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외침이 세상을 바꾼다

[공감신문 시사공감] ‘나도’라는 뜻의 ‘Me Too'(미투)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단순한 두 단어는 세계의 어둡고 추악한 면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들이다. 

‘나도’ 한 마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그 심각성을 알리는 미투 캠페인은 이름에서 보다시피 미국으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이 캠페인은 이후 전 세계를 뒤흔드는 커다란 파도가 됐다. 

단순히 ‘나도’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무슨 힘이 있겠느냐, 싶겠지만 그 여파는 실로 대단하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들이 공개적인 사과에 나서는가 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통하던 이들이 자리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수 년 전의 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거나 혹은 이미 철창신세를 지고 있다. 

MeToo, 이 짧은 말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wikimedia/CC0 Creative Commons]

도대체 이 짧은 말 속에 어떤 힘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거대한 파도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에서 함께 짚어보도록 하자. 

 

■ #MeToo, 그 외침의 시작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 미투 캠페인 역시 시작부터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즈가 처음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로 통하는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을 보도할 때만 하더라도 흔한(?) 유명인의 스캔들 정도로만 여겨졌다. 

자신의 피해사실을 용기 있게 고백한 애슐리 주드 [트위터]
“20여 년 전, 영화 프로듀서인 하비 웨인스타인은 애슐리 주드를 호텔에 초대했다. 어린 여배우는 조찬 미팅을 생각하고 갔다. 하지만 웨인스타인은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가운만 걸치고 있던 그는 주드에게 마사지를 해도 되는지, 아니면 그녀가 자신의 샤워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당시 애슐리 주드는 ’어떻게 하면 웨인스타인과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으면서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NYT 기사 중)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그 ‘외침들’이 없었더라면 그저 그런 가십거리로만 소비됐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 웨인스타인 감독 역시 처음엔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도 이틀 뒤 자신을 고발한 여배우와 여직원들을 고소하겠다고 큰 소리쳤던 걸 보면 말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하비 웨인스타인

하지만 이후 이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배우와 여직원들이 SNS를 통해 추가 고발을 이어나가면서 상황은 ‘그 정도’가 아니게 됐다. 그리고 NYT의 보도가 나가고 열흘 뒤인 10월 15일,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한 가지 제안을 하면서 미투 운동은 급 전개된다. 

[트위터]

“당신이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했거나 폭행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트윗에 ‘미투’라고 써 달라”

밀라노의 트윗은 24시간 만에 리트윗 수가 50만을 넘는 등 큰 지지를 얻었다. #MeToo 해시태그를 달고 자신의 성폭행 경험담을 폭로한 이들도 하루 사이 8만 명을 넘어섰다. 이후 미투 캠페인은 영화계를 넘어 교육·정치 등 다른 분야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세계적인 물결은 멈추지 않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 침묵을 깬 그녀들의 외침 
하비 웨인스타인 감독에게 성추행·성폭력을 당했다는 여배우는 애슐리 주드뿐만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신인시절이던 1996년 영화 ‘엠마’ 출연 당시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웨인스타인은 영화 ‘엠마’에 기네스 팰트로를 출연시키기로 결정한 이후 자신의 호텔방에 그녀를 초대했다고 전해진다. [네이버영화]

안젤리나 졸리는 NYT에 보낸 이메일에서 “신인시절 하비 웨인스타인에게 나쁜 경험을 당했다. 그와 다신 일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권했다”고 밝혔다. 

웨인스타인에 의한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 모델, 사무직 등 직업과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여자라는 것과 웨인스타인의 한 마디에 직업이 없어질 수도 있는 을(乙)의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미투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나도’를 외친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간 ‘난공불락’의 상대로 여겨졌던 남성 권력가들이 해시태그 위에 올라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는 미국 최고 권력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마저 미투 캠페인의 표적 대상이 되기도. 

미투 폭로로 인해 자살을 택한 이들도 있다. [MBN 뉴스 캡쳐]

미국뿐만 아니다. 영국, 프랑스, 호주 할 것 없이 미투 캠페인을 통해 고발당한 이들의 이름을 읊으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길게는 수십년 간 단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던, 혹은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이 이 캠페인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편 미국 여성들은 폭로에 그치지 않고 ‘타임스업’(Time's Up)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양성평등과 피해자 보호지원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이 단체에는 웨인스타인의 성범죄 피해자 애슐리 주드를 비롯해 배우·작가·감독·프로듀서 등의 할리우드 여성들이 포함돼 있다. 

