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무기명 투표 방식에 경악…SCMP “표결에서 논쟁·토론·유세 없었다” 비판

가림막이나 별도의 기표소가 없는 중국식 '무기명 투표 방식'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감신문] 11일 오후 중국 제 13기 1차 전국인민대회(전인대) 3차 전체회의에서 국가주석 임기 제한 폐지 등에 관한 개헌안 투표가 99.79%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집권 연장을 반대하는 표는 단 2표뿐이었다.

장기집권과 관련된 중요한 이번 개헌안 투표에서 가림막이나 별도의 기표소가 없는 중국식 ‘무기명 투표 방식’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다.

국제사회는 비밀 없는 중국의 무기명 투표 방식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는데 일조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 이번 투표는 투표에 참여하는 전인대 대표단이 자기 자리에 앉아 투표용지에 찬성, 반대, 기권 의견을 표기해야 했다.  

표결이 진행된 장소인 인민대회당 둥다팅(東大廳)은 매년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식 등 중국의 굵직한 정치행사를 개최하는 곳이다. 하지만 2900명이 넘는 대표단이 앉았을 때 비밀을 보장하기에는 장소가 협소하다. 

개헌안 투표용지는 A4용지 크기로, OMR 방식을 사용해 투표용지를 접거나 구길 수 없었다.

아울러 전인대 국가주석 선출과 개헌 표결을 위해 사용된 전자 투표함 투표 집계 방식도 솔직한 의견을 피력하기엔 문제가 있어 보였다. 

표결에 사용된 전자투표함은 광학마크판독기(OMR)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투표용지는 A4용지 크기로 상단에 표결 목적을 나타내는 문구가 중국어, 소수민족 언어 등 8개 언어로 표기됐으며 하단에는 찬성, 반대, 기권란이 인쇄돼 있었다. 

대표단은 흰색 표시란에 사전에 나눠준 기표용 펜을 이용해 찬성, 반대, 기권란에 투표해야 했다. 여기서 문제는 OMR 방식을 사용해 A4용지 크기의 투표용지를 접거나 구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표를 마친 대표단은 차례로 투표 결과가 바로 집계되도록 전자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반듯이 펴서 넣어야 했다. 이 과정 역시 ‘검표인’이라 불리는 투표 감독관이 투표함 바로 옆에 서서 참관해 비밀투표에 대한 기대를 하기란 어려웠다. 

이러한 ‘독특한’ 방식의 투표 방법에 중국에 비판적 성향을 띠는 중화권 매체와 서방 언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이 같은 투표 방식은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중국 포털사이트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투표하는 중국 인민대표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인은 “대학에서 처음 인민대표를 선출할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투표를 해왔기 때문에 익숙하다”면서 “인민대표 역시 대학 당조직에서 미리 선정한 대표를 선출하는 형식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5번째 개헌안 투표 전, 검표위원들이 전인대 대표들에게 투표 용지를 나눠주고 있다.

중국 정치전문가인 패트리샤 돌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번 역사적인 투표에서 극단적으로 적은 반대와 기권표는 중국공산당 고위층 내에도 논쟁은 물론 복수 의견에 억압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12일 홍콩사우스차이모닝포스트(SCMP)는 전자 투표 집계 방식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개헌 투표가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통과된 것은 중국 당국의 엄격한 관리 아래 표결이 진행됐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SCMP는 “이번 표결에서 논쟁과 토론은 물론 유세조차 없었다”면서 “1999년과 2004년 3, 4차 개헌 표결이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것과 비교해도 절반 이상 시간이 줄었을 정도로 일사불란하고, 빈틈없이 표결이 진행됐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헌안이 통과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반대여론에 대한 강력한 통제도 당국의 엄격한 관리를 보여준다”라고 보도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 등 중국 관영 매체는 이런 지적에 대해 “지난해 9월 개헌안 논의가 처음 건의된 이후, 118번의 서면 보고와 좌담회가 진행됐고 2639건의 개헌 의견서가 접수됐다”며 “개헌 과정이 민주적으로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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