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이들 대부분은 아마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모니터 속, 숨을 죽일 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당해본 경험.
시대가 흐르고 게임의 그래픽이 개선되어갈수록 그런 경험을 주는 게임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게임 속에서 온갖 풍경들을 마주한다.
어떤 때는 조용한 숲 속의 오솔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햇빛을 머금어 반짝이는 바닷물로 풍덩 뛰어들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푸르스름한 하늘에 일렁이는 오로라를 감상해보기도 하며, 산의 능성에 지는 석양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도 있다.
그것뿐일까? 우리는 게임을 통해 평소 가보지 못한 장소, 가보지 못한 공간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본다. 유명한 고층빌딩 옥상에서 범죄자들로 가득찬 도시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버킷리스트에만 올려뒀을 뿐인 세계 문화유산을 찾아가 보거나, 개발자들의 상상력에 의해 구현된 다른 시대의 어딘가를 거닐어볼 수도 있다.
게임 속이라 해도, 우리는 그런 풍경들에 매료된다. 그렇다. 게이머들은 간접적인 여행자다. 우리가 가본 곳, 걸어본 길, 달리고, 뛰고, 앉고, 누워봤던 곳들은 무수하게 많다.
오늘의 교양공감 포스트는 우리가 구해낸 아름다운 어느 세계, 멋진 풍경으로 가슴 깊이 남은 장소들을 다시 찾아가 보는 시간이다. 소개할 게임들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모두가 아름답고 멋지지만, 고심 끝에 그 중에서 꼽아봤으니 함께 감상해주시길 바란다.
※ 플레이어가 ‘직접 가볼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한다는 주제 특성상 ‘오픈월드’ 게임 중에서 찾아봤다. 다른 장르의 게임 중 특별히 인상 깊었던 아름다운 곳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바란다.
※ 소개할 게임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있다. 아래 소제목에 게임명을 표기해뒀으니, 스포일러를 피하고자하는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란다.
■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하이 흐로스가
이번 포스트 주제에 대해 들었을 때 아마 많은 분들이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이하 스카이림)’을 떠올리셨을 것이다. 방대한 오픈월드로 구현된 스카이림 세계 곳곳에는 눈길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비경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으니까.
사실 스카이림은 ‘절경 명소’를 하나만 꼽기가 매우 어렵다. 심심하면 하늘에서 오로라가 춤 추고, 인적 드문 북부 대륙의 눈부신 설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어느 곳이 절경이 아니겠는가. 사후세계에 해당하는 ‘소븐가드(Sovngarde)’의 요동치는 하늘 역시 비경이고, 한적한 시골마을 ‘리버우드(Riverwood)’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굳이 한 군데만 꼽자면 기자는 ‘세상의 목젖(Throat of the World)’이라 불리는 산을 택하고 싶다.
이 눈 덮인 설산은 게임의 메인 퀘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초반에 방문하게 된다. 천지를 울리는 목소리로 누군가가 플레이어를 부르기 때문이다. 안내에 따라 ‘아이바스테드’라는 외딴 마을에 당도하는 과정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데, 마을에서 산을 오르는 ‘7000 계단’의 순례길에도 곳곳에 괴물과 들짐승 등이 존재한다. 플레이어에겐 게임 시작 후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모험을 나서는 셈.
한참동안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산 중턱에서 스카이림 대륙을 내려다보게 된다. 워낙 높은 곳이기 때문에 상당히 멀리까지 볼 수 있으며, 세계 곳곳을 휘감은 운무를 비롯한 여러 장관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서부 몰락지대
벌써 10년을 훌쩍 넘긴 장수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도 드넓은 맵 만큼 숱한 절경과 비경들이 존재한다. 특히 이 게임은 확장팩이 출시될 때마다 새로운 지역들이 추가되는데, 과거에 구현된 지역과 최근에 구현된 지역을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달라 많은 것을 느껴지게 한다.
기본적으로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곳은 행성 ‘아제로스(Azeroth)’이며, 그 중에서도 플레이어들이 자주 보게 되는 곳은 동쪽의 ‘동부왕국’과 서쪽의 ‘칼림도어’ 두 대륙이다. 이 중에서, 동부왕국의 ‘서부 몰락지대’ 지역은 오랜 기간 동안 ‘와저씨’들이 새해를 맞이하는 명소로 사랑받아왔다.
일명 ‘와돋이’, 게임 속에서 새해 첫 해를 맞이하는 이 행사는 아직까지도 국내 와우 유저들의 전통처럼 여겨지고 있다. 잠깐, ‘서부’ 몰락지대라더니, 어째서 해가 ‘뜨느냐’고? 이 행성은 서쪽에서 해가 뜬단다. 이곳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등대에는 매년 1월 1일마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몰려든다.
