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창조야말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이유다.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자발적 창조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 신에게 호소할 필요가 없다. - 스티븐 호킹

[공감신문] 그러니까 그게 벌써 4주나 되었다. 약 한달 전 ‘운동화 끈을 묶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느꼈던 비참했던 순간을 고백했었다. 

그 때엔 정말 그게 가장 손에 넣기 쉽고 빠른 해결책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 글에 대한 감상평 메일이 꽤 왔었다는 것! ‘그 글을 읽고 호기심에 들어봤는데 간밤에 너무 잘 잔 거 있죠…’맙소사, 우주를 떠도는 외로운 스푸트니크 호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저 글을 안 읽어 보셨던 분들을 위해 짧게 이야기하자면, 귀로 먹는 아주 인공적인 수면제-를 복용했었다는 내용이다.)

Paul Fuentes 'space tiger'

그런데… 여기서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 게 아닌가? 3월 초, 나는 무지 신경질적으로 변해 있었다.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들도 꼬아 듣기 일쑤였고, 부정적 감정을 이입시킬 무언가를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는 나의 부정적 감정들…. 한껏 분노하거나 짜증을 내기도 했는데, 해소 후엔 그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다. 

그 동안 수많은 스트레스 해소법을 고안했었다. 등산이나 수영처럼 건강하고 효과가 큰 해소법도 꽤 있었다. 그런데 진짜 피곤하면, 손쉬운 걸 찾게 된다. 이를 테면, 술. 하지만 외부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무언가를 찾는 것은 늘 한계가 있었다. 친구들도 바쁠 때가 있었고, 항상 술을 마실 수 있는 컨디션(신체, 지갑 사정, 혹은 시간)인 것도 아니며, 또 다른 취미 생활인 요리나 그림을 그리려 할 때에도 재료가 필요했다. 내 안에서 스스로 해소할 수는 없을까. 남들은 그럴 때에 글을 쓰랬다. 나는 이미 매일 쓰고 있다. 문자 이외의 것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난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처음엔 명상을 도와주는 스튜디오를 방문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스튜디오에 등록하지 않았는데, 그건 왠지 원장의 말에서 종교적 풍미가 느껴져서 였다.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정신이 몸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녀가 만났던 그 어떤 신참자들보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것이다. 20대 때 나름 병원에 큰돈(?)쓴 건 다 신경성 질환이었으니까.  

그녀는 나에게 건강에 미치는 정신의 영향이 몇 퍼센트 일거 같냐 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단 난… 60%정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아니랬다. 100%랬다. 아- 그래서 여길 빨리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명상을 한다고 들었던 친한 지인에게 연락을 했고, 곧 책 두 권을 추천 받았다.

이제 명상을 시작한 지 약 2주 정도가 되어간다. 요즘은 잠깐이더라도 매일 한다. 이 시대에 ‘어른’으로 살아가며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심리적 분주함이- 이제 나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럴 때에 명상을 찾는다. 당연한 줄 알았던 호흡 역시- 이제는 당연한 게 아니란 것도 안다. 나는 일상에서 중간 중간 호흡을 체크한다. 호흡이 불편하다는 건 내가 긴장상태에 놓여 있단 뜻이다. 

명상은 나의 호흡을 느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호흡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명상을 할 때에, 훈련을 돕는 어플을 쓰고 있다. ‘숨을 깊게 내쉽니다. 내가 어디로 호흡하는 지 느껴봅니다.’ 

나는 평소에 배가 부푸는 호흡을 쓰고 있더라. 근데 깊은 호흡이 아닌 이상, 그 짧은 시간 동안 거의 아랫배까지 닿았다 빠지는 게 정말 신기했다. 코의 높이에서 아랫배까지- 허공에서 손가락을 내렸다 올리는 속도와 비교할 게 아니다. 콜레스테롤이 오밀조밀 끼어 있을, 베베 꼬인 내 좁은 혈관을 지나는 게 그리 쉽진 않을 텐데.

호흡을 하다 보면 당연히 잡생각이 든다. 잡생각, 아니 지금 나의 마음을 지배하는 ‘무언가’. 내가 지금 명상을 잘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명상 프로그램에선 이렇게 말했다.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것을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미 날 지배하던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호흡이 편안해지는 게 아닌가. 

