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비 대김구특종공작’ 문서 분석 결과, ‘밀정’ 이용해 김구 죽이기에 혈안

[공감신문] 일제가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을 암살하기 위해 비밀공작을 벌였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가 발견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제는 1935년부터 1938년까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두 차례 더 많은 3회에 걸쳐 백범 김구를 암살하려 했다.

일제가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하기 위해 비밀공작을 벌였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가 발견됐다.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독립기념관이 펴내는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에 게재한 논문에서 “1938년 5월 7일 중국 창사(長沙) 조선혁명당 본부 남목청(楠木廳)에서 박창세가 사주한 이운환이 김구 등을 저격한 '남목청사건'에 앞서 조선총독부 상하이 파견원이 밀정을 이용해 추진한 김구 암살 공작이 두 차례 더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목청사건은 1938년 5월 7일 독립운동 세력의 3당 합당을 논의하기 위한 연회에서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권총을 난사해 김구가 크게 다치고 현익철이 사망한 사건이다.

당초 알려진 일제의 김구 암살 시도는 남목청사건 한 건 뿐이었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문서관에서 확인한 사료 '특비 제1∼8호 대김구특종공작에 관한 건'(特秘 第1~8號 對金九特種工作に關する件, 이하 특종공작에 관한 건)을 분석한 결과 암살 시도가 두 차례 더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문서는 1935년 8월 5일부터 11월 29일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상하이에 파견한 히토스키 도헤이(一杉藤平) 사무관이 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낸 자료다.

일제는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의거 이후 백범을 체포하는 데 혈안이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 의거 이후 일제는 백범을 체포하는 데 혈안이었다. 일본 외무성과 조선총독부, 상하이주둔군 사령부 등 3곳은 당시 독립운동가 중 가장 높은 현상금인 60만원을 내거는 등 총력전을 펼쳤다.

일제가 백범을 암살하기 선택한 방법은 ‘밀정’이었다. 일제의 첫 번재 김구 암살 계획은 1934년에서 1935년 1월 사이에 히토스키의 전임자인 나카노 가쓰지(中野勝次) 시절에 밀정 오대근을 통해, 두 번째 시도는 히토스키가 밀정 임영창을 이용해 행해졌다.

1933년 상하이 파견 경찰 나카노 가쓰지(中野勝次)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공산주의자 오대근을 포섭한다. 오대근은 1920년대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원으로 활약하다가 1928년 상하이로 피신해 중국 공산당 한인지부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러나 중국 현지의 공산주의 세력이 궤멸하자 일제의 첩자로 변절했다. 특종공작에 관한 건에는 “오대근이 파견을 위해 충실히 첩보 근무를 했다”는 문장이 있다.

윤 교수는 "나카노는 김구가 난징(南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대근에게 1935년 1월 김구 암살을 지시했다"며 "중국인 특별공작원 2명을 데리고 난징에 간 오대근은 임영창 통역관을 만나 공작원 5명을 인계받고 보래관(寶來館)을 나섰으나 중국 관헌에게 적발돼 처형됐다"고 설명했다.

세 차례에 걸친 일제의 김구 암살 시도에는 모두 밀정이 이용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어 나카노의 후임으로 파견된 히토스키는 김구와 불화를 겪어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무정부주의자 정화암과 김오연을 포섭했다. 이들을 통해 김구와 갈등을 빚고 있던 무정부주의 세력을 이간질해 암살한다는 치밀한 계획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히토스키는 “김오연을 체포한 후 백범의 측근인 안공근이 꾸민 짓으로 부추긴다. 이를 정화암에게 알려 반감을 이용해 백범에게 격발한다”는 계획을 총독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결국 이 계획도 실패로 끝났다. 일제의 계략을 눈치 챈 정화암이 허위 정보를 흘리고 일제에게 300원의 활동비를 뜯어내는 등 역공을 폈다.

윤 교수는 "정화암은 김오연의 체포가 김구와 자신의 분열을 노린 일제의 계략임을 처음부터 알았다"며 "2차 암살 공작에서는 히토스키가 암살자로 포섭했다고 믿었던 정화암이 계획을 역이용해 공작금을 가로챘다"고 설명했다.

세 차례의 김구 암살 시도를 살펴본 윤 교수는 "암살 공작에 모두 밀정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 사건들은 일제가 밀정을 통해 중국 관내 독립운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고 독립운동 내부의 분열과 내홍을 획책했던 일면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제의 백범 암살 공작은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중국 관내 독립운동 세력의 내부 분열과 이를 꾸몄던 일제의 비열한 공작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며 “밀정 연구의 특성상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자료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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