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지난 4월초 일본에서는 가정용 전기 판매시장이 민간에 개방되었다. 대규모 전기회사의 지역독점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업종의 회사나 단체들이 가정용 전기를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일반 가정들도 요금수준과 서비스의 편리성 등을 감안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전기판매업자를 골라 전기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본의 전력자유화는 20여년을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1995년에 전기사업법을 개정하여 자유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2000년 3월부터 대규모공장과 백화점, 오피스빌딩과 같은 고압전기 사용처에 한해 전기 소매시장 참여를 허용했다. 이어 2004년 4월부터는 중소규모 공장과 빌딩으로 신규참여의 범위를 확대했다. 이후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전력소매 자유화가 급물살을 타게 되어 지난달 초 저압전기 수요자인 일반 가정과 소규모 상점에까지 전기 소매가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로 인해 다수의 기업과 단체들의 전기판매업에 진출하고 있다. 가스·석유 도매 등 에너지업종뿐 아니라 텔레콤, 케이블TV, 민영철도 등의 참여로 지금까지 260개 기업과 단체가 사업자 등록을 마친 것이 확인되었다. 기존의 지역 전력사업자 역시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비스를 개선하고 요금을 할인하거나 포인트제를 도입하는 등 치열해질 고객확보 경쟁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전력자유화는 일본 뿐 아니라 유럽 등 여러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영국과 노르웨이가 1990, 1991년에 각각 실시했고, 유럽연합의 ‘EU전력자유화지령’채택(1996)을 계기로 EU각국이 순차적으로 시행 중이다. 미국의 경우는 현재까지 17개 주와 워싱턴DC에서 전력자유화를 시행했다. 최근에는 호주와 싱가포르, 타이완에서도 이들과 비슷한 형태의 전력자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에 발전 부문이 6개 자회사로 분할됨으로써 제한적으로나마 경쟁체계에 놓이게 되었으나 송·배전과 판매 부문은 여전히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대형 사업자의 전력 직접구매를 허용했지만 높은 송전망 이용수수료 부담 등으로 이용실적이 전무한 실정이다.

일본 등에서의 이러한 전력자유화 조치는 특히 판매부문의 자유화가 지지부진한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엇보다 발전과 송·배전뿐 아니라 판매 부문까지의 전면 자유화 한 것은 독점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알려진 전기와 같은 공익사업(public utilities)분야도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불가피함을 시사한다. 판매시장에서의 경쟁은 전기서비스의 가격과 품질, 서비스 측면에서 소비자의 이익과 사회 후생을 높일 것이다. 특히 다양한 업종의 기업과 단체들이 가정용 전기 소매업자로 참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가스업체가 참여하면 전기와 가스의 통합관리로 소비자가 지불하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함께 낮아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통신회사의 참여로 통신과 전기요금의 인하도 기대된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실현된다면 재생에너지 사업자의 참여에 따른 지구환경 보호 등 경제외적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규제개혁조치의 일환으로 전력시장에서의 독점구조 해체를 천명했다. 빠르면 금년 하반기부터는 연간 전력소비 3만kw 이상인 대형 기업들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직접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행보이다. 여건을 조성하여 중소규모 공장이나 빌딩으로까지 소매전력의 직접구매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과 같이 일반 가정에서도 마음에 드는 전기서비스를 고를 수 있어야만 진정한 소비자주권(consumer sovereignty)이 보장된다 하겠다.

하지만 전기서비스의 특수성과 공익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전력판매시장의 구조개혁에는 효과적인 전력 수요관리가 필수이다. 그렇지 못하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뿐더러 2011년의 대정전 사태와 같은 예기치 못한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의 철저한 전력거래 모니터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진일보한 ICT 기술을 바탕으로 지능형 전력 수요관리를 지향해야 하는 우리나라도 일본 등 선진국에서의 전력자유화 조치의 진행과정과 효과를 예의주시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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