미국의 대표 시사언론 타임(Time)지는 2017년 올해의 인물로 미투 캠페인을 벌인 여성들을 꼽았다. 타임지는 이들을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이라고 명명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 역시 올해의 인물 중 하나로 우버(Uber)의 직장 내 성희롱을 폭로한 수잔 파울러를 지목했다. 

타임지는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을 꼽았다. [타임지 홈페이지 캡쳐]

미투 캠페인을 계기로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은 수십년간 이어진 ‘그리드걸’(레이싱걸) 고용관행을 올해부터 없애겠다고 밝혔다. 캐나다 상원은 국가(國歌)의 가사를 ‘그대 아들들의 명령대로’에서 ‘우리 모두의 명령대로’로 변경했다. 이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여성혐오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예술품들이 철거되거나 변경되는 등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 한국판 ‘미투’ 
흔히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한국판 미투의 첫 발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은 그보다 먼저 시작됐다. 2016년부터 SNS를 타고 퍼져나간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김현 시인

이 해시태그는 김현 시인이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실은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기고문에서 김현 시인은 한국 문단에 퍼져 있는 여성혐오와 남성 문인들의 성적 추행을 폭로했다. 

이후 많은 문인들이 자신의 SNS에 ‘#문단_내_성폭행’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피해를 고발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게재했다. 이어 이 해시태그는 ‘#문화계_내_성폭행’, ‘#미술계_내_성폭행’ 등 한국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소설 ‘은교’의 작가 박범신이 방송작가와 출판사 편집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는가 하면, 미성년자 제자들을 상대로 한 배용제 시인의 성폭행 사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범신 작가의 사과문(?) [페이스북]

이 외에도 많은 유명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이 해시태그와 함께 거론되며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OO_내_성폭행’ 해시태그는 문화예술계 너머로까지 확산되지는 않아 더 이상의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지난 달 29일, 서지현 검사가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밝히면서 한국판 미투 운동은 다시 전개되는 모양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데다 위계질서마저 엄격한 검찰 조직을 뚫고 나온 목소리이기에, 더 큰 울림을 준 것이다. 

서 검사의 고백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자신의 SNS에 #MeToo 해시태그를 달고 글을 올려 자신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음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글 [페이스북]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미투 캠페인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광명시는 시 자체적으로 미투 창구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전국의 성인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는 74.8%의 응답자들이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서는 MeToo 채널 개설 이후 열흘 만에 1602개의 글이 작성됐으며 그 조회 수는 150만 회에 달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승무원 성추행, 박현주 미래에셋금융 회장의 여직원 황제 골프,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사장의 고추 회식 등도 이 앱을 통해 폭로됐다. 

다만 해외에서처럼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걸고 피해사실을 밝히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아직 무리인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아래의 블라인드 앱 캡쳐화면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블라인드앱 캡쳐]

■ 그 모두의 용기를 응원하며
미투 운동이 시사하는 바는 크게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연대의 힘이 이렇게나 강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내면 큰 울림이 되기 마련이다.

두 번째는 아직까지도 이 땅에 이렇게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꼭 그만큼의 가해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는 뜻이겠다. 

특히 미투 캠페인에서는 직장 내 성범죄에 대한 고백이 많다. [amry.mil]

특히 미투 운동에서 자주 회자되는 유형은 직장 내 성범죄다. 직장 내 성범죄 비율이 대단하게 높아서가 아니라, 권력의 힘에 눌려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했던 이들이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경력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28살의 여성이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자신의 회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64살의 남성이다. 
파워의 균형은 나 0, 하비 웨인스타인 10이다.
- NYT를 통해 첫 고발을 한 직원 로렌 오코너의 메모 중 (NYT 발췌) 

내 생계를 쥐고 있는 권력자의 심기를 대놓고 거스르기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해 ‘그때 말하지 그랬냐’는 질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도리어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 분위기는 하루 빨리 없어져야 될 것이다. 문제제기를 내놓은 이들을 ‘트러블메이커’ 취급하는 문화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애초에 안 된다고 말할 일부터 안 만들면 편할 텐데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이미 과거의 여러 사례들을 통해 덮어놓고 쉬쉬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익히 배웠다. 문제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해나가는 이 상식적인 과정이 자리 잡을 때,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없어지게 되지 않을까. 

[wikimedia/CC0 Creative Commons]

최근 미투를 외치는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의미를 담은 위드유(With you) 바람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시사공감 팀은 그 모두를 응원하겠다. #With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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