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참가 중인 선수에 비난 세례, 그렇게 피를 봐야겠나?

靑 국민청원 게시판, 화풀이 샌드백?…옳은 방법인지 뒤돌아봐야

 

[공감신문] “잠깐, 그렇게 피를 봐야겠어?” 영화 ‘타짜’에 나오는 주인공 김곤(고니, 조승우 역)의 대사다.

“잠깐, 그렇게 피를 봐야겠어?” 영화 ‘타짜’에 나오는 주인공 김곤(고니, 조승우 역)의 대사다.

지난 19일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 경기 이후 경기에 나섰던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 등 대표팀 선수들은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세 선수가 모두 들어오는 시간이 팀 기록이 되는 팀추월 경기에서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과 차이를 벌리며 먼저 결승점에 들어오면서 논란의 불씨가 생겼고, 먼저 들어온 두 선수가 눈물을 훔치는 노선영을 놔두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불씨를 키웠다. 

여기에 김보름, 박지우가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경솔한 발언을 하며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노선영이 뒤처진 것을 패인으로 꼽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먼저 들어온 두 선수가 눈물을 훔치는 노선영을 놔두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불씨를 키웠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기 직후 김보름, 박지우에 대한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고 빙상연맹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돼 이틀 만에 5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청원 참여자가 늘고 있는 이 청원은 4일 만에 참여 인원이 58만명을 돌파했다. 참여자가 급속도로 늘며 20만명, 30만명, 50만명 돌파가 중계되는 모습은 분노로 시작된 안건이 환호를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이 참여한 청원에는 청와대나 정부의 관계자가 답하도록 돼있다. 

김보름, 박지우의 자격 박탈을 요구하며 이 청원에 참여한 이들은 과연 정부 혹은 청와대의 답변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정부와 청와대는 이 청원에 대한 옳은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제시한다고 해도 참여한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

김보름, 박지우는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노선영이 뒤처진 것을 패인으로 꼽는 듯한 발언을 했다.

젊은 20대의 선수들이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를 치르다보면 활약하고자 하는 욕심에 이번 준준결승과 같은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올림픽뿐만 아니라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팀 내 불화, 훈련 거부 등 내홍을 겪은 사례는 적지 않게 있어왔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굳이 국민청원으로 이어졌어야 했고, 50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할 정도로 국민의 심정을 불편하게 만들었냐는 것이다. 

대표팀 분위기를 흐리고 노선영과 김보름을 대립적인 관계로 몰아간 이는 누구일까.

지난해 9월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계기로 ‘소년법 폐지’를 요구했던 국민청원보다 이번 사태가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것은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피를 봐야겠다’라는 심리가 작용했던 게 아닌지 의문이다. 

결국 팀추월 대표팀은 피를 봤다. 문제의 경기를 치른 다음 날인 20일 김보름과 백철기 감독은 훈련시간에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보름은 “자신의 잘못이 가장 크다”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눈물의 사죄를 했고, 백철기 감독은 “이젠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자”라고 호소했다.

결국 팀추월 대표팀은 피를 봤다. 문제의 경기를 치른 다음 날인 20일 김보름과 백철기 감독은 훈련시간에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회 기간 중에 아직 경기가 남은 선수와 대표팀을 향한 비난, 그에 따른 기자회견은 분명 대표팀 분위기를 좋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인 21일 열린 7-8위 결정전에서도 노선영의 이름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관중들은 뜨겁게 환호한 반면, 김보름의 소개 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표팀 분위기를 흐리고 노선영과 김보름을 대립적인 관계로 몰아간 이는 누구일까.

아직도 여자 팀추월 선수와 관련한 각종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인터뷰 내용을 논하면서 인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옳지 못한 인성이 국민청원을 뜨겁게 달궜던 것일까.

이 국민청원 화살의 끝은 처음엔 경솔한 발언을 한 선수들과 빙상연맹을 향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이들은 연맹보다 선수들에 가깝다.

국민청원은 화풀이 샌드백, 분노 배출창구라는 오명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

과연 청원의 의도대로 되고 있는 지 뒤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정부와 청와대가 관여하기 어려운 안건이 게시되고, 이번 청원처럼 많은 국민들의 추천을 받는다면 국민청원은 화풀이 샌드백, 분노 배출창구라는 오명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은 청원은 국민들의 관심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할 수 있지만 더 많은 국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건들에 대한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는 창구가 되도록 만드는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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