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우리 모두가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세계 2차 대전 당시

강연이 끝난 뒤, 한국어와 영어 통역이 어우러져 활발한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던졌다. 어떤 한국 남자 분은, 홀로코스트 관련 전문 교육 기관인 야드바셈이 한국엔 설립될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것이 비단 독일-유태인만의 사건이 아니며 학살은 다양한 형식으로 어디서나 이루어질 수 있고, 이런 것들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질문에 명쾌한 답을 던지던 강연자는, ‘그런 권한은 나에게 없다’며 멋쩍게 웃었다. 다음날 오전 6시에 이스라엘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그녀는 ‘오늘 여러분들의 뜨거운 눈빛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오해 보이던 ‘Goethe’의 지하에서 빠져나와, ‘Holocaust’(홀로코스트)라는 글씨가 적힌 프로그램을 커피처럼 들고는 따뜻한 버스에 올랐다. 괴테... 다른 나라 독일 문화원의 이름도 괴테일까? 독일엔 니체도, 헤겔도, 쇼펜하우어, 칸트도, 베토벤도 있다. 지금도 독일에선 왠지 몇 명의 괴테와 니체, 베토벤이 동시대를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자라나는 중일 것이다. 흥! 부러웠다. 이들의 교육이.

의도적인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대해서 명확하진 않으나, 그들이 처음부터 이름붙인 방식 자체에 의도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학을 들었던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들의 교육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미국 유학생 모두가 나에게 그 친구와 같은 이야길 한건 아니었듯이, 독일에서 자란 모두가 이런 교육을 받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다큐에서 독일의 교육에 대해서 본 적이 있었는데, 문제 해결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접근하는 탐구 자세’에 주안점을 둔다고 했었다. 적어도 이건, 우리가 왜 공부하는 가에 대한 답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정규 학업 코스를 마친 후에, 수식은 까먹어도 생각하는 방식- 즉, 사고방식은 남을 테니 이거야말로 ‘남는 교육’이 아니겠는가. 

어릴 적 나는 왜 수학을 공부하는 지, 왜 물리학을 공부하는 지, 왜 문학을 공부하는지 알지 못한 채 거기에 매달렸던 것 같다. 물론 단기적으로 ‘왜’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였다. 나는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수학과 물리학이 얼마나 총체적이고 철학적인 학문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많은 학자들이 궁극적으로 궁금해 하던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어릴 적에 더 열심히해볼걸 후회스러웠다.

어떤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때,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하여 크게 고민하지 않은, 아니 고민할 기회를 주지 않은 건 어린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들은 ‘절대적’인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했으니까. 그러나 이젠 알려주어야 하지 않나. 우리도 살아있는 탐구, 이 시간에도 지속되는 역사 교육, 다양한 토론과 해석이 있어야한다. 

사회 속 교육의 기능은 꽤나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 안에서는 교육이 단지 사회를 통합시키고 개인의 지위만을 위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대체할 무언가가 나온다거나, 기능이 작아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게 된다. 요즘 시대에 발전하지 않는 다는 것은 곧, 쇠퇴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담론’이 없어서 남의 나라 담론을 빌려와 쓴다는 얘길 들었었다. 이건 약 2주전 프랑스 문화원 주최 <사유의 밤> 행사에서 한국의 철학자가 했던 말이다. 그는 ‘오이디푸스 증후군’은 우리 철학이 아니라했다.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온다. 그래서 우리나라 애들을 다 오이디푸스 증후군 환자로 만들어버렸다고, 풉! 우리 것이 없으니 너무도 쉽게 잘 빨아들인다. 그는 정약용 이후에 우리나라의 철학은 끝났다고 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니체와 베토벤, 괴테와 같은 역량의 인물이 태어났더라면, 그들은 ‘프레드리히 니체’ 같은 니체, ‘루트비히 판 베토벤’ 같은 베토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같은 괴테가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김니체, 박토벤, 이괴테가 될 확률이 더욱 높았을 거라 감히 추측해본다. 

괴테는 ‘살아있는 일에 전념하라’,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사고하라’고 했다. 나는 괴테의 언어는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시대를 초월한 그의 정신을 본받아 스스로 배우려할 것이다. 

교육의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독일 당신들은 국가적인 홍보성도 짙네요!’라 말하고 싶다. 굉장히 유혹적이었다고. 그리고 난 완전, 뿅 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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