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급력을 더해가는 ‘1인 미디어’, 이대로도 괜찮을까

[공감신문 시사공감] 3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는 정희원(가명) 씨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할 때마다 스마트폰을 가장 먼저 챙긴다고 한다. 기본적인 연락수단으로도 그렇지만, 갑작스레 아이가 울고 보챌 때 유튜브의 ‘캐리와 장난감친구들’ 영상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없다고. 울던 아이도 뚝 그치게 한다는 이 유튜브 영상 덕분에 희원 씨는 요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단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 캐리와 장난감친구들의 엘리언니 [유튜브 캡쳐화면]

올해로 15살, 중학교 2학년이 된 민호군(가명)은 잠들기 전 꼭 하는 일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영상을 찾아보는 것. 게임에 대한 정보도 정보지만, BJ의 유려한 말솜씨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고 한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느라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들기도 여러 번. 이제 조금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자꾸 습관처럼 찾아보게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나 청소년, 20대 초반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는 특정 BJ들의 말투가 유행어로 자리 잡을 만큼 그 확산력은 어마어마한 수준. 

국내 크리에이터 가운데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는 대도서관의 구독자수는 무려 170만 명에 달한다. [유튜브 캡쳐화면]

대도서관, 양띵, 보겸, 허팝, 포니, 밴쯔, 제이플라 등등 기성세대들에겐 생소하기만할 이 단어들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크리에이터들의 이름이다. 이들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수만 수백만 명을 넘어서는가 하면, 영상별 조회 수도 수십만에 이른다. 

1인 미디어, 그 매력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에서 알아보기로 했다. 

 

■ 비주류, 주류가 되다
아프리카TV가 처음 알려지기 시작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 개인방송이라고 하면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비주류 콘텐츠라는 인식이 강했다. 기자만 하더라도 ‘마이크 잡은 일반인’에게 별풍선은 왜 쏘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더랬다. 아마 아직까지도 BJ에 관해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기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했던 분들일 걸로 짐작된다. 

하루만에 별풍선 38만개가 터진 아프리카 방송이 화제를 모으기도. 별풍선 38만개는 3800만원에 이르는 수치다.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스마트폰의 상용화와 함께 1인 미디어 시장은 빠른 속도로 그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앞서 나열했던 이름들 외에도 인기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숫자는 일일이 세어볼 수도 없을 정도. 바야흐로 크리에이터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는 말도 과장된 것은 아닐 테다. 

크리에이터(Creator)는 유튜브, 페이스북, 아프리카TV, 트위치 등의 플랫폼에 채널을 만들고 그 안에서 방송을 하거나 촬영한 영상을 올려 대중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 세계에서 크리에이터들은 연예인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다. 오죽하면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1순위도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불특정다수의 시청자를 고려해 보다 더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TV매체와 달리, 이들의 콘텐츠는 소비층이 분명하고 매니악하다. 장르에 대한 경계도, 제약도 없기 때문에 콘텐츠 소재도 무궁무진하다. 게임, 음악, 요리, 뷰티, 외국어, 애견 등등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좋은 소재가 된다. 

시사공감팀과 인터뷰한 민호군에 따르면 뜨뜨뜨뜨는 욕설도 안하고 게임도 잘하는 실력파 BJ라고 한다 (그렇구나) [유튜브 캡쳐화면]

특히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관심도가 높은 게임이나 뷰티 콘텐츠에서는 숱한 스타 크리에이터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플레이 영상을 제작하는 BJ뜨뜨뜨뜨는 민호군 반에서 구독하지 않는 친구가 없을 정도라고. 실제 뜨뜨뜨뜨는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한지 불과 1년여 만에 구독자 수 6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달 24~25일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유튜브 팬페스트 코리아 2018’ 행사는 티켓 오픈 20분 만에 매진이 되는가 하면, 실제 참석한 인원만도 8000명이 넘는다. 다녀왔던 이의 말을 빌리자면, 특히나 인기 있는 크리에이터의 부스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이전까지 모든 유행이 TV로부터 시작됐다면, 요즘은 그 시발점이 온라인상 1인 미디어로 옮겨간 셈이다. 기성세대들이 인터넷 방송을 그저 비주류로만 치부하고 있는 사이, 1020세대들에게 1인 미디어는 그들의 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주류 매체로 떠오른 것이다. 

기자의 중딩 시절 최고 유행어 제조기는 김신영 언니였건만... [SBS 홈페이지]

실제 앱 조사기관 와이즈앱이 국내 인기 애플리케이션 4가지의 사용시간을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지난달 유튜브 월 사용시간은 257억(!)분에 달했다. 1인 미디어 소비자 중 유튜브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유의미한 수치다. 2~3위를 차지한 카카오톡과 네이버앱이 각각 179억분, 126억분으로 집계된 것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수준이다. 

인터넷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크리에이터가 TV프로그램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을 정도다. 이미 많은 스타 크리에이터가 패널로, 진행자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 최근 들어서는 이와 반대로 TV 속 연예인이 크리에이터로 전향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인기 개그우먼 강유미 씨는 ‘좋아서 하는 채널’이라는 채널을 개설,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소재의 콘텐츠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그녀의 채널 구독자 수는 32만 명을 넘어섰다.

지오 씨가 열흘간 올린 수입은 3000만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디시인사이드]

아이돌그룹 엠블랙의 멤버 지오 씨도 최근 아프리카TV BJ로 전향했다.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한 글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간 지오 씨가 올린 수입은 33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배우 강은비 씨 역시 얼마 전부터 아프리카TV에서 BJ로 활동하고 있다. 