나를 옥죄는 문제와 걱정은 단 몇 분간의 명상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여전한 숙제다. 내가 하는 명상은 종교와 거리가 멀고, 기도도 아니기에 ‘기적’을 꿈꿀 수도, 하늘을 날 수도 없다. 그러나 단 하나. 명상을 하기 전보다 일은 더 바쁘지만- 맘은 여유롭다. 차분해져서, 차근히 한다. 명상은 생각을 멈추는 게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이다. 

처음 명상이 너무 졸려서 걷는 명상을 많이 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날씨랑 딱, 어울리니까. 걷는 것 역시 호흡처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 발, 또 한 발 느껴본다. 호흡은 내가 세상과 가장 깊숙하게 만나는 행위, 걷는 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냄이다. 

호흡은 살아있음을- 걸음은 살아간다는 걸 느끼게 해주더라. 걷다가 잡생각이 들 때엔 잠깐 멈추어서 ‘아, 이런 생각을 했구나’ 알아차리고- 다시 걷는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 지! 나의 뇌 역시 우주처럼 바쁘구나 싶었다.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해에게로, 야간 산행과 야간 비행' 필자 사진, 남영동 근처 도시의 담벼락

실제로 명상이 스트레스를 완화시킴은 물론, 사고력과 판단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침팬지와 우리가 다른 건, ‘대뇌피질’ 중에서도 신피질의 팽창 덕분이다. 

쉽게 말해 구피질이 본능적 영역이라면 신피질은 이성적이다. 신피질은 언어, 사고, 논리 등을 가능하게 한다. 대뇌피질의 90%는 신피질로 이루어져 있다. 신피질에 저장된 정보로 분석하여 ‘추상적인 사고’역시 가능한데- 그렇다면 외도에 대한 의심은 ‘본능적 구피질’과 ‘추상적 신피질’의 콜라보인 걸까? 

필자 그림, 위대한 기린맨

어쨌든 이렇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대뇌피질은 생활 습관 등에 따라 얇아져서 치매와 같은 뇌 질활이 생길 수 있으며- 반대로 두껍게 만들 수 있는데, 유산소 운동과 명상이 거기 좋다고 한다. 그러니 당대 철학가들의 습관이 산책인 이유가 납득이 된다! 별을 보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쫓던 동방 박사들도 평소에 하늘 보고 걷길 좋아했기에- 직관이 발달했던 건 아닐까.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예민해야 할 것은 주변환경이 아니었다. 나의 호흡과 감정이었다. 그래야 올바르게 보인다. 

어젯밤, 늦은 일과를 마치고 와서 작업을 하려고 앉았는데- 속이 좋지 않았다. 참아보려 했지만 결국 먹은 걸 모두 게워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다. 작업을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요 며칠, 거의 잠을 자지 않았었다. 정신이 너무 말짱해서 몸을 괴롭히며 일을 벌였던 결과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호흡을 하며 나의 장기들을 느꼈다.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다!’라며 시위를 벌이는 화가 난 핏덩이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명상에서, 스스로 내 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아니 노력할게. (크크)(…) 그리고 곧 기념비적인, 단 한번의 트림(…!) 앞으로 며칠간은- 눈치를 보며 잘해줄 예정이다. 

이젠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싶지 않다. 지금도 가진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주위 사람들에 대한 관심 역시 조금은 거둘 생각이다. 지금도 너무 마음이 복잡하니까. 어쩌면 그러하기에 이전보다 여유로운 일상이라 느끼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리와 우주가 있는 이유는 자발적 창조를 하기 위해서랬다. 닮았어, 우린 닮았어! 지구에서 태양까지, 149,600,000km. 그러니 우리가 지금 만나는 태양빛은 8분 19초전에 쏘아졌던 것. 마음에서 우리의 이성으로 그것이 정리된다면, 이미 그 것 역시 지난 과거의 것. 그러니 우린 마치 매일의 날씨를 확인하듯- 우리 안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야한다. 얼마나 새롭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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