‘얼라이언스’와 ‘호드’, 두 세력의 전쟁이 주요 테마인 이 게임에서도 와돋이의 순간만큼은 평화가 찾아온다. 황금빛으로 물든 대지에 해가 내리쬐는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해돋이처럼, 와돋이를 위해 이곳을 찾는 많은 플레이어들도 나름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득템이라던가… 등등.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회생의 사당 출구
지난 1일 국내에도 한글로 정식 발매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BOTW)’는 시리즈 최초로 오픈월드 방식을 채용했다. 이것이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 게임은 2017년 최대 ‘GOTY(올해의 게임)’를 수상하면서 명작 반열에 올랐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 눈에 보이는 모든 장소에 갈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흔한 오픈월드 게임처럼 ‘보이지 않는 벽’이나 ‘가파른 경사’ 탓에 갈 수 없는 장소가 아예 없다는 얘기다. 그런 특징은 게임의 배경인 ‘하이랄 왕국’ 곳곳 풍경과 맞물리면서 이 세계를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거의 모든 장소들은 모두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BOTW를 경험해본 이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꼽는 게임 속 ‘명소’는 아무래도 게임 극초반부, ‘회생의 사당’ 밖의 언덕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이 “눈을 뜨세요…” 라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고, 바깥으로 달려 나가 처음으로 '야생의 숨결'을 들이마시는 바로 그 장소.
긴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아름다운 하이랄 왕국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으로 달려간다. 이때 들려오는 피아노곡은 플레이어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뒤이어 우측 하단에 게임 로고가 나타나고, 플레이어는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다 가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휩싸인다. 이밖에도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장소들은 아름다운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 고스트 리콘: 와일드 랜드-코아니
‘고스트 리콘: 와일드 랜드(이하 고스트 리콘)’는 남미의 볼리비아가 마약 카르텔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다는 설정을 택한 오픈월드 TPS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인 고스트 리콘 분대원이 돼 볼리비아를 장악한 카르텔을 와해시켜야 한다.
이 게임의 배경은 볼리비아지만, 아무래도 소재 특성상 볼리비아 정부의 반발도 컸던 탓에 게임 속에 등장하는 지명만큼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해서 표현됐다. 만약 볼리비아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생소한 지명 탓에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여러분은 볼리비아를 떠올리면 어떤 곳이 먼저 떠오르시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이한 곳? 태양의 섬? 아마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많은 분들이 사진으로만 접해보셨을 이 사막도 게임 속에 구현돼 있다. ‘코아니’로 이름만 바뀐 채.
이곳은 우리가 꿈꿨던 모습대로 드넓고 새하얀 소금평야가 펼쳐져 있다. 비가 내리면 하늘이 반사돼 보이는 그 절경도 그대로다. 만약 게임 속에서 맑은 날씨에 이곳을 찾게 된다면,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려 보시길 바란다. 비록 육안으로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직접 볼리비아에 가기 전 한 번쯤 가상의 투어를 떠나볼 가치는 충분할 테니까.
■ 더 위쳐3: 와일드 헌트-투생 공국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게임은 대부분 낭만이 넘치는 왕국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중세시대 유럽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지저분하고, 음습하며, 그리 환상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더 위쳐3: 와일드 헌트(이하 위쳐3)’에 등장하는 여러 도시, 마을, 변경의 모습도 그러하다. 제대로 씻지도 않는 평민들이 연신 가래침을 뱉는 소리가 들려오고, 사기꾼과 강도, 시체, 매춘부들이 곳곳에 들끓는다. 그런 비참하고 암울한 상황은 전쟁 중이라는 시기와 맞물려 황량함을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게임의 두 번째 확장팩 ‘블러드 앤 와인’에서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투생 공국’의 모습은 또 다르다. 지저분하고 음울한 벨렌, 바닷바람과 혹한의 날씨가 두드러지는 거친 스켈리게 군도에서 ‘명예’니 ‘신뢰’ 따위의 말들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투생 공국은 동화 속에 나올 것처럼 쨍한 색감이 아름다운 곳이며, 이곳의 기사들은 그간 이 게임 속에서 봐 왔던 여느 속물들과 다르게 명예의 미덕을 알고 온정을 베푸는 이들이다.
본작과 확장팩의 이런 이질감이 오히려 유저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어필한 듯 하다. 투생 공국 인근은 초원의 녹색과 하늘의 푸른색, 그리고 선명한 주황빛 지붕 등이 어우러지며 동화 속의 왕국을 떠올리게 한다. 본작에서 내내 칙칙한 무채색의 경치만을 보아 왔던 것과 대조되는 풍경이다.
※ '투생 공국'은 확장팩을 구매해야만 방문할 수 있다.
■ 게임으로 떠나는 여행
오늘 소개해드린 게임들 속에는 기자가 꼽은 명소 외에도 수많은 ‘포토 스팟’들이 존재한다. 또한, 이밖에도 온갖 게임들 속에 무수히 많은 명소, 절경, 비경들이 있다.
비록 모니터 너머의 그 풍경은 1과 0으로 이뤄진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하겠지만, 빼어난 묘사로 인해 플레이어들은 감동을 받는다. ‘스크린샷’ 버튼을 연타하게끔 만든다.
그런 명소들은 게임 속의 이야기나 분위기, 등장인물들이나 배경음악 등과 어우러지면서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을 ‘종합 예술’이라 부르는 것일지 모른다.
교양공감팀이 소개한 게임, 장소들 이외에도 여러분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감명 깊은 장소, 아름다운 경치들이 있다면 소개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