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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정세음 칼럼] 고대의 시간 위를 걷다-떼오띠우아깐, 멕시코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에서 바라본 달의 피라미드

[공감신문] 오전 아홉 시가 되자마자 뻴리뻬의 요란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한낮이 되기 전에 가야 한다는 그의 말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멕시코에 도착한지 이틀째. 아직 몸이 뻑적지근했다. 다시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선크림, 물병, 선글라스 꼭 챙겨!” 뻴리뻬는 안 그러면 오늘 하루 상상이상으로 힘들 거라며 겁을 줬다. 오늘은 뻴리뻬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유적인 떼오띠우아깐에 가기로 한 날이다. 바나나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뻴리뻬의 차에 올랐다.

십여 분간 달리자, 창밖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였다.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지면에서 산 위쪽까지 위태롭게 솟아있었다. 뻴리뻬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라며, 심지어 산꼭대기에도 집들이 있다고 했다.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집에 가느냐고 물으니, 버스는 중간 지점이 종점이라 그다음부터는 걸어 올라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뻴리뻬는 멕시코 전체 인구의 약 십 퍼센트의 부자들이 대부분의 부를 소유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다, 멕시코의 범죄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사회. 어쩌면 우리네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지나쳐가는 콘크리트 건물들의 잔상이 계속해서 머리에 남았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한 떼오띠우아깐은 어느 때 만들어졌고 폐허가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살 곳을 찾아 북에서 내려온 아즈텍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명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떼오띠우아깐 문명의 흔적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들은 '신의 도시'라는 의미로 이곳을 ‘떼오띠우아깐’이라고 명명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커다란 정방형의 구조물 라 씨우다델라(La Ciudadela)가 보였다. 이곳은 사제들과 관리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높은 계급(사제, 관리, 군인 등)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계급은 낮은 곳에서 살았다. 계급의 차이는 예나 지금이나 높낮이로 드러나는 듯하다.

라 씨우다델라의 뒤편엔 께쌀꼬아뜰 신전이 있다. ‘께쌀꼬아뜰’이란 ‘깃털 달린 뱀’이라는 뜻으로, 아즈텍 사람들이 섬기는 하늘과 창조의 신이다. 신전의 계단 양옆에는 께쌀꼬아뜰 조각과 비의 신인 뜰랄록 조각이 있다. 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던 고대인들에겐 비의 신이 신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비! 지금 나 또한 비가 간절했다. 뻴리뻬가 아침에 했던 당부가 떠올랐다. ‘선크림, 물병, 선글라스 꼭 챙겨!’ 나와 S는 떼오띠우아깐을 걷는 내내 헉헉대며 연신 물을 들이켰다. 그때마다 뺄리뻬가 웃었는데, 그는 우리가 조금 더 늦게 왔다면 일사병으로 쓰러졌을지 모른다며 농담을 했다(지금 생각해보니 농담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 피라미드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는 뻴리뻬의 말에 머리가 핑 돌았다.

죽은 자들의 길

우리는 그늘이라곤 보이지 않는 ‘믹사오뜰리(죽은 자들의 길)’로 들어섰다. 떼오띠우아깐의 주요 유적지는 죽은 자들의 길 주위에 조성되어 있다. 이름의 유래는 아즈텍 사람들이 길 양쪽에 세워진 건물들을 무덤이라고 생각해서 지었다는 설과 신께 바칠 인간 제물을 운반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두 설 모두 어쩐지 으스스하다.

그러나 떼오띠우아깐의 온도는 뜨겁다 못해 살을 태우는 듯했다. 땡볕 아래에서 거대한 유적지를 서너 시간 동안 탐방하니 온몸에서 힘이 빠져버렸다. 아직 피라미드도 못 봤는데! 아무리 고개를 둘러봐도 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죽은 자들의 길에서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하던 찰나, 뻴리뻬의 한마디가 나의 무기력함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었다.

"힘들 땐 다른 생각을 해 봐. 너는 지금 고대인들이 걷던 거리 위에 있는 거라고!"