 

■ 물었다. ‘도대체 왜?’
이전까지는 알고 싶은 정보가 있을 때 다음, 네이버와 같은 포털에 검색하고, 새로운 정보는 텍스트와 사진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실 기자에게는 아직도 이 방법이 익숙하다. 

하지만 요즘 1020세대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유튜브에 먼저 검색을 하고, 알게 된 정보 역시 브이로그(Video+Blog)를 통해 공유한다. 이처럼 변화된 트렌드는 10대 청소년들에게서 더 쉽게 관찰되곤 하는데, 이른 나이부터 유튜브를 자주 접해왔기 때문이란 분석이 따른다. 

1020세대들은 익숙하고 편리해서 유튜브를 찾는다고 답했다. [pexels/CC0 License]

올해로 16살이 된 지연양(가명)에게 유튜브를 왜 보는지를 물었다. 지연양은 “티비는 방송시간에 비해서 재밌는 거 많이 없을 때가 많은데, 유튜브에는 재밌는 부분만 짧게 나오는 게 많거든요”라고 답했다. 

정해진 시간에, 제약된 공간에서만 시청할 수 있는 TV프로그램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할 만한 영상만 골라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민호군 역시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TV는 볼 것도 없고 재미도 없어요. 인터넷방송은 게임 관련 내용이나 재밌는 이야기로 공감대가 형성되니까 구독해서 찾아보게 돼요”

또래 트렌드에 민감한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유행어가 인터넷방송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인 듯하다. 

기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인 캡쳐화면]

민호군과 지연양은 자신들의 학교에서 BJ보겸의 말투가 유행어로 쓰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알려준 단어들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기자가 초록창에 ‘보겸 유행어’를 검색했더니 ‘보겸 유행어를 알려달라’는 글들도 수두룩했다. 

민호군은 “저희 학교에 있는 모든 애들이 보겸 말투랑 행동을 따라할 걸요? 저도 그렇고요”라고 말했다. 

 

■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한 시점

기성세대들 사이에서 1인 미디어의 파급력에 대한 인지도는 현실보다 낮은 편이다. [pexels/CC0 License]

하지만 이처럼 인터넷 개인방송이, 혹은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10대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잔소리는 “게임하지 마라”에서 그친다고 민호군은 말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의 어른들 중 ‘인터넷 방송을 보지 마라’거나 ‘자제해서 봐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냐는 질문에 민호군은 “없다”고 딱 잘라 대답했다. 그저 나이차이가 조금 나는 누나만이 BJ 말투를 따라하지 말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지연양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면 “적당히 해라”라고 말하는 어른은 있어도, 인터넷방송에 대해선 일절 터치가 없단다. 사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그 세계 안에서 어떤 콘텐츠가 어떤 형식으로 노출되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선생님과 보호자 등 어른들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해보인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그러나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영상 콘텐츠에 대해서는 어른들의 시청지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에 대해선 민호군의 답변으로 대신 설명하고자 한다. 

“자주는 안 그러는데 보겸도 가끔씩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야한 농담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친구들끼리 그걸 똑같이 따라할 때도 있고요. 그냥 재밌어요. 거부감이요? 전혀요”

정치권에서도 최근 들어 인터넷방송 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조금 늦은 감은 없잖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발의된 대부분의 법안들이 인터넷 개인방송의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난해 아프리카TV BJ슈기는 방송 중 남자BJ 두 명에게 위해를 가하는 장면을 연출해 논란을 빚었다. [인스티즈]

인터넷 개인방송은 2015년부터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해, 불법·유해정보나 선정적인 콘텐츠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 인터넷 개인방송의 가장 큰 장점으로 경계도 제약도 없는 점이 꼽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규제해버리면, 본연의 개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때문에 법과 제도보다도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규제와 크리에이터 스스로의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날로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클린인터넷방송협의회는 최근 정기회의에서 인터넷방송 시청자의 1일 결제한도액을 100만원으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출범한 ‘클린인터넷방송협의회’ 역시 이와 같은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관련 정부부처와 국회, 학계, 업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이 협의회는 세미나 당시 인터넷방송의 순기능인 소통의 활성화와 자율성은 보장하되, 각종 부작용과 폐해는 최소화시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대세 ㅇㅈ? ㅇㅈ! 

지난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휴먼급식체(...)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해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었던 일명 ‘급식체’도 사실 인터넷 개인방송으로부터 파생됐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시는지? 내가 관심이 없다고 해서 ‘그들만의 리그’라고 무시해버리기에는 인터넷 개인방송의 파급력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만큼이나 거대해졌다. 

사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이 포스트를 작성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만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제재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렇게 유해하고 선정적이고 부정적인 콘텐츠들을 아무런 필터링 없이 어린 학생들이 볼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기도 했고 말이다. 

솔직히 빨려 들어갈뻔(;;;)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기자가 본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들은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고, 재밌고, 심지어 유익했다. 분명 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 보기 시작한 것임이 분명한데도, 정신을 차려보니 그 세계에 깊이 빠져있게 되더라. (부끄럽지만 진짜로..) 

물론 부작용도 일어날 수 있다. 얼마 전 생방송 중 자신의 반려견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BJ가 논란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일 뿐, 이 하나의 단면으로 전체에 대한 규제를 가하기에는 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넓다.

우리 청소년들이 건전하고 재밌고 유익한(!) 질좋은 콘텐츠들만 소비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자명하다. 그들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용자들이 건전하고 불쾌하지 않은 콘텐츠들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적정선’을 찾아내는 것. 

그 미묘한 ‘적정선’을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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