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옥이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지옥을 장소라 여기는 이유는 단테를 읽었기 때문인데, 난 지옥이 상태라는 것을 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공감신문] 사실 그는 당시 처형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와 같이 유명했던 이들은 뇌물을 써서 그런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었으니까. 처형을 선고한 이들도 그가 노련하게 빠져나갈거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에게 적당히 좀 하라는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였을지도. 

하지만 그는 철학적 순교(?)를 맞이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소크라테스는 손에 쥐어 진 운명 같은 독배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치 후대 어느 유명 희곡에 나오는 줄리엣처럼, 기꺼이. 유언 역시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줄리엣 같은 정서가 가득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눈을 떴을 때, 지금보다 고통스럽지 않기를.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은 이러했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갚아주게.’

어디에서 줄리엣을 찾을 수 있냐고? 그의 삶 자체가 몬테규 가에 시집갈 수 없던 줄리엣의 이름 같은 것이었으며, 아스클레피오스는 줄리엣의 독배와 같은- 로미오에게로 향하는 구원의 양파 한 뿌리였을지도.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1786)

소크라테스는 유명세를 타고난 사람인가보다. 지금도 누구나 그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 보았다. 니체와 같은 당대 철학자들에게 숱하게 인용됐으며, 기원전 399년 죽은 이후에도 제자 플라톤에 의해 명성이 더욱 커졌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리 사랑받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스스로 일평생 불행하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건 그가 늘 고뇌에 빠져있던 무드를 유지해서가 아니다. 그는 너무, 못생겼었다.

심지어 그는 일평생 가난했다. 그런 컨디션들은 지금도 흔한데 너무 폄하하는 거 아니냐고? 글쎄. 그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못생김의 ‘정도’를 감히 추측해볼 순 있다. 그는 정말이지 눈에 띄게 못생긴 편이었나 보다. 당시 ‘소크라테스를 닮았다’라는 말이 상당한 욕이었다는 걸 보면! 그의 인지도에 크게 한 몫 하는 건 그의 남다른 못생김이었다. 이집트의 어느 관상가가 그(의 얼굴)를 보고 흉악하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사람 참 잘 보시는 군요!’했다고 한다. 대신 자신은 그것을 이성으로 극복했다고.

소크라테스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악처 때문. 그는 아내 크산티페와 사는 동안 내내 싸웠다고 전해진다. 근데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정말 사랑했던 게 아닐까 싶다. 크산티페는 변변한 돈벌이 없이 매일 사람들과 논쟁하는 남편 대신 집안의 생계를 꾸렸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부창부수격으로 남편처럼 논쟁을 즐기는 부인이었을지도. 

그가 온전히 가지고 있는 거라곤 크산티페와 지혜, 이 두 가지였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지혜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의 지혜로움과 남다른 신념은 그를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게 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 쌓였을 만하지 않나. 이렇게 시대를 막론하고 위대해질 정도인데 가난하고 심각하게 못생겼으니, 얼마나 억울한 가. 외모로 자신을 농락하는 사람들. 소크라테스의 성격이 좋았을 리 없다. 그에겐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가 닭 한 마리를 빚졌다는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 속 의술의 신이다. 의술의 신에게 빚을 졌다? 죽음에 문턱에 이르러 치유를 빚졌다고 고백하는 소크라테스. 그는 죽음을 통하여 ‘삶’이라는 고통을, 씻어내게 된 것이다. 지금의 삶이 고통스러워 차라리 잠깐의 죽음으로 이별하려는 줄리엣의 독배는, 소크라테스를 닮아 있다.

오늘날 만일 소크라테스 같은 컨디션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반사회적 성격의 범죄들을 이웃에서 봐왔었다. 어린 시절 비수로 날아 든 선생님의 한마디로, 누군가의 인생이 돌변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자기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수동적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질 수 있다.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이런 감정이 소크라테스처럼 승화될지 혹은 반사회적인 범죄 성향으로 드러날 지- 그건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영화 '미스테리어스 스킨' 중에서

고대 그리스는 지금에 비해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 신화만 보아도 그러하다. 못생긴 걸로 사람을 놀리다니, 어찌 보면 좀 귀엽지 않나. 지금은 아무리 못생겨도 그가 권력자이거나 대단히 똑똑해 보인다면 대놓고 놀리지 않을 테니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과 운명을 두려워할 줄 알았었다. 좌절과 고통은 알아도, 어떤 누군가에게 당신의 삶은 허무하다거나 실패했다고 쉽게 폄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도 실수를 저지르고, 사랑에 실패하며, 어리석은 짓을 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소크라테스에게 그 시절은 결코 살만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소설가 보르헤스는, ‘난 지옥이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지옥을 장소라 여기는 이유는 단테를 읽었기 때문인데, 난 지옥이 상태라는 것을 안다.’고 했었다. 고통으로 점철된 지옥에서 건네어진 처형 선고. 소크라테스가 그것을 거부할 리가. 그의 죄목(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않는 자')에 사실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위대한 지혜는, ‘내가 모르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말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테네 젊은이들의 심장을 일렁이게 만들었으며, 곧 아테네 기득권 상류층들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서야했던 진짜 이유는 아니었을까. 

혼란기의 사람들은 이성이 배제되어 감정적으로 치우치기 쉽다. 무언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개인들이 두루뭉술한 논리로 한 데 모이면, 나머지 여백은 용기로 채워진다. 곧 그것이 진리인 냥 믿음을 얻을 때에, 한 순간 집단적 광기에 도달할 수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부패하던 시기의 소크라테스가 과연, 그 지옥을 견디기 쉬웠을까? 음- 어서 독배를 마시고 로미오에게 가야지. 

Angela Deane 'Violet Vexed'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꽤 오래 살았다. 아테네 법정에 섰을 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만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없었더라면, 한평생 고집스럽게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한단 뜻의 phil-과 지혜를 뜻하는 sophia. 철학자(philosopher)다운 삶이었다. 

뜨거웠던 그의 말들은, 이후 위대한 제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널리 전해진다. 굴레같은 못생김과 가난함. 그러나 그의 영광을 드높이며 추모를 거행하는 제자들과 가슴을 일렁거리며 귀 기울이는 아테네의 젊은이들, 그리고 투쟁적이지만 곁을 지키며 뒷바라지하는 아내가 있었다. 아마 더 많은 개천과 하천, 강과 바다가 생긴 오늘날- 이런 따스함이라면 우리도 소크라테스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 삶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질 만큼 불행하지 않길 바랄 뿐. 

달팽이, 다슬기, 강도래, 엽새우, 뱀잠자리, 먹파리, 플라나이아… 개천에 이렇게나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데 용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개천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냐에 달렸다. 산뜻한 공기를 실어다 주며, ‘넌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불을 뿜어낼 수도 있으며, 등에 나를 태우고도 유연할 수 있는 튼튼한 허리도 있다’고- 그렇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며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소크라테스에게 빚진 닭 한 마리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