맞다. 나는 지금 떼오띠우아깐인들이 걷던 길 위에 있다. 그들이 잠을 자고, 농사를 짓고, 신께 기도드리고, 놀기도 하며 살아가던 길을 말이다. 뻴리뻬의 말을 듣고서 내 앞으로 쭉 뻗은 길을 보니 전과 다르게 묘했다. 고대인들을 상상하니, 홀로그램으로 형상화된 고대인들이 분주하게 걸어 다녔다. 나는 단순히 발에 밟히는 길이 아닌, 고대인들의 시간 위를 걷고 있었다.

그때 태양의 피라미드 앞에서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자들의 길 동쪽에 위치한 태양의 피라미드는 떼오띠우아깐의 대표 유적이다. 멀리서 볼 때는 감흥을 못 느끼다가, 막상 바로 앞에 서보니 기가 팍 죽어버렸다. 가히 엄청난 높이와 크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오르내리고 있었고, 정상에 선 사람들은 조그마한 개미처럼 보였다.

피라미드 앞에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대 의상을 입고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피라미드를 오르기 시작했다. 스스로 인간 제물이 되어 신께 오르는 길. 그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가파른 경사, 낮은 난간, 높은 고도, 수많은 계단, 그리고 태양. 계단을 오를수록 등 뒤에서 들리던 북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나의 가쁜 숨소리가 더욱 커졌다. 떼오띠우아깐 부근이 고산 지대라 숨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S와 뻴리뻬는 벌써 저만치 가버렸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아껴 마시며 계단을 올랐고, 끝내 피라미드의 정상에 당도했다.

엄청난 태양의 열기. 정상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슬쩍 보니, 바닥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박혀있는 게 아닌가. 한 사람씩 그것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른다. 태양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라는데, 이미 나는 태양의 기운을 충만하다 못해 과하게 받은 듯하여 정상 한 쪽에 앉았다. 피라미드 정상에서 떼오띠우아깐의 전경을 내려다보니 모든 게 작아 보였다.

고대 사제들은 하늘과 가까운 자리에서 어떤 마음으로 신께 기도를 올렸을까, 개미만 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나는 문득 ‘심취’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땅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태양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져서 일까, 고대 유적이라는 공간성 때문일까, 이제는 들리지 않는 북소리 때문일까.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열기에 심취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몸이 아프고 정신이 흐려졌다.

달의 피라미드

뻴리뻬는 더 있으면 정말 쓰러질 거라며 이제 내려가자고 말했다. 춤을 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는 다시 한번 그들의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걸으니 달의 피라미드가 보였다. 당시 사람들은 세상을 지속하기 위해 인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여겼고, 많은 사람들이 달의 피라미드에서 심장과 피를 바치는 제물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제, 누가, 제물이 될 줄 몰랐으니 모두 다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희생양은 대부분 서민 또는 노예이거나, 다른 부족들을 포로로 잡아와 제물로 바쳤을 것이다. 어느 쪽도 개운치 않다.

드디어 떼오띠우아깐을 다 돌아본 우리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몸 안의 수분이 죄다 빨려나간 느낌이었고, 배까지 고프니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뻴리뻬가 특별한 곳에서 식사를 하자며 데려간 곳은 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동굴 레스토랑 ‘La Gruta’였다. 이곳은 아즈텍 사람들이 식량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동굴 안은 굉장히 선선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아 낙원이 따로 없다.

어제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있는데(석류향이 나는 음식보다는 치킨이 입맛에 맞았다), 갑자기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고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오더니 무대 위에서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듯한 춤을 추었고, 이어서 각기 다른 공연들이 계속되었다. 낯설지만 흥미로운 그들의 전통 공연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 하루 내내 떼오띠우아깐인들의 길을 걷고, 아즈텍인들의 식량창고에서 음식을 먹었다. 이건 단순히 길을 걷고 음식을 먹는 경험뿐만이 아니다. 나는 오늘 그들의 시간 위를 걷고 오르며 뛰었다. 대체 어떻게 시간을 걷고 오르며 뛴다는 건지, 말이 이상하다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하지만 진짜인걸.

시간이 오랫동안 쌓인 곳으로 여행을 할 때, 공간을 걷는 것 이상으로 시간을 받아들인다면 또 다른 시각으로 여행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떼오띠우아깐에서 그러한 경험을 하였고, 앞으로도 열린 마음으로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안에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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