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의 파도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돌아보는 주말추천 시사공감

[공감신문 시사공감]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부 성추행 폭로로 불이 붙기 시작한 미투운동이 말 그대로 ‘들불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사실 기자는 앞서 미투운동에 대한 포스트를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확대될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더 많은 가해자가 있고, 그보다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거대한 불길이 되리라고 누군들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이 포스트를 작성하던 2월 초만 하더라도 미투운동이 불러올 파장이 이렇게나 클 줄은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피해자의 용기는 또 다른 피해자의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각자의 분야에서 권력에 정점에 서 있던 이들이 ‘가해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줄줄이 끌려 내려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포스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 모든 피해자들의 용기와 그간의 고단함에 대해 위로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권력자들이 미투의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될지 이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정도’에서 끝날 바람은 아니라는 것, 그 하나라고 하겠다. 물론 떳떳치 못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겐 매우 애석한 일이겠지만. 

이 거대한 변화의 바람 앞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는지 되짚어 볼 때다.

폭로와 충격, 사과와 분노가 뒤엉켜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 이때, 혼란한 틈을 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지혜도 필요하겠다. 오늘의 시사공감, 미투운동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나마 풀어보고자 한다. 

※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는 ‘피해자는 보호해야 하고 가해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 심판대 위로 올라선 권력자들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면 혼란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분노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또 또 다른 사건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미투운동이 시작된 지 채 3개월도 안 된 이 시점에서 경찰이 ‘미투 가해자’로 조사하는 이들만 50명에 달한다.

피디수첩을 통해 나온 증언들은 입 밖으로 꺼내기도 민망할 정도다. [MBC PD수첩 캡처화면]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휩쓴 영화감독 김기덕에 대한 이야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추악하다. 특히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을 통해 나온 피해자들의 증언은 포스트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 당시 한 피해자는 김기덕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 조재현과 그의 매니저에게까지 피해를 당했다고 밝혀 충격을 더하기도 했다.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고은 시인과 30년 역사의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던 연극연출가 이윤택 역시 미투의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들 두 명과 연극연출가 오태석은 과거의 과오로 인해 교과서에 실렸던 자신들의 작품이 삭제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충남의 아들’이라 불리며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도 손꼽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며 도지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앞두고 있던 정봉주 전 국회의원 역시 성추행 폭로와 함께 출마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정 전 의원은 현재 자신에 대한 혐의를 전면부인하고 있다. 

이화여대 게시판에 성폭력 피해사례 공론화를 지지하는 게시물이 붙어있다.

그뿐일까?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지경이다. 대학교에서부터 대기업, 정치권, 언론계, 예술계, 법조계 등등 장르를 불문하고 미투 폭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실명을 밝히지 못한 이들까지 합한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가해자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미투운동은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리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 ‘익명성’ 그리고 ‘피해자’

이니셜 보도로 인해 산들과 2AM 창민은 또 다른 피해를 입었다. [KBS 불후의명곡 캡쳐화면]

포스트를 작성 중인 오늘(9일), 아이돌그룹 B1A4의 소속사 WM엔터테인먼트는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같은 날 한 익명의 미투 폭로기사에서는 가해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2010년 초 데뷔한 경상도 출신의 아이돌 그룹의 보컬’이라고만 설명했는데,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서 가해자가 B1A4의 멤버 산들 아니냐는 추측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는 산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AM의 멤버 이창민 역시 ‘최근 한 여성이 발라드 그룹 리드보컬 A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고 난 뒤 가해자로 지목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창민의 소속사 더비스카이 측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낸 데 이어, 해당 기사를 보도했던 기자가 SNS를 통해 이창민이 아니라고 직접 해명에 나섬에 따라 사건은 일단락 됐다. 

추측성 보도와 댓글로 인한 피해자 발생이 지속될 경우 미투운동의 본질마저 해칠 우려가 제기된다. [pxhere/CC0 public domain]

이처럼 ‘애꿎은’ 피해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니셜 보도에 따른 부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기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특히나 성과 관련한 문제이다 보니, 가해자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게 될 2차 피해도 우려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투운동의 파급력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이때, 스무고개와 다를 바 없는 이니셜 보도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추측성 보도와 댓글로 인한 애꿎은 피해가 계속해서 이어질 경우 자칫 미투운동의 본질마저 흐려질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故신해철 씨에 대한 비방글을 올린 네티즌은 이 같은 사과문을 게시하고 며칠 뒤 블로그를 폐쇄시켰다.

가짜뉴스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례로 얼마 전 한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 고 신해철 씨에게 성범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는 글을 올린 뒤, 논란이 커지자 ‘자신의 글은 거짓이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논란이 된 블로그는 현재 폐쇄된 상태다. 

빠른(?) 사과문 덕분(?)에 사건은 해프닝으로만 일단락됐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훼손된 고인의 명예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재차 강조하건대, 추측이나 거짓에서 비롯된 비판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눈물로 끌어올린 미투운동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되겠다. 

 

■ 피해자에 초점을 둬야할 때 

정작 피해자에 대한 보호나 대책은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도 있다. 현재의 미투운동은 가해자를 찾는 데만 혈안이 돼 있고, 정작 피해자에 대한 보호나 대책은 세워지지 않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미투에 나선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미투를 외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고통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의 힘과 세간의 눈빛이 무서워 피해자들이 괴로움 속에 숨어있는 동안 가해자들은 승승장구하며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결국 권력도 무릎을 꿇게 된다는 것을 본인에게도 가해자에게도, 나아가 세상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바람은 그들의 목소리가 됐다. 

8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정부 합동으로 발표하고 있다.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지난 8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이 그것이다. 
 
이로써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대폭 강화됨과 동시에, 성희롱에 대해서도 징역형이 검토될 예정이다. 또 그간 미투의 문제점으로 여겨졌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대해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극 적용하기로 했다.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비방하는 온라인상 악성 댓글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성인이 될 때까지 유예하는 방안도 추진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는 홈페이지에 ‘직장 내 성희롱 익명 신고시스템’을 개설, 익명 신고만으로도 행정지도에 착수해 사업장에 대한 예방차원의 지도감독을 진행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의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민관 합동 특별조사단과 함께 100일 동안 특별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한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9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방문, 콜센터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여가부는 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를 설치해 8일부터 신고·상담 접수를 받고 있다. 개소 첫날에만 36건에 달하는 상담이 접수됐다. 하지만 현재 상담사는 5명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인력충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 변화로 향하는 첫 걸음 

미투운동이 확대됨에 따라 펜스룰도 덩달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SBS뉴스 캡쳐화면]

10, 20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까지도 미투 고발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일부 남성들은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펜스룰’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펜스룰이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언급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단어다. 

즉 여성과의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다는 규칙이다. 미투에 대항(?)해 펜스룰을 치겠다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성희롱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가해자로 몰릴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을 수 있다. 

표 의원님 말씀에 적극 동감하는 바 [표창원 의원 트위터 캡쳐화면]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되고 이에 발맞춰 전보다 조심스럽게 행동하겠다는 것은 외려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다만 공적으로의 영역까지 펜스룰을 적용한다면 또 다른 차별과 갈등을 낳게 된다는 걸, 사실은 여러분도 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사회는 점점 밝은 곳으로 나아가게 될 듯하다.

크고 작은 갈등이 있기는 하겠지만, 미투운동을 계기로 사회는 점점 변화돼갈 것이다. 피해자들이 바라는 대로, 사회에 만연해있던 성범죄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야 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하지만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외침 덕분에 사회는 밝은 곳으로의 첫 걸음을 뗐다